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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블로그] ‘우울한 인생’들에게 부친 위문편지

등록 2007-09-27 15:37

영화 ‘즐거운 인생’
영화 ‘즐거운 인생’
‘웰메이드(well-made) 작품’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난 ‘좋은 작품’이란 말과 구별해서 쓴다. 비록 영화 만드는 기술에서 ‘웰메이드 작품’일지라도, 예술적 감흥이 깊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난 웰메이드하는 재능을 외공(外功)이라고 부르고, 삶을 통찰해 내는 예술적 감흥을 내공(內功)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난 웰메이드라는 말을, 촬영 음악 음향 미술 조명 의상 그래픽 소품 편집 등과 같은 영화 만드는 기술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예술적 감흥은 시나리오 · 그 대사의 리얼러티 · 배우들의 표정연기 그리고 여기에 영상 · 음악 · 미술이 얼마나 감칠 맛나게 깊은 숙성을 담아냈느냐에 따른다. 그 안목은 세상만물과 세상만사에 얽힌 ‘삶의 깊이’에서 비롯되기에, 사람마다 색깔도 다르고 깊이도 다르다. 그 색깔의 다름을 함부로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고, 그 깊이의 다름을 함부로 가늠하여 다툼을 벌이기도 어렵다. 자기 색깔에 따라,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을 찾아다니면서, 긴 세월을 두고 ‘열린 자기’의 개성과 깊이를 다듬고 숙성시켜 갈 따름이다.

지난 5년간 영화관객수를 기준으로 학점을 매겨보면, 1000만 명 이상 : A+ · 700~1000만 명 : A0 · 400~700만 : B+ · 200~400만 명 : B0 · 100~200만 명 : C+ · 50~100만 명 : C0 · 20~50만 명 : D+ · 5~20만 명 : D0 · 0~5만 명 : F쯤으로 보인다. 영화관객수는 일반사람들의 호기심이나 재미에 의한 대중성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대중성의 눈높이는 그 사회의 시대상이나 문화적 품격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른다. 그 사회의 문화적 품격이, 높으면 외공과 내공이 높은 영화에 관객이 모이고, 낮으면 외공과 내공이 낮은 영화에 관객이 모인다. 우리 관객은 문화적 품격이 C0쯤 되기에, 외공이 C+이면서 내공이 C0인 영화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외공이 C+나 B0인 경우는 외공이 잘 먹혀드는데, 외공이 B+이상인 경우에 그 높이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오히려 낮추어 보는 것 같다. 내공이 높으면 관객동원에 거꾸로 작용한다. B+를 넘어서면 오히려 해롭고, B0는 위태롭고, C+는 그 영화의 행운과 불운에 따라 다르고, C0는 무난하다. 그래서 내공이 C0이면서 외공이 C+이거나 B0쯤 되어야 히트칠 가능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내공 C0에 외공 C+인 영화 중에서 관객 300만 명을 넘어서는 작품은 열에 하나 둘에 지나지 않는다. 관객동원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대중성이다. 대중성이 B학점은 되어주어야 30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또 여기에 그 어떤 독특한 포인트가 관객을 사로잡으면 500만 명을 넘기게 된다. 그 대중성이나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은, 감독의 대중적 역량이기도 하지만 행운의 여신도 많이 작용한다. 영화 홍보마케팅은 중심역할을 하지 못하고, 영화 자체에 대중성이 힘을 타서 입소문이 돌아야 홍보마케팅도 잘 먹혀든다. 800만 명을 넘어선 숫자는 영화팬이라고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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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즐거운 인생’
영화 ‘즐거운 인생’


이준익 감독의 작품에 외공과 내공의 학점을 매겨 보면, <황산벌>은 외공=C0 내공=C+이었고, <왕의 남자>는 외공=C+ 내공=C+이었고, <라디오 스타>는 외공=B0 내공=B+이었다. 여기에 일반사람들이 호기심이나 재미를 자극할 대중성을 가늠해 보면, <황산벌>은 B0 · <왕의 남자>은 A0 · <라디오 스타>는 C+쯤이었다. <왕의 남자>는 외공과 내공이 제법 괜찮게 만든 영화이면서 대중성이 아주 높아서 1000만 관객을 넘어섰고, <라디오 스타>는 외공과 내공이 좋았는데 대중성이 낮아서 200~300만 명에 그치고 말았다. <라디오 스타>의 외공과 내공의 기대를 안고서, 그의 새로운 영화 <즐거운 인생>을 곧장 찾아갔다. 그가 만든 영화 중에서 가장 못 만든 영화였다. 외공=C0 · 내공=C+ 그리고 대중성도 C0나 C+쯤밖에 되지 않는다. 앞 영화에서 얻은 인기와 추석시즌에 상영한 것에, 도움을 많이 받으면 200만 명쯤을 모을 수 있겠고, 도움을 적게 받으면 100만 명을 모을 수 있겠고, 도움을 받지 못하면 50만 명쯤에 그칠 것 같다. 이래저래 50~100만 명쯤 되지 않을까?

영화 ‘라디오스타’
영화 ‘라디오스타’

그는 <라디오 스타>와 비슷하게, 이 세상에 그늘진 삶의 씁쓸한 모습에 따뜻한 눈길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마흔 중반에 세상살이 구석지로 몰려 비틀거리는 세 남자. 마누라의 월급에 기대어 대책없이 세월만 낚는 만년백수, 마누라와 아이들을 캐나다로 보내고 학비와 생활비 벌어 대느라 아등바등하는 중고차사장,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택배업에 대리운전까지 하는 걸 집에 숨기고 근근이 버티는 밤낮헐떡남. 이런 ‘우울한 인생’이 쪽팔려서 옆구리로 터져 나와, 샛푸른 대학시절의 별 볼 일 없었던 ‘락밴드 활화산’을 돌이켜 보려는 몸부림이 가엾지만 귀엽다. 그들의 천진난만한 귀여움이 순박하게 풋풋해서 흐뭇하면서도, 저런 심성으론 이 엄혹하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치이고 자빠지고 깨질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현실이 오버랩되면서 명치끝에 씁쓸한 애잔함이 아려온다. 그런데 이 씁쓸함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그들의 슬픔이 껍데기로 겉돌면서, 그들의 순박함만을 강조하며 그저 일방적인 미화한다. '국군아저씨께 보내는 위문편지'처럼 상투적이고 도식적이다. 삶의 깊이를 담아내는 숙성됨이 약하다. 시나리오 자체의 문제이겠다.

영화 ‘즐거운 인생’
영화 ‘즐거운 인생’

그렇다고 별 볼 일 없는 영화는 아니다. 세 남자의 연기력이 좋다. 정진영은 연기가 항상 괜찮으면서도 항상 조금 서운하다. 중고차사장의 김상호 연기는 아주 좋았다. 장근석이라는 젊은이는 상당히 돋보였다. 그가 KBS드라마 <황진이>에선 그저 꽃미남 마스크 하나로만 기억했는데, 여기에선 반항아로 돌변하여 냉소어린 싸늘한 표정에 미묘한 내면심리를 비쳐내는 연기가 참 좋았다. 노래솜씨도 상당해서 B0쯤은 되어 보여서 가수를 해도 될 법하다. 얼굴로 한 목 먹고 들어가면, 인기가수가 될 수도 있겠다. 이준익 감독은 락음악에 나름대로 평범치 않은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나의 감성에 들어맞지는 않지만, <라디오 스타>에서 그러했듯이 이 영화에서도 음악을 소재로 엮어가는 솜씨가 그 나름의 안목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라디오 스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락음악이 미국 락음악의 본 모습을 잃고 우리나라에서 변형된 ‘독특한 센티멘탈리즘’을 제대로 살려내지는 못하고 있어 보인다. 그가 우리 나름의 ‘독특한 센티멘탈리즘’을 예민하게 의식하여, 마지막 노래장면에서 ‘한동안 뜸했었지’를 먼저 불러서 관중의 흥을 후끈 달구어 놓은 다음에, 이 영화의 주제가인 ‘즐거운 인생’으로 마무리 지었더라면 엔딩장면에 감동이 훨씬 컸을 것이다. ‘한동안 뜸했었지’가 ‘즐거운 인생’보다 이 영화의 분위기에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대체로 잘 만드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직 서운한 점이 많다. 이번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할 ‘삶의 리얼러티’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해서 내공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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