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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청각장애인이 만드는 ‘농영화’ 아시나요?

등록 2007-08-21 08:51

데프미디어의 10번째 단편영화 ‘꿈의 레스토랑’을 방영하고 있는 모습.
데프미디어의 10번째 단편영화 ‘꿈의 레스토랑’을 방영하고 있는 모습.
감독·배우 등 모두 청각장애인 ‘데프미디어’ 10번째 단편
영화용어 수화로 없어 직접 만들어가며 ‘고군분투’
완벽한 침묵의 영화. 농인독립영상제작단 ‘데프미디어’가 만든 10편에는 현장음도 없다.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 청각장애인이며 소리 없는 ‘농영화’는 그들의 세상을 재현한다. 20분을 넘지 않은 단편영화들을 꾸준히 내놓은 데프미디어가 서울 종로구 수화사랑카페에서 20~24일 저녁 7시30분에 10번째 영화 ‘꿈의 레스토랑’ 상영회를 연다.

촬영현장은 적막하다. 청각장애인 감독 박재현(26)이 카메라 아래로 손가락 세개를 세우면 배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큐’ 사인이다. 2005년 첫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실수 연방이었다. 삼각대, 컷, 크랭크인…. 영화 관련 용어는 아예 수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재현 감독은 “하나하나 우리가 만들었다”며 “법률, 의학용 수화도 거의 없다”라고 노트북을 켜 쓴다. 기획회의는 때로 새벽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시나리오 없이 상황만 줘도 이심전심으로 배우는 연기한다.

연기와 수화를 다 잘하는 배우, ‘데프미디어’에서 단련 중이다. <길거리 천사>에서 주인공을 맡은 최명철씨는 “내가 워낙 무덤덤한 포커페이스라 연출부가 무척 힘들어했다”며 “감독이 참다 못해 내 얼굴에 물을 뿌리자 드디어 (상황에 맞는) 화난 표정으로 돌변해 연기할 수 있었다”라고 썼다. 현장에서 엄하냐고 물었더니 감독 박재현은 웃는다. “제가 월급 주는 처지도 아니고….” 출연료는 커녕 감독이며 스태프이자 배우인 회원들이 낸 회비로 편당 제작비 100여만원을 거의 충당한다. 회원 13명 가운데 10명은 직장인이라 시간 맞추기도 빠듯하다.

경험이 비슷하다고 해서 의견이 늘 한 가지인 것은 아니다. 박 감독이 “다른 세계”를 표현하려고 10편 모두 흑백을 고집하자 몇몇은 “답답하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도리어 비장애인들은 “새롭다”며 반겼다. 비장애인들도 이해하도록 소리를 넣자는 주장도 있었다. 박 감독은 “우리 손과 시각으로 만드는 영화인데 왜 못듣는 소리를 굳이 넣어야 하냐”고 설득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그린 <애인보다 더 좋은 내 인생의 친구>를 보고 비장애인들은 진부하다고 했지만 데프미디어 회원들은 길이가 짧은 걸 아쉬워했다. “즐길 거리가 거의 없었거든요. 드라마 영화도 자막이 없으니 못 봐요. 그러니 우리한텐 새롭기만 한 거죠. 저도 한국 영화 여태까지 극장에서 본 적 없어요.”(박재현)

‘왜 우리가 볼만한 영화는 없을까?’ 중학교 때 캠코더를 가지고 놀던 박재현 감독이 기독교농아인방송 브이제이로 일하다가 다짜고짜 첫 영화 <친구>를 만든 까닭이다. 갖은 고생 하고 스태프 둘이 더 이상 못하겠다 손 든 뒤 한번 제대로 영화를 배워보자 덤볐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한겨레영화학교에는 수화통역사도 있었지만 전문 용어에 맞는 수화가 없으니 도움이 안됐다.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참여해보려 했더니 청각장애인이라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데프미디어’ 회원들 가운데 영화 전문가는 아직 없다. 그래도 그들이 시간과 돈을 쪼개가며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그 안에서 오랜만에 단절감 없는 소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집이건 학교건 소리를 들어야 하는 세계는 마치 외국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나랑 맞지 않았다”고 말한다. 낯선 세상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이 맞춰주기만 바라기 일쑤였다.

소재야 널렸다. 10번째 영화 <꿈의 레스토랑>만 해도 아르바이트하다 소리가 안들려 겪은 괴로움을 바탕으로 삼았다. 일단 목표는 ‘수화가 언어로 인정받는 그날까지’ 청각장애인의 현실을 담는 것이다. 이게 다는 아니다. “일본 농영화 공포물도 있어요. 소리 없는 호러라니…. 나중에 그런 장르물도 만들려고요. 농영화도 새로운 장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박재현) 수화사랑카페 (02) 2274-2004.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데프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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