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영화 <화려한 휴가>
# 광주 민주화 운동은 아직도 진행 중
역사적인 사실을 드라마나 영화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합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재구성한다는 것은 그러한 다양한 관점들 중에 어떤 한 입장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되지 않은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않고 외면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한편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중에서는 모종이 암묵적 합의가 된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여론을 조작해서 만드는 관점이 아니라 역사라는 수레바퀴 속에서 양심과 이성에 따라 드러나는 진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이런 암묵적 합의가 나타난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왜곡 또한 존재합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런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을 필요로 합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1980년대에는 꿈도 꾸지 못할 영화였습니다. 당시의 시대는 5․18을 거짓을 규정하고 있었고, 5․18의 광주는 빨갱이의 작품이며 폭도들의 저항이라는 인식이 강요되는 시대였습니다. 80년 당시에 거의 모든 언론이 권력자에 의해서 검열 받으면서 광주의 모습은 영원히 왜곡되어 잊혀져버릴 수도 있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빠르지는 않지만 서서히 광주의 진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주기 시작했고, 80년 광주는 선량한 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폭력에 저항한 사건이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표면적으로 왜곡된 5․18 사건을 수정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당시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유가족에 대한 보상이 실시되기 시작했지만, 그날 광주의 아픔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오늘을 보내고 있습니다. 광주의 아픔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넣고 학살을 명령한 책임자가 누구인지 규명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5․18에 대한 기억들은 학살자에 대해서 직접 간접적으로 언급해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예상하는 바로 그 사람이 자신의 과거의 행적을 부끄러워하고 역사 앞에서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광주의 아픔을 치유하는 우선적인 과제입니다. 그런데 본인은 학살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백담사와 감방 생활 몇 달로 과거의 죄를 모두 탕감 받은 것처럼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 영화 ‘화려한 휴가’, 700만 돌파 9월 4일(화) 통계에 의하면 <화려한 휴가>가 700만 관객을 돌파하여 <타짜>를 누르고 역대 한국 흥행 영화 8위에 올라섰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이날 영화관을 찾아서 <화려한 휴가>를 관람했습니다. 700만을 돌파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관람한 시간에는 거의 절반 가량이 빈자리였습니다. 물론 평일 오후 4시라는 상황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초반 돌풍의 상승세가 약간 주춤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괴물> 이후 1년만의 극장 나들이로 선택한 영화 <화려한 휴가>는 결말을 뻔히 아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면서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장면 장면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주변의 사람들 대부분이 숨을 죽이며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휴가>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광주 이외의 지역에 서 있었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으며, 이후의 젊은 세대에게는 폭력에 의해서 굴절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과연 그랬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기겠지만 지금까지 증언을 통해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오히려 현실은 더 비참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과잉 진압에 항거하며 무장하기 시작합니다. 한때 계엄군이 후퇴하고 도청을 접수한 시민군은 점차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끝까지 저항할 것을 결심합니다. 결국 작전명 ‘화려한 휴가’는 그야말로 피를 부르는 대 학살로 이어졌고, 그날의 아픔은 시민군(광주 시민)이나 계엄군이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으로 2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치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 80년 광주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 오로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무고한 시민들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국가 권력에 정점에 올랐던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당시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도록 방치한 것도 우리의 책임 중 하나입니다. 광주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시절(군부독재시절)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제 자유롭게 광주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시절이 되었지만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광주의 아픔을 치유하고 있을까요? 치유되지 않은 광주의 아픔에는 우리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1980년 광주는 빨갱이들의 폭력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보다는 이미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행여 흔들리거나 빼앗기면 안된다는 방어본능이 깊게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힘들게 차지한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80년 광주를 민주화운동이라고 평가하는 역사적 흐름의 대세는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대항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당시 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떨어뜨리려는 노력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나 하나 살아가기도 힘든데 귀찮게 그런 것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거리감을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와는 지역적으로 떨어져있는 사람들이 25년도 훨씬 전의 과거에 당한 일이라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진실규명은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나와 관련되지 않은 일이기에 진실이 규명되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되지 않는 이상 참견한다는 것이 귀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80년 광주가 시대적인 아픔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당면한 현실에서 우리를 잘 살게 해준다면 학살자의 후계자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넓은 아량(?)도 가질 수 있습니다. # 기억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1980년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오로지 권력에 눈이 멀어버린 조직의 폭력에 끝까지 항거하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은 광주의 시민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나마 이정도 단계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1980년 광주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것이 거짓이고 잘못된 역사였음을 알게 된다면 더 이상 그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려한 휴가>를 통해서 과거의 역사의 진실의 한 단면을 접한 우리들에게는 앞으로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끌어가야 할 과제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여주인공 신애(이요원)가 ‘우리를 기억해 달라’고 절규하는 장면이 영화가 끝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메아리로 울리고 있습니다. 진실에 대한 기억은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지금은 당장 힘을 가진 자,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서 역사가 좌우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은 진실을 기억하는 자에 의해서 새롭게 쓰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997년 표면적으로 왜곡된 5․18 사건을 수정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당시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유가족에 대한 보상이 실시되기 시작했지만, 그날 광주의 아픔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오늘을 보내고 있습니다. 광주의 아픔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넣고 학살을 명령한 책임자가 누구인지 규명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5․18에 대한 기억들은 학살자에 대해서 직접 간접적으로 언급해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예상하는 바로 그 사람이 자신의 과거의 행적을 부끄러워하고 역사 앞에서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광주의 아픔을 치유하는 우선적인 과제입니다. 그런데 본인은 학살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백담사와 감방 생활 몇 달로 과거의 죄를 모두 탕감 받은 것처럼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 영화 ‘화려한 휴가’, 700만 돌파 9월 4일(화) 통계에 의하면 <화려한 휴가>가 700만 관객을 돌파하여 <타짜>를 누르고 역대 한국 흥행 영화 8위에 올라섰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이날 영화관을 찾아서 <화려한 휴가>를 관람했습니다. 700만을 돌파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관람한 시간에는 거의 절반 가량이 빈자리였습니다. 물론 평일 오후 4시라는 상황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초반 돌풍의 상승세가 약간 주춤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괴물> 이후 1년만의 극장 나들이로 선택한 영화 <화려한 휴가>는 결말을 뻔히 아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면서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장면 장면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주변의 사람들 대부분이 숨을 죽이며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휴가>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광주 이외의 지역에 서 있었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으며, 이후의 젊은 세대에게는 폭력에 의해서 굴절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과연 그랬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기겠지만 지금까지 증언을 통해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오히려 현실은 더 비참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과잉 진압에 항거하며 무장하기 시작합니다. 한때 계엄군이 후퇴하고 도청을 접수한 시민군은 점차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끝까지 저항할 것을 결심합니다. 결국 작전명 ‘화려한 휴가’는 그야말로 피를 부르는 대 학살로 이어졌고, 그날의 아픔은 시민군(광주 시민)이나 계엄군이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으로 2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치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 80년 광주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 오로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무고한 시민들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국가 권력에 정점에 올랐던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당시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도록 방치한 것도 우리의 책임 중 하나입니다. 광주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시절(군부독재시절)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제 자유롭게 광주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시절이 되었지만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광주의 아픔을 치유하고 있을까요? 치유되지 않은 광주의 아픔에는 우리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1980년 광주는 빨갱이들의 폭력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보다는 이미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행여 흔들리거나 빼앗기면 안된다는 방어본능이 깊게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힘들게 차지한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80년 광주를 민주화운동이라고 평가하는 역사적 흐름의 대세는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대항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당시 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떨어뜨리려는 노력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나 하나 살아가기도 힘든데 귀찮게 그런 것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거리감을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와는 지역적으로 떨어져있는 사람들이 25년도 훨씬 전의 과거에 당한 일이라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진실규명은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나와 관련되지 않은 일이기에 진실이 규명되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되지 않는 이상 참견한다는 것이 귀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80년 광주가 시대적인 아픔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당면한 현실에서 우리를 잘 살게 해준다면 학살자의 후계자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넓은 아량(?)도 가질 수 있습니다. # 기억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1980년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오로지 권력에 눈이 멀어버린 조직의 폭력에 끝까지 항거하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은 광주의 시민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나마 이정도 단계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1980년 광주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것이 거짓이고 잘못된 역사였음을 알게 된다면 더 이상 그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려한 휴가>를 통해서 과거의 역사의 진실의 한 단면을 접한 우리들에게는 앞으로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끌어가야 할 과제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여주인공 신애(이요원)가 ‘우리를 기억해 달라’고 절규하는 장면이 영화가 끝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메아리로 울리고 있습니다. 진실에 대한 기억은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지금은 당장 힘을 가진 자,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서 역사가 좌우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은 진실을 기억하는 자에 의해서 새롭게 쓰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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