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오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행복'의 언론시사회에서 허진호감독(왼쪽부터)과 영화배우 임수정, 황정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죽음 앞둔 남녀의 사랑 그린 '행복' 연출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그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 남녀가 만나 저 푸른 초원 위에서 잘사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만나자마자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포스터 카피처럼 '잔인한' 이별 이야기 아니냐고 다짜고짜, 막무가내로 건넨 말에 대한 허진호 감독의 답이다.
허진호 감독이 네 번째 연출작 '행복'(제작 라이필름ㆍ영화사 집, 10월3일 개봉)을 내놓았다. 황정민과 임수정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치명적인 병에 걸린 도시 탕아 영수와 낙천적이고 순수한 은희의 사랑, 행복, 이별 이야기다.
요양원에서 만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함께 살며 행복한 날들을 보내다 건강에서 회복한 영수가 도시 생활을 버리지 못해 은희에게 갑작스레 이별을 통고한다. 그 과정에서 허 감독 특유의 위트와 섬세한 묘사가 때론 소박한 미소를, 때론 절망에 가까운 안타까움을 낳는다.
"'외출'보다 먼저 기획했던 영화죠. '봄날은 간다'를 전 나름대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군요. 그래서 아픈 사람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만나 행복하게 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했던 영화는 이 생각 많은 감독의 머릿속에 갑자기 '그런데 한 사람이 나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본인 표현대로라면) 전혀 새롭지 않은 질문이 떠오르며 방향이 바뀌었다. 허 감독은 "그러다보니 영화가 잔인하게 됐다"며 웃는다.
"영수는 은희가 싫어져서 헤어진 게 아닐 겁니다. 익숙한 삶을 다시 보며 익숙한 삶으로 되돌아간 거죠. 아마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지 않을까요?" 8년째 요양원에서 살아가는 중증 폐농양 환자인 은희의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이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기에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여자, 그래서 첫눈에 반한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먼저 '들이대는'(이 역시 허 감독 표현이다) 여자다. "영화를 만들 때 보통 인물의 히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닙니다. 과거라는 걸 일일이 보여줄 수도 없고, 이 시점에서 보여주는 정도죠. 그런데 은희는 좀 달랐어요. 20대 후반, 실제 임수정과 비슷한 또래로 나이가 좀 있고 '환자랑 사귀지 말라고 했잖아'라는 요양원 원장의 말에서 예전에 환자와 사귄 경험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술도 좀 마셨을 것 같고. 단순히 순백의 느낌만이 아니라 과거가 있어 나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여자로 생각했습니다. 매일 숨 막혀 토해야 하는, 죽음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삶의 지혜를 깨친 여자라고요." 그런 은희를 "임수정이 아니었으면 누가 해냈을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어떤 면에서 귀엽고, 어느 때 보면 성숙해 보이는 면이 꼭 닮아있다"면서. 마지막 황정민의 변화는 취재의 결과였다. 이 부분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게 사실. "영수가 또 망가지면 어떨까를 생각했습니다. 취재를 해보니 그런 경우가 정말 많았어요.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걸 반복하는 환자들이 많더군요." 심각한 상황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위트가 빈번히 등장한다. 허 감독의 재치가 드러나는 장면들에서 관객은 잠시 편하게 웃을 수 있다. 거기에 요양원 원장으로 출연한 신신애의 "선을 넘었니?"라는 식의 애드리브까지 보태졌다. "영화가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제가 유머를 좋아하기도 하구요. 제 영화가 컷이 잘 나뉘는 것도 아니고, 특히 요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병을 고치기 힘들거나 경제적 여건이 안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어서 어둡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를 오히려 밝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행복'을 본 관객은 대부분 여성 캐릭터가 점점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은희가 '봄날은 간다'의 은수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것. "제 여성관이 특별히 변한 건 아니고, 은희라는 인물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내일이 없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더 적극적이었을 것 같고,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슬픔 때문에 사랑을 안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어요." 어쨌든 지금까지 멜로 영화만 선보였던, 그것도 대표작을 만들기 어려운 멜로라는 장르에서 이름을 굳힌 허 감독이 여성의 심리를 잘 묘사하는 걸 보면서 "혹시 전생에 여자 아니었을까요?"라는 생뚱맞은 말을 건넸다. 멋쩍은 듯,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하는 그의 대답. 이 질문은 이별을 말하는 영수 앞에서 욕하고 울다 손을 싹싹 빌며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는 은희의 행동을 그린 장면 때문이었다. "실생활에서 그리 디테일하지 않아요. 아내도 '영화와 영 다르다'고 할 만큼 로맨틱하지도 않구요. 그 장면은 '봄날은 간다'와 동일선상에 놓인 건데, 사랑이 깨졌을 때 그 순간만큼은 잠시 어떤 병에 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 정신이 아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못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은희가 빌 여자도 아니고, '개새끼'라고 말할 여자도 아닌데 그런 것처럼." 이 장면은 헤어지는 대목을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조감독, 스태프들과 그들 주변의 경험담을 풀어놓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벌써 네 번째 멜로 영화. 이 장르만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내 자신에게 질문을 종종 합니다. '네가 어떻게 멜로를 하게 됐지?'라고. 친구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 중 어떤 관계에서 남녀관계를 키워서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특별히 멜로라는 장르적 공식을 연구하고 생각하고 만드는 건 아닌데 드라마에서 남녀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집어넣는 거죠." 그런데 왜 결국 이별로 매듭짓느냐고 재차 물었다. "이상하게 '슬픔'에 대해 어려서부터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슬픔을 통해 뭔가 달라지거나 생각하게 된다고 봅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비극의 카타르시스인 건데. 슬픔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정화시키고, 묘한 느낌을 준다는 걸 느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 감독의 작품은 사랑이 아닌, 사랑의 찬란함을 간직한 쓰라린 이별에 관한 영화다. (서울=연합뉴스)
영화 ‘행복’의 한 장면
"영수는 은희가 싫어져서 헤어진 게 아닐 겁니다. 익숙한 삶을 다시 보며 익숙한 삶으로 되돌아간 거죠. 아마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지 않을까요?" 8년째 요양원에서 살아가는 중증 폐농양 환자인 은희의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이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기에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여자, 그래서 첫눈에 반한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먼저 '들이대는'(이 역시 허 감독 표현이다) 여자다. "영화를 만들 때 보통 인물의 히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닙니다. 과거라는 걸 일일이 보여줄 수도 없고, 이 시점에서 보여주는 정도죠. 그런데 은희는 좀 달랐어요. 20대 후반, 실제 임수정과 비슷한 또래로 나이가 좀 있고 '환자랑 사귀지 말라고 했잖아'라는 요양원 원장의 말에서 예전에 환자와 사귄 경험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술도 좀 마셨을 것 같고. 단순히 순백의 느낌만이 아니라 과거가 있어 나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여자로 생각했습니다. 매일 숨 막혀 토해야 하는, 죽음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삶의 지혜를 깨친 여자라고요." 그런 은희를 "임수정이 아니었으면 누가 해냈을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어떤 면에서 귀엽고, 어느 때 보면 성숙해 보이는 면이 꼭 닮아있다"면서. 마지막 황정민의 변화는 취재의 결과였다. 이 부분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게 사실. "영수가 또 망가지면 어떨까를 생각했습니다. 취재를 해보니 그런 경우가 정말 많았어요.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걸 반복하는 환자들이 많더군요." 심각한 상황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위트가 빈번히 등장한다. 허 감독의 재치가 드러나는 장면들에서 관객은 잠시 편하게 웃을 수 있다. 거기에 요양원 원장으로 출연한 신신애의 "선을 넘었니?"라는 식의 애드리브까지 보태졌다. "영화가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제가 유머를 좋아하기도 하구요. 제 영화가 컷이 잘 나뉘는 것도 아니고, 특히 요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병을 고치기 힘들거나 경제적 여건이 안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어서 어둡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를 오히려 밝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행복'을 본 관객은 대부분 여성 캐릭터가 점점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은희가 '봄날은 간다'의 은수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것. "제 여성관이 특별히 변한 건 아니고, 은희라는 인물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내일이 없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더 적극적이었을 것 같고,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슬픔 때문에 사랑을 안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어요." 어쨌든 지금까지 멜로 영화만 선보였던, 그것도 대표작을 만들기 어려운 멜로라는 장르에서 이름을 굳힌 허 감독이 여성의 심리를 잘 묘사하는 걸 보면서 "혹시 전생에 여자 아니었을까요?"라는 생뚱맞은 말을 건넸다. 멋쩍은 듯,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하는 그의 대답. 이 질문은 이별을 말하는 영수 앞에서 욕하고 울다 손을 싹싹 빌며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는 은희의 행동을 그린 장면 때문이었다. "실생활에서 그리 디테일하지 않아요. 아내도 '영화와 영 다르다'고 할 만큼 로맨틱하지도 않구요. 그 장면은 '봄날은 간다'와 동일선상에 놓인 건데, 사랑이 깨졌을 때 그 순간만큼은 잠시 어떤 병에 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 정신이 아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못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은희가 빌 여자도 아니고, '개새끼'라고 말할 여자도 아닌데 그런 것처럼." 이 장면은 헤어지는 대목을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조감독, 스태프들과 그들 주변의 경험담을 풀어놓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벌써 네 번째 멜로 영화. 이 장르만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내 자신에게 질문을 종종 합니다. '네가 어떻게 멜로를 하게 됐지?'라고. 친구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 중 어떤 관계에서 남녀관계를 키워서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특별히 멜로라는 장르적 공식을 연구하고 생각하고 만드는 건 아닌데 드라마에서 남녀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집어넣는 거죠." 그런데 왜 결국 이별로 매듭짓느냐고 재차 물었다. "이상하게 '슬픔'에 대해 어려서부터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슬픔을 통해 뭔가 달라지거나 생각하게 된다고 봅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비극의 카타르시스인 건데. 슬픔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정화시키고, 묘한 느낌을 준다는 걸 느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 감독의 작품은 사랑이 아닌, 사랑의 찬란함을 간직한 쓰라린 이별에 관한 영화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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