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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허진호 “생각보다 영화가 잔인하게 됐네요”

등록 2007-09-21 16:20수정 2007-09-21 16:35

17일 오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행복'의 언론시사회에서 허진호감독(왼쪽부터)과 영화배우 임수정, 황정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오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행복'의 언론시사회에서 허진호감독(왼쪽부터)과 영화배우 임수정, 황정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죽음 앞둔 남녀의 사랑 그린 '행복' 연출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그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 남녀가 만나 저 푸른 초원 위에서 잘사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만나자마자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포스터 카피처럼 '잔인한' 이별 이야기 아니냐고 다짜고짜, 막무가내로 건넨 말에 대한 허진호 감독의 답이다.

허진호 감독이 네 번째 연출작 '행복'(제작 라이필름ㆍ영화사 집, 10월3일 개봉)을 내놓았다. 황정민과 임수정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치명적인 병에 걸린 도시 탕아 영수와 낙천적이고 순수한 은희의 사랑, 행복, 이별 이야기다.

요양원에서 만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함께 살며 행복한 날들을 보내다 건강에서 회복한 영수가 도시 생활을 버리지 못해 은희에게 갑작스레 이별을 통고한다. 그 과정에서 허 감독 특유의 위트와 섬세한 묘사가 때론 소박한 미소를, 때론 절망에 가까운 안타까움을 낳는다.

"'외출'보다 먼저 기획했던 영화죠. '봄날은 간다'를 전 나름대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군요. 그래서 아픈 사람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만나 행복하게 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영화 ‘행복’의 한 장면
영화 ‘행복’의 한 장면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했던 영화는 이 생각 많은 감독의 머릿속에 갑자기 '그런데 한 사람이 나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본인 표현대로라면) 전혀 새롭지 않은 질문이 떠오르며 방향이 바뀌었다. 허 감독은 "그러다보니 영화가 잔인하게 됐다"며 웃는다.


"영수는 은희가 싫어져서 헤어진 게 아닐 겁니다. 익숙한 삶을 다시 보며 익숙한 삶으로 되돌아간 거죠. 아마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지 않을까요?"

8년째 요양원에서 살아가는 중증 폐농양 환자인 은희의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이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기에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여자, 그래서 첫눈에 반한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먼저 '들이대는'(이 역시 허 감독 표현이다) 여자다.

"영화를 만들 때 보통 인물의 히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닙니다. 과거라는 걸 일일이 보여줄 수도 없고, 이 시점에서 보여주는 정도죠. 그런데 은희는 좀 달랐어요. 20대 후반, 실제 임수정과 비슷한 또래로 나이가 좀 있고 '환자랑 사귀지 말라고 했잖아'라는 요양원 원장의 말에서 예전에 환자와 사귄 경험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술도 좀 마셨을 것 같고. 단순히 순백의 느낌만이 아니라 과거가 있어 나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여자로 생각했습니다. 매일 숨 막혀 토해야 하는, 죽음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삶의 지혜를 깨친 여자라고요."

그런 은희를 "임수정이 아니었으면 누가 해냈을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어떤 면에서 귀엽고, 어느 때 보면 성숙해 보이는 면이 꼭 닮아있다"면서.

마지막 황정민의 변화는 취재의 결과였다. 이 부분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게 사실.

"영수가 또 망가지면 어떨까를 생각했습니다. 취재를 해보니 그런 경우가 정말 많았어요.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걸 반복하는 환자들이 많더군요."

심각한 상황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위트가 빈번히 등장한다. 허 감독의 재치가 드러나는 장면들에서 관객은 잠시 편하게 웃을 수 있다. 거기에 요양원 원장으로 출연한 신신애의 "선을 넘었니?"라는 식의 애드리브까지 보태졌다.

"영화가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제가 유머를 좋아하기도 하구요. 제 영화가 컷이 잘 나뉘는 것도 아니고, 특히 요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병을 고치기 힘들거나 경제적 여건이 안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어서 어둡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를 오히려 밝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행복'을 본 관객은 대부분 여성 캐릭터가 점점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은희가 '봄날은 간다'의 은수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것.

"제 여성관이 특별히 변한 건 아니고, 은희라는 인물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내일이 없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더 적극적이었을 것 같고,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슬픔 때문에 사랑을 안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어요."

어쨌든 지금까지 멜로 영화만 선보였던, 그것도 대표작을 만들기 어려운 멜로라는 장르에서 이름을 굳힌 허 감독이 여성의 심리를 잘 묘사하는 걸 보면서 "혹시 전생에 여자 아니었을까요?"라는 생뚱맞은 말을 건넸다. 멋쩍은 듯,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하는 그의 대답.

이 질문은 이별을 말하는 영수 앞에서 욕하고 울다 손을 싹싹 빌며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는 은희의 행동을 그린 장면 때문이었다.

"실생활에서 그리 디테일하지 않아요. 아내도 '영화와 영 다르다'고 할 만큼 로맨틱하지도 않구요. 그 장면은 '봄날은 간다'와 동일선상에 놓인 건데, 사랑이 깨졌을 때 그 순간만큼은 잠시 어떤 병에 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 정신이 아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못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은희가 빌 여자도 아니고, '개새끼'라고 말할 여자도 아닌데 그런 것처럼."

이 장면은 헤어지는 대목을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조감독, 스태프들과 그들 주변의 경험담을 풀어놓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벌써 네 번째 멜로 영화. 이 장르만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내 자신에게 질문을 종종 합니다. '네가 어떻게 멜로를 하게 됐지?'라고. 친구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 중 어떤 관계에서 남녀관계를 키워서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특별히 멜로라는 장르적 공식을 연구하고 생각하고 만드는 건 아닌데 드라마에서 남녀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집어넣는 거죠."

그런데 왜 결국 이별로 매듭짓느냐고 재차 물었다.

"이상하게 '슬픔'에 대해 어려서부터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슬픔을 통해 뭔가 달라지거나 생각하게 된다고 봅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비극의 카타르시스인 건데. 슬픔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정화시키고, 묘한 느낌을 준다는 걸 느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 감독의 작품은 사랑이 아닌, 사랑의 찬란함을 간직한 쓰라린 이별에 관한 영화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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