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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인터뷰] ‘즐거운 인생’ 이준익 감독

등록 2007-08-27 10:53수정 2007-08-27 11:00

이준익 감독 차기작 ‘즐거운 인생’ 현장공개 - 3일 오후 홍대 앞 롤링홀에서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제작 영화사 아침, 타이거픽쳐스) 현장공개에서 락밴드 ‘활화산’의 공연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준익 감독 차기작 ‘즐거운 인생’ 현장공개 - 3일 오후 홍대 앞 롤링홀에서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제작 영화사 아침, 타이거픽쳐스) 현장공개에서 락밴드 ‘활화산’의 공연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꿈이 뭔지도 모르고 사는 40대에게 악수를 청한다”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등 잇달아 화제작을 낸 이준익(48) 감독의 영화 만들기는 별다르다. 슬렁슬렁, 어찌보면 짜임새는 부족한 듯 보이지만 새로운 소재로 새로운 가치관을 펼쳐놓는다. 거기에 삶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가 절대적인 첨가물로서 보는 맛을 낸다.

최근의 영화계에서도 그는 환영받는 존재다. 고비용 구조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닫던 제작비가 당연시됐던 때도 이 감독은 늘 예산 이하의 제작비를 들여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 자신의 예술성을 고집하기 위해 하릴없이 늘어지는 촬영 회차도 제작자 출신의 이 감독에게는 당치 않은 말이다. 또한 감독으로 하고 싶은 말이 쌓여서일까. 최소한 2년은 돼야 한 편씩 내놓는 여느 스타감독과 달리 1년에 한 편씩, 그것도 성수기에 꼬박꼬박 내놓는다. 물론 거기에는 모든 작업을 같이 한 콤비 최석환 작가의 공이 크다.

올 추석엔 '즐거운 인생'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 추석 시즌 개봉한 '라디오 스타'에 이어 자신들의 꿈이었던 록밴드 재결성에 나선 40대 아저씨들의 이야기. 이미 제작에 착수, 10월 촬영을 시작할 '님은 먼 곳에'와 더불어 이 감독이 꼽은 '음악 3부작' 중 가운데 편이다.

'즐거운 인생'은 꿈을 잊고 살았던 40대 평범한 세 남자가 죽은 친구의 아들과 대학시절 록밴드 '활화산'을 재결성해 꿈을 펼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꿈을 이뤄가지만 결코 현실을 장밋빛으로 채색하지 않았다는 게 큰 강점. 현실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꿈을 이루고 사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인생의 행복 체감지수는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감독으로서의 꿈을 펼쳐나가고 있는 이준익 감독과 함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이준익 감독과의 일문일답.

이준익 감독 (연합)
이준익 감독 (연합)
--'즐거운 인생'은 '라디오 스타' 차기작으로 준비했던 40대의 진한 멜로가 무기 연기되며 갑자기 시작된 작품이다. 준비 기간이 짧았을 텐데.


▲최석환 작가와 3일 동안 방바닥을 뒹굴면서 생각해낸 기획이다. 시간을 짧았지만 치열하게 고민했고 '이 시대 필요한 영화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고민이 있었기에 (생각이) 터져나왔다. "지금 40대 남자들에게 꿈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어렸을 때 꿈이 있었으나 현실에 부딪혀 못 이룬 것들, 그런 로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은근히 밑에서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식었지만 남아 있는 불씨를 탁 터뜨리는 것을 담자고 했다. 마냥 40대의 이야기로만 하면 젊은 관객과의 유대감이 부족할 수 있기에 현준(장근석 분)을 넣었다. 40대 아저씨들을 젊은이의 새로운 문화가 싹트는 공간인 홍익대 앞으로 끌어들인 것도 세대간의 소통을 위해서다.

--감독 자신의 취향이 많이 반영된 '라디오 스타'보다 대중적으로 만들고자 했다지만 40대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덜 대중적이지 않나. 40대 이상은 극장에도 잘 오지 않는다.

▲흥행 면에서 핸디캡이 있다는 걸 분명히 알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었다. 영화는 젊은이들만의 오락 소비물이 아니다. 언제까지 영화가 젊은 관객만을 타깃으로 할 건가. 영화라는 고혈을 짜낸 공간 속에 40대 이상이 들어옴으로써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대한민국 40대, 50대에게도 그런 권리가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고단한 40대, 50대에게 악수를 청한다. 내가 40대이니 동세대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다면 이보다 즐거운 인생이 어디 있나. 거기에 그 자식들까지 같이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영화 속 정진영 씨가 딸에게 "아빠가 뭐 좀 해"라며 씩 하고 웃는다. 아빠에게 즐거운 비밀이 생긴 것이다. 아내에게, 자식에게 부끄럽고 구차한 비밀이 아닌 행복하고 즐거운 비밀이 생겼으면 한다.

--이번 영화의 화두는 '꿈'이다. 굉장히 직접적으로 꿈을 이루며 살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자신의 꿈을 접어두고, 심지어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게 제일 불행한 일이란 것도 모른 채. 모든 인간은 행복 추구의 권리가 있는데 그것을 스스로 거세하는 삶을 강요받는 사회다. '옛날에 좋았어'가 아니라 '옛날도 좋았지만 지금이 더 좋아'라고 말하며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언제까지 '아이 러브 스쿨'같이 초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며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며 살아야 하나.

--그러나 현실은 팍팍하다. 영화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꿈을 이룬다고 해서 특별히 세속적인 삶이 달라지지도 않게 묘사했다.

▲꿈을 찾는다고, 영화 속 주인공들이 밴드를 한다고 갑자기 현실이 달라지는 건 공갈이고 사기다. 영화의 진정성은 사실성을 바탕으로 해야만 이뤄진다. 밴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삶을 이야기한 것이다. 영화는 오락을 지향하지만 영화라는 성분 자체는 생활의 진정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영화를 통해 주로 민초들의 삶, 잊혀진 사람들을 다루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실업자, 이혼당하는 기러기 아빠, 자식 교육에 허리가 휜 아빠 등 어찌 보면 루저(loser)들을 내세웠는데.

▲난 평범한 사람들을 루저라고 말하는 데 대해 화가 난다. 그건 우리 국민 5천만 명 중 상위 1%, 많게 봐서 10%를 차지한 사람들이 나머지 4천500만 명을 세뇌시키는 것이며, 기득권이 그들을 폄훼하기 위한 악성 발언이다. 왜 그들이 루저인가. 세상은 메이저, 엘리트가 이끌어온 게 아니다. 혁명은 사회적 니즈(needs)가 아닌 대중의 사회적 원츠(wants)로 일어났다.

왜 영화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다뤄야 하나. 대중영화란 동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기에도 모자란다.

--음악을 주요 소재로 했다. 음악을 내세운 이유는.

▲흔히 세속적으로 성공했다는 40대 남자가 최고로 꼽는 취미가 골프인 것 같다. 골프 한번 치러 가는 데 보통 20만~30만 원 정도가 든다고 들었는데 그 돈이면 악기 하나를 살 수 있다. 골프하는 인구의 절반이 밴드를 하면 세대간의 화합이 확장될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면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게 바로 소통의 시작이다. 집단과 집단의 소통이 원활한 사회가 곪지 않는다. 아버지 세대와 젊은 관객이 1980년대 '불놀이야'를 합창하면서 소통이 된다.

--이 감독의 영화에는 악인이 별로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위선적이라 그렇다(웃음). 세상에 악한 인물은 없다고 본다. 다만 세상이 악하고, 세상이 누군가를 악하게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적은 세상이고 인간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지 인간이 아니다.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 등 배우들의 연주 기량이 놀랍다. 특별한 훈련 방식이 있었나.

▲정진영 씨만 통기타를 쳐봤을 뿐 김윤석 씨는 기타를 잡아본 적도 없고, 드럼의 김상호 씨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이병훈, 방준석 씨라는 걸출한 음악감독 두 명을 배치했다. 그리고 악기별로 한 명씩 개인지도 선생을 붙여서 단시간 내 영화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감독이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다. 배우 자신의 집념이 있기에 가능하다. 만약 배우가 대충 손동작이나 익히고 대역을 써서 하겠다고 생각했다면 아무리 감독이 말해도 되지 않는다. 베이스 치는 김윤석 씨를 봐라. 풀샷이 가능하게 됐잖냐. 김상호 씨의 그 신나는 표정은 어떻고. 배우의 진정성은 배역에 대한 집념으로 보여진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들에게는 그 자체가 희열이었을 것이다.

--'라디오 스타'의 최곤도 록 가수였고, 이번에도 록 밴드다. 록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록은 그 자체가 젊은이들의 자유와 반항을 담고 있다. 펄펄 살아 있으며 젊음이 분출된다. 인간이 나이를 먹었다 해서 육체적으로 쇠퇴할지 몰라도 정신이 쇠퇴하는 건 아니다. 최곤이 마지막 한가닥 선을 놓지 않았던 것은 자존심이다. 죽은 친구가 남긴 곡으로 죽은 친구의 아들과 합주함으로써 세대간의 유대감이 이뤄진다.

기성세대가 젊은이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 '네가 내게 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너에게 가겠다'고 해야 한다. 록이 갖고 있는 꺼지지 않는 불씨가 바로 '즐거운 인생'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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