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정아 덕택에 여론의 관심에서 비켜가는 사람이 몇몇 있다. 일생일대의 야심작 ‘디 워’를 미국시장에 개봉한 심형래도 그들 가운데 하나로 포함시켜도 그리 이상할 것 같지는 않다. 그토록 성공을 자신했던 디 워는 실패했으며 방금이라도 천둥벼락을 동반하고 승천할 것 같았던 이무기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구렁이로 전락해버렸다. 국내신문은 개봉 첫 날 흥행순위 5위를 기록하였으며 앞으로의 선전이 기대된다는 논조였지만 5위는 최하위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전교 5등은 5등인데, 학생 수가 5명이었다는 것과 하나도 다름이 없다. 디 워를 상영했던 영화관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다른 영화를 준비하거나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에서 실패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집혀진다.
디 워가 개봉 첫 주에 벌어들인 액수는 585만1000불인데, 이것은 같은 기간 한국에서 기록한 액수의 4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개봉 스크린이 한국의 세 배를 넘는다는 것에 대입하면 참담하다는 표현이 그리 지나치지 않다. 이제 평일 수익이 30만 달러로 떨어진데다 영화관들이 디 워를 접기 시작한다면 심형래가 공표했던 2천만 달러의 투자비용은 어떻게 회수할 수 있을 것인가, 투자자들과 배급사에게 수익을 배분하고 나면 최소한 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천억이 넘는 규모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심형래는 영화보다 훨씬 수익이 큰 DVD 등의 2차 시장을 노린다고 하는데, 영화가 부진한 형편에 과연 DVD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그맨이 아니라 영화감독 심형래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미국에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미국 관객들이 영화감독으로 평가한 심형래의 레벨은 낙제에 근접했다. 2천 곳이 넘는 개봉 스크린을 확보했다는 것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맛이 없다고 알려진 식당이 아무리 커봐야 무엇하겠는가,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들은 대부분 그리 크지 않거나 교통이 편리하지 않아도 손님은 언제나 만원사례다. 작품성과 흥행이 수평대입되지 않고 높은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하는 사례가 그리 드물지 않다. 그러나 흥행을 자신했던 디 워가 흥행에서 실패한 것은 아무런 변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 치열하게 번졌던 디 워 논쟁은 심형래가 원했던 방식으로 종료될 것이 분명하다.
디 워가 실패한 원인은 이미 국내에서 충분히 지적되었다. 허술한 스토리와 형편없는 배우들의 연기는 미국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으며, 그토록 자신했던 CG는 부분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얻기는 하였지만 “그 정도의 예산치고는” 따위의 전제가 붙은 것이었다. 언론은 그래도 어디냐며 칭찬하고 흥행은 몰라도 도전으로서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격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같은 동메달이라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쟁취한 것과 호언장담했던 최고의 스타플레이어가 딴 것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 하물며 순위권 이하의 기록이라면 오죽하겠는가,
일본도 그런 수준의 CG를 만들지 못했다거나 미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그 정도의 영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자평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일본을 비롯하여 충분한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런 수준의 영상을 왜 만들지 못하겠는가, 어차피 미국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지 못할 바에는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미국시장에서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를 위시하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은 미국시장을 포함한 해외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아니더라도 포켓몬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캐릭터 상품과 게임 등의 2차 시장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리고 있는데 무리하게 블록버스터에 도전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들이 그런 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은 심형래의 말대로 “안 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안 해서 안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을 창시한 최초의 영화가 1975년 제작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조스’(Jaws)라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금 생각해도 작품성과 예술성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데다 배우도 몇 명 등장하지 않았던 조스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흔하지 않은 테마를 독창적인 기법으로 영상에 담았기 때문이다. 주연배우(?)인 백상어가 나타날 때마다 불길하게 깔리는 배경음악의 효과도 뛰어났다. 심형래가 아무리 돈을 들이고 심혈을 기울였다고 해도 독창성이 함유되지 않았다면 디 워의 CG는 흔해빠진 영화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거의 성패가 판가름 난 시점에서 심형래가 의욕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일견 다행스럽다. 미국시장에서의 흥행이 실패했다고 해서 심형래가 곤경에 빠질 것 같지는 않다. 국내 여론이 동정적인 데다 애국심 마케팅이 주효하여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손실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속편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CG가 영화의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깨우치지 못하고 본인이 시나리오까지 도맡는 방식을 바꾸기 전에는 “국내성공 미국실패”의 전철을 되밟을 것이 분명하다. 자기 나라 감독들이 만든 영화도 넘쳐나는 미국인들이 한국인이 만든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영화에 그리 많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디 워 1편”이 확실히 입증해주지 않았던가, 미국이 자랑하는 블록버스터를 압도할 수 있거나 그것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혁신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는 한 성공은 먼 나라의 이야기다. 기왕 말이 난 김에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이미 미국시장에 도전해서 성공한 한국 감독이 있다는 점이다. 정창화 감독이 1973년에 제작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당시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었다. 그때 경합한 영화들이 '대부'와 '사운드오브뮤직'등의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일대쾌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미국시장을 제압했던 감독을 가졌었던 것이다. 정창화 감독에게 배운 임권택의 코드는 우리의 내면이었다. 거장으로 인정받는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의 역시 자신들의 모습에 충실했다. 영화에서 테마 설정과 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말해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심형래의 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이다. 그는 이미 한 번의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바가 있다. 이전에 발표한 용가리가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실패를 맛보았을 때 그는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하지 않았다. 그 이전에 용가리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비디오 시장에서 3주 연속 1위를 했다”는 주장이 과연 검증 가능한 것인가, 미국인들의 절대다수가 그런 영화가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비디오가 3주나 연속으로 1위를 기록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의아하다. 게다가 랜털 수익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고 있으니 이래저래 의혹만 더할 뿐이다. 개그맨 출신 감독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은 충무로에게 화살을 돌리는 광경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항상 그렇듯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나 역시 같은 나라의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으로서 심형래가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 그만한 열정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성공에의 로그인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사를 잘 정리해야 할 것이다. 성공에 대해서 먼저 말하지 않고 실패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키워드가 아닐까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일본도 그런 수준의 CG를 만들지 못했다거나 미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그 정도의 영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자평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일본을 비롯하여 충분한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런 수준의 영상을 왜 만들지 못하겠는가, 어차피 미국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지 못할 바에는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미국시장에서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를 위시하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은 미국시장을 포함한 해외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아니더라도 포켓몬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캐릭터 상품과 게임 등의 2차 시장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리고 있는데 무리하게 블록버스터에 도전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들이 그런 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은 심형래의 말대로 “안 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안 해서 안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을 창시한 최초의 영화가 1975년 제작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조스’(Jaws)라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금 생각해도 작품성과 예술성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데다 배우도 몇 명 등장하지 않았던 조스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흔하지 않은 테마를 독창적인 기법으로 영상에 담았기 때문이다. 주연배우(?)인 백상어가 나타날 때마다 불길하게 깔리는 배경음악의 효과도 뛰어났다. 심형래가 아무리 돈을 들이고 심혈을 기울였다고 해도 독창성이 함유되지 않았다면 디 워의 CG는 흔해빠진 영화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거의 성패가 판가름 난 시점에서 심형래가 의욕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일견 다행스럽다. 미국시장에서의 흥행이 실패했다고 해서 심형래가 곤경에 빠질 것 같지는 않다. 국내 여론이 동정적인 데다 애국심 마케팅이 주효하여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손실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속편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CG가 영화의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깨우치지 못하고 본인이 시나리오까지 도맡는 방식을 바꾸기 전에는 “국내성공 미국실패”의 전철을 되밟을 것이 분명하다. 자기 나라 감독들이 만든 영화도 넘쳐나는 미국인들이 한국인이 만든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영화에 그리 많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디 워 1편”이 확실히 입증해주지 않았던가, 미국이 자랑하는 블록버스터를 압도할 수 있거나 그것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혁신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는 한 성공은 먼 나라의 이야기다. 기왕 말이 난 김에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이미 미국시장에 도전해서 성공한 한국 감독이 있다는 점이다. 정창화 감독이 1973년에 제작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당시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었다. 그때 경합한 영화들이 '대부'와 '사운드오브뮤직'등의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일대쾌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미국시장을 제압했던 감독을 가졌었던 것이다. 정창화 감독에게 배운 임권택의 코드는 우리의 내면이었다. 거장으로 인정받는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의 역시 자신들의 모습에 충실했다. 영화에서 테마 설정과 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말해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심형래의 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이다. 그는 이미 한 번의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바가 있다. 이전에 발표한 용가리가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실패를 맛보았을 때 그는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하지 않았다. 그 이전에 용가리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비디오 시장에서 3주 연속 1위를 했다”는 주장이 과연 검증 가능한 것인가, 미국인들의 절대다수가 그런 영화가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비디오가 3주나 연속으로 1위를 기록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의아하다. 게다가 랜털 수익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고 있으니 이래저래 의혹만 더할 뿐이다. 개그맨 출신 감독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은 충무로에게 화살을 돌리는 광경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항상 그렇듯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나 역시 같은 나라의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으로서 심형래가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 그만한 열정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성공에의 로그인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사를 잘 정리해야 할 것이다. 성공에 대해서 먼저 말하지 않고 실패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키워드가 아닐까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