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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블로그] 화려한 휴가와 특별한 고백

등록 2007-08-16 20:59

영화 ‘화려한 휴가’
영화 ‘화려한 휴가’
눈을 감았다. 라스트 씬 10분 동안 내내.

귓가를 어지럽게 두드리는 총성, 그리고 비명,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대한민국 만세, 광주 만세"라는 포효. 감은 눈꺼풀이 떨린다. 그 눈꺼풀 아래 뜨겁게 차오르는 무엇. 그리고 흘러내린다. 떨리는 눈꺼풀을 손으로 누른다. 그러나 나는 눈을 뜨지 못했다.

아니, 미처 손수건을 준비 못한 탓에 나의 얼굴과 손등, 손바닥이 모두 흥건히 적셔진 채 2시간 내내 마를 겨를가 없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보기 전부터, 보는 내내, 보고 나서,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하면 시야부터 흐려지는 지독한 최루성(?)이다.

그렇다면,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죄책감이다. 내겐 후체험이었던 '광주'를 오랜 시간 내 삶에서 방기해왔었던 스스로에 대한. 이내 '진실'을 받아들이기 버거워 도망쳤던 그 시간들이 덮쳐온 것이다. 그 무게에 눌려, 나는 눈을 뜰 수 없었다.

80년 5월 광주에도 꽃이 피었을까. 우리집엔 두 대의 전화가 있었다. 까만색 군용전화와 일반전화. 당시 나는 열살도 안된 어린애였다. 도르륵 도르륵 손가락을 걸어 다이얼을 돌려야 걸리는 군용전화의 저 편엔 군인이셨던 아빠가 계셨다. '계엄'이 무엇인지 알 지는 못했지만, 뭔가 '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정황상 느낄 수는 있었다. 군용전화 앞에서 초조하게 앉아있는 엄마의 무릎을 베개삼아 선잠을 청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날 짓누르던 그날의 기억들. "나라에 큰 일이 났단다. 광주에 폭동이…." "북한의 도발이 있을 수 있어서… 아빠가 비상대기 하시는거란다." 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하시던 엄마의 말씀. 순간 늘 집을 나가실 때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시는-군인은 그래야 한다고 한다- 아빠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이내 아빠를 다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이 나를 가위눌리게 했다. 그것이 80년 5월의 광주와 나와의 첫만남이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
영화 ‘화려한 휴가’

그 후 난 '광주'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학창시절 내내 말해주는 사람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내스스로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진 적도 없었다. 그저 내 기억 한 켠에 아련한 '가위눌림'으로 , 그 아련함조차 입에 올려서는 안될 '불온한 무엇'으로 간직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 '광주'와 내가 다시 만난 것은 대학에 입학하면서였다. 입학하자마자 선배들이 보여준 '광주'의 사진, 계엄군의 총칼에 갈갈이 찢기고 난자당한 80년 5월의 핏빛 광주가 내 앞에 서있었다. 내겐 너무 벅찼다. 힘겨웠다. 군인이 시민을 학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도망쳐 나오고 있었다. '외면'이었다. '진실'과 마주하는 일은, 지금까지 나를 떠받치고 있던 세계를 부정하는 일이었고, 그것은 바로 '나'를 부정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소아적인 틀 안에 안주한 삶 이외의 것에 대해 난 배워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던 때였으니까.


그러나 '진실'은 삶의 기저에 숨쉬고 있었다. 비겁한 도망자의 길을 가는 내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세번 째로 난 광주를 만난다. 대학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광주 출신의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였다. 일의 파트너로 만났는데, 서울토박이인 나로선 친구의 전라도사투리도 재미있었고 다소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한 나에 비해 화통하고 당당한 친구의 포지셔닝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우린 달랐지만 서로의 다른 점에 매료되어 금방 친해졌다. 술을 무척 잘하고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이 친구와 함께 하면서 일도 제끼고 함께 술마시는 날들이 늘어갔다. 나로선 대학 말년 때 버릇처럼 '핑계'만들어 '술'마시기 병이 다시 도진 셈이었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 오늘은 우울해서, 오늘은 힘들어서, 오늘은 월급받아서…. 우리는 알코올기 머금은 '핑계'를 만들어 함께 했고 끈끈한 의리를 다져갔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느 여름 날, 꼬옥 이 맘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자주 가던 주점에서 친구는 웬일로 폭음을 한다. 그리고 내게 어려운 고백을 한다. 80년 5월에 관련된. 충격적인 가족사였다. 친구의 삼촌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반병신 된 채, 가족들 모두 오랜시간 숨죽여 살아왔다는 그런 사연. 여기서 또 이렇게 '광주'를 만나는구나. 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친구의 눈을 볼 수 없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가린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던 눈물. 그리고 빗소리에 기대 처음으로 친구 앞에서 소리내어 울었다. 친구도 울고 있었다.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번엔 퇴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휴가>를 통해 네번째로 '광주'를 만났다. 과거 나의 소시민적 비겁함이 오늘 이 스크린 앞에서 고해성사라도 하듯 비틀거린다. 계엄군의 발포가 마치 나를 향한 것인 양 나는 빗발치는 총성과 도륙하는 칼날에 몸을 내맡긴다. 흔들리는 눈꺼풀을 손으로 누른 채 그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흐르도록 놓아둔 채, 적지 않은 순간 그렇게 스크린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했고, 특히 마지막 (도청 발포) 씬에서는 내내 눈을 감고 말았다.

영화가 끝났다. 멍청하게 한동안 앉아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눈물로 범벅이었고, 턱밑까지 무언가가 가득 차올라 기도를 막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경험을 했다. 그 와중에 정수리 한가운데가 환하게 밝아오는 것이었다. 언제나 '광주 항쟁' 하면, 신군부의 만행부터 떠올렸던 내게, 광주시민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살인적 독재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당당히 그 앞에 맞섰던 그 '민중'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야만의 총칼에 마지막 순간까지 굴하지 않았던 나의 형제들, 이웃들, 난 그들의 목소리를 비로소 들었던 것이다. 서로 어깨를 걸고 도청 안에서 최후를 기꺼이 맞이하였던 위대한 광주 시민들의 그 정신과 최초로 마주했던 것이다.

버거웠던 진실들을 기꺼이 안는 순간이었다. 아프지만 행복했다. 잠시 그런 현실의 역설(逆說)에 취해 있었다. 그렇다. 육체는 전두환이라는 인두껍을 쓴 폭압자의 총칼에 잔인하게 도륙되었지만, 그 정신까지는 결코 짓밟을 수 없었다. 이렇듯 살아남은 자들에게 기꺼이 남겨지고 이어간다. 그렇게 살아서 '죽는' 자가 있고 죽어서 영원히 '사는' 자가 있다. 광주의 정신은 대한민국의 정신이며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이어가야 할 정신이라고 <화려한 휴가>는 말한다. 네번째 광주와의 만남은 그래서 내게 특별하다.

영화 ‘화려한 휴가’
영화 ‘화려한 휴가’

나는 앞으로 두번 더 광주를 만날 생각이다. 다섯번째는 조만간 혼자서 <화려한 휴가>를 다시 보는 것으로 하려 한다. 두번 보는 이유는 이번엔 결코 눈을 감지 않고 똑똑히 다 보기 위해서이고, 혼자 보는 이유는 울 수 있는 '자유'를 느끼고 싶어서다. 도청 발포 당시의 라스트 씬도, 마지막으로 죽어가는 그들의 모습도 모두 담을 것이다. 동공에 얹혀진 먼지를 걷어내고.

여섯번째는 올 해 안에 반드시-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광주 5·18 묘역을 가보는 것으로 하려 한다. 그것이 그들의 목숨값으로 지금 내가 따먹고 있는, 민주주의란 과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요, 방관과 비겁의 세월에 대해 속죄하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5·18 다음 날 골프치러 가면서 현금 29만원 밖에 없다는 만용으로 여전히 대한민국을 우롱하는 학살자 전두환과, 일해공원에 환호하는 전사모(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게 영화 <화려한 휴가>를 바친다. 이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응시할 것이다.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책감에서 우리 끝내 자유로워질 수 없으리라.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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