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봉 앞두고 양부모와 함께 한국 찾아
"입양 활성화에 도움 주려고 영화화 허락했죠"
"입양 활성화에 도움 주려고 영화화 허락했죠"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가 성인이 돼 아버지를 찾았으나 친부는 사형 집행 1순위의 사형수. 그를 기꺼이 친부로 받아들인 입양아의 실화를 다룬 영화 '마이 파더'(감독 황동혁, 제작 시네라인㈜인네트)의 6일 개봉을 앞두고 실제 주인공 애런 베이츠(34) 씨가 한국을 찾았다.
4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애런 베이츠 씨는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데 대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영화화를 허락했다"고 말했다.
이번 한국행에는 그의 양부모와 영화 속에서 김인권이 분했던 친구 김소영 씨가 동행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 UBC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 씨는 평택 미군부대에서 애런 씨와 룸메이트가 된 후 아버지를 함께 찾았고 지금도 애런 씨와 그의 아버지의 편지를 통역하는 일을 맡고 있는 등 여전히 절친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애런 씨는 역시 입양아인 형과 누나를 번듯하게 키워낸 양부모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가득했다.
처음 부모를 찾을 때 "저 잘 컸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애런 씨와 그의 속내를 속속들이 모두 알고 있는 김소영 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애런, 김소영 씨와의 일문일답.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며, 이미 2003년 TV 다큐멘터리로 소개되긴 했지만 영화로 만들어지며 또 한번 당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영화화를 허락하기 전 어떤 심경이었는지. ▲입양이 사회적으로 부각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영화화를 허락했다. 세상에 제 아버지가 사형수이고, 교도소에 있다는 것을 다시 알리게 된다는 점이 가장 걱정스러웠기 때문에 영화사 측에 가장 먼저 아버지의 허락을 받으라고 했다. 또한 양부모, 형제 등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그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양부모님과 네 번 정도 시나리오를 보고 승낙했다. --2일 저녁 한국에 도착했는데, 친부는 만났나. ▲(김소영 씨의 대답) 우여곡절 끝에 만났다. 친부가 계시는 광주교도소 측에서 영화에 대해 피해자 가족이 항의한다는 점과 여타 정황을 알고 허락하지 않았다. 호적등본을 떼다 주고 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영화사 측으로부터 어제 피해자 가족이 영화 상영을 허락했다는 말을 들었다. --친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나. ▲1996년 6개월 동안 광주(영화 속에서는 애런 씨가 입양 전 머물렀던 곳이 춘천이었으나 실제로는 광주) 구석구석을 헤맸지만 만나지 못했다. 전남일보에 사연이 보도됐고, 이 신문을 통해 아버지가 날 찾았다. 내가 만나러 간다는 걸 전남일보에서 또다시 보도하자 서울에 있는 일간지들도 보도하는 바람에 기자들이 광주역에 몰려 정신없었다. 광주로 내려가는 길에 사형수라는 걸 알았다. (김 씨는 당시 이 사실을 어디까지 애런 씨에게 전해야 하는지 난감했다며, 두 명을 죽인 것까지만 말했다고 했다). --우문이지만, 왜 그렇게 찾고 싶었나. ▲내가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날 버리셨지만 죽지 않고 잘 컸다고, 그저 그걸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김소영 씨는 "아마 사형수여서 아버지가 애런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애런이 받아들이기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며 "만약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데 아들을 찾지 않았다면 더 상처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런 외에도 형과 누나가 입양아라고 들었다. 영화 속에서는 여동생이 친부모를 만났지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설정됐는데. ▲실제 그렇다. 나보다 나중에 입양된 누나는 10살 때 입양돼 정황을 알고 있었다. 친모가 사망한 후 친부가 재혼했는데 계모가 같이 살 수 없다고 해서 입양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양어머니가 정말 크게 화를 내셨다. 어떻게 전처의 딸이라고 내몰 수 있느냐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친부와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들었다. ▲1년에 세 번쯤 편지를 쓰고, 아버지가 답장을 한다. 결혼, 아이를 낳았던 것, 그런 일상들을 아버지께 편지로 보낸다. (이들의 편지를 통역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김씨는 "아버지가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곳에 계시기 때문에 편지 내용은 일상적이며 애런이 전하는 소식에 아버지가 소감을 말하는 식"이라고 전했다.) --입양 문제가 예전보다는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어떤 식의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자식을 낳으면 키워야겠지만 내 경우처럼 고아 아닌 고아가 되기도 한다. 부모님 모두 전쟁고아였고, 아버지가 군대에 가 계실 때 담석이 있던 어머니가 날 낳고 100일 만에 돌아가셨다. 아이가 그런 상황이 되면 누군가 돌봐줘야 하고, 누군가 책임질 수 있다면 책임져야 한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가족의 소중함이다. 그렇다고 가족이 반드시 혈연관계로 맺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가족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축복이고 사랑을 나누는 존재다. 한국에서 입양이 좀 더 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활성화됐으면 한다. 김소영 씨는 인터뷰 사이사이 "애런이 참 좋은 양부모님을 만났다. 정말 반듯하게 키우셨다"면서 "애런과 아버지를 찾는 사연이 알려지며 미국 내에서 불우하게 자란 입양아들을 돌보는 목사님을 만났는데 입양돼서도 불행한 삶을 사는 이들이 참 많았다"고 말했다. 애런 베이츠 씨는 현재 애리조나 주에서 매일 부모님 얼굴을 보고 산다. 집도 가까이에 있지만 애런 씨와 그의 형, 자형이 함께 아버지와 일하는 패밀리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런 씨는 "영화를 통해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용서하는지 관객이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 (서울=연합뉴스)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며, 이미 2003년 TV 다큐멘터리로 소개되긴 했지만 영화로 만들어지며 또 한번 당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영화화를 허락하기 전 어떤 심경이었는지. ▲입양이 사회적으로 부각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영화화를 허락했다. 세상에 제 아버지가 사형수이고, 교도소에 있다는 것을 다시 알리게 된다는 점이 가장 걱정스러웠기 때문에 영화사 측에 가장 먼저 아버지의 허락을 받으라고 했다. 또한 양부모, 형제 등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그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양부모님과 네 번 정도 시나리오를 보고 승낙했다. --2일 저녁 한국에 도착했는데, 친부는 만났나. ▲(김소영 씨의 대답) 우여곡절 끝에 만났다. 친부가 계시는 광주교도소 측에서 영화에 대해 피해자 가족이 항의한다는 점과 여타 정황을 알고 허락하지 않았다. 호적등본을 떼다 주고 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영화사 측으로부터 어제 피해자 가족이 영화 상영을 허락했다는 말을 들었다. --친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나. ▲1996년 6개월 동안 광주(영화 속에서는 애런 씨가 입양 전 머물렀던 곳이 춘천이었으나 실제로는 광주) 구석구석을 헤맸지만 만나지 못했다. 전남일보에 사연이 보도됐고, 이 신문을 통해 아버지가 날 찾았다. 내가 만나러 간다는 걸 전남일보에서 또다시 보도하자 서울에 있는 일간지들도 보도하는 바람에 기자들이 광주역에 몰려 정신없었다. 광주로 내려가는 길에 사형수라는 걸 알았다. (김 씨는 당시 이 사실을 어디까지 애런 씨에게 전해야 하는지 난감했다며, 두 명을 죽인 것까지만 말했다고 했다). --우문이지만, 왜 그렇게 찾고 싶었나. ▲내가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날 버리셨지만 죽지 않고 잘 컸다고, 그저 그걸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김소영 씨는 "아마 사형수여서 아버지가 애런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애런이 받아들이기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며 "만약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데 아들을 찾지 않았다면 더 상처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런 외에도 형과 누나가 입양아라고 들었다. 영화 속에서는 여동생이 친부모를 만났지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설정됐는데. ▲실제 그렇다. 나보다 나중에 입양된 누나는 10살 때 입양돼 정황을 알고 있었다. 친모가 사망한 후 친부가 재혼했는데 계모가 같이 살 수 없다고 해서 입양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양어머니가 정말 크게 화를 내셨다. 어떻게 전처의 딸이라고 내몰 수 있느냐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친부와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들었다. ▲1년에 세 번쯤 편지를 쓰고, 아버지가 답장을 한다. 결혼, 아이를 낳았던 것, 그런 일상들을 아버지께 편지로 보낸다. (이들의 편지를 통역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김씨는 "아버지가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곳에 계시기 때문에 편지 내용은 일상적이며 애런이 전하는 소식에 아버지가 소감을 말하는 식"이라고 전했다.) --입양 문제가 예전보다는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어떤 식의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자식을 낳으면 키워야겠지만 내 경우처럼 고아 아닌 고아가 되기도 한다. 부모님 모두 전쟁고아였고, 아버지가 군대에 가 계실 때 담석이 있던 어머니가 날 낳고 100일 만에 돌아가셨다. 아이가 그런 상황이 되면 누군가 돌봐줘야 하고, 누군가 책임질 수 있다면 책임져야 한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가족의 소중함이다. 그렇다고 가족이 반드시 혈연관계로 맺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가족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축복이고 사랑을 나누는 존재다. 한국에서 입양이 좀 더 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활성화됐으면 한다. 김소영 씨는 인터뷰 사이사이 "애런이 참 좋은 양부모님을 만났다. 정말 반듯하게 키우셨다"면서 "애런과 아버지를 찾는 사연이 알려지며 미국 내에서 불우하게 자란 입양아들을 돌보는 목사님을 만났는데 입양돼서도 불행한 삶을 사는 이들이 참 많았다"고 말했다. 애런 베이츠 씨는 현재 애리조나 주에서 매일 부모님 얼굴을 보고 산다. 집도 가까이에 있지만 애런 씨와 그의 형, 자형이 함께 아버지와 일하는 패밀리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런 씨는 "영화를 통해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용서하는지 관객이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 (서울=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