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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B급 정서 압축해 예고없이 “펑!”

등록 2007-08-26 19:55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쓰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쓰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쓰 프루프’
60~70년대식 인물·분위기에
근육질 여성들 화끈한 복수극
허 찌르는 ‘피범벅 액션’ 여전

뭐 하자는 거야? 화면에 비가 내리듯 ‘치지직’거리는 스크린에 제작사 ‘디멘션’의 로고가 그야말로 싸구려 골동 모조품 냄새를 풍기며 뜬다. 나팔바지가 유행하던 그 시절의 홈비디오처럼 입자는 거칠다. 필름이 중간에 튀는 것도 모자라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뀌기도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쓰 프루프〉는 1970년대 외진 골목 동시상영관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뭔가 굉장한 의미를 찾아 해부해가며 봐도 상관은 없지만 뭘 그럴 것까지야. 그냥 팝콘 씹어먹으면서 통쾌한 자동차 추격과 사지가 떨어지는 ‘슬래셔’ 공포물의 쾌감에 소리 질러가며 보길 권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쓰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쓰 프루프’
애초에 기획이 그렇다. 타란티노가 친구인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 집에 놀러 갔더니 싸구려 동시상영관(그라인드하우스라고 불린다) 포스터가 굴러다녔다고 한다. ‘너도 여기 좋아해’ ‘나도 좋아해’ ‘동시상영 보는 것처럼 니가 한편 내가 한편 B급으로 만들어 붙여버릴까’ 그런 식으로 나온 게 영화 〈그라인드하우스〉다. 그중 타란티노 작품이 〈데쓰 프루프〉, 로드리게즈 작품이 〈플래닛 테러〉(11월 개봉 예정)다. 둘을 합치면 거의 4시간, 결국 쪼개 개봉하게 됐다.

어림잡아 3분의 2는 시시한 잡담이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지닌 여자 3명이 먼저 등장한다. “맨날 내가 대마초 조달해야 돼. 힘들단 말이야” “엉덩이는 내 엉덩이 정도는 돼야지”…. 주크박스에서는 60~70년대식 달콤하고 낭창거리는 노래들이 주야장천 흐르고 남자들은 여자들을 꼬실 궁리에 바쁘다. 종업원 워렌으로 출연한 타란티노는 “원샷”을 외치며 술잔을 돌린다. 다만 타임머신 타고 등장한 듯한, 기괴한 스턴트맨 마이크(커트 러셀)만 해골 그림 자동차를 끌고 여자들을 몰래 따라다니며 긴장감을 조금씩 높여간다. 그 자동차 이름이 바로 죽음을 피해 간다는 뜻의 ‘데쓰 프루프’다. ‘이제 수다 좀 그만하시지’라는 푸념이 나올 때쯤, 오래 참은 만큼 더 세게 뒤통수 후려치는 타란티노식 팔다리를 뎅겅뎅겅 자르는 피범벅 액션이 휩쓸고 지나간다.

그리고 2라운드. 배우의 메이크업 담당인 애버나시, 좀 맹한 배우 리, 스턴트 우먼 킴과 조이가 스턴트맨 마이크에 대항할 차례다. 애버나시 휴대폰의 발신음은 〈킬빌〉의 주인공 브라이드(우마 서먼)의 주제곡이다. 그러니 이들은 “꺄악” 소리치며 도망다니는 공포영화 속 여성들과는 유전자부터 다르다.

영화에는 강한 여자들과 60~70년대에 대한 애정이 철철 넘친다. 조이 역은 〈킬빌〉에서 우마 서먼의 스턴트 대역을 했던 조이 벨이 맡았는데 컴퓨터 그래픽 없이 마지막 20분 자동차 추격 액션을 몸으로만 펼친다. 〈데쓰 프루프〉는 기다리고 기다려 압력을 꽉꽉 밟아뒀다가 여성들의 허를 찌르는 장쾌한 복수극으로 한방에 터뜨린다. 영화 속 인물들은 60~70년대 액션 추격물 〈식스티 세컨즈〉와 〈배니싱 포인트〉를 침이 튀도록 찬양하고,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배기량 빵빵한 그 시절 자동차들이다.

타란티노 영화들에서 유머는 가장 비장한 장면에서 허무하게 터져 나오기 일쑤였다. 〈킬빌〉에서 머리 반쯤이 잘려 죽어가는 오렌 이시가 “네 칼 한조의 칼(명품 칼)이 맞구나”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의 인물들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복합적인 캐릭터라 은근슬쩍 허를 찔러대는 매력을 지녔다. 처절한 사건들은 종종 예상치 못하게 벌어졌다. 그런 면에서 〈데쓰 프루프〉의 스턴트맨 마이크는 앞선 타란티노식 인물들보다 단순하고 전형적인 편이다. 잡담은 옹골진 유머를 맺지 못하고 흐트러진다. 그럼에도 여자들의 예상을 빗나간 막판 반전은 모든 불만을 쓸어내고도 남을 만큼 속이 후련한 한방이다. 그래서 영화 끝에 꼭 ‘끝’이라고 써주는 고전적 수법으로 마무리된 뒤에도 네 여자의 이름을 불러대고 싶어진다. 6일 개봉.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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