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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화 속 그 시절 ‘S라인 내 청춘’

등록 2007-09-30 19:47

위부터 한형모 감독의 <순애보>와 <엘레지의 여왕>,  김응천 감독의 <고교우량아>,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
충무로국제영화제 제공
위부터 한형모 감독의 <순애보>와 <엘레지의 여왕>, 김응천 감독의 <고교우량아>,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 충무로국제영화제 제공
충무로영화제 이색 섹션 ‘한국영화추억전 #7’ 미리보기
청춘이 어디 20대만의 것이더냐. 검버섯 핀 할아버지도 머리에 기름 바르고 할머니 꾀던 청춘이 있었던 것이었다. 낡은 필름이 철커덕 돌며 ‘OO 푸로덕??’ 자막이 뜨면 그들도 사랑에 부나방처럼 뛰어들던 그때 그 시절로 하염없이 빨려들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영상 회춘이 아니고 무엇이더란 말이냐.

10월25일부터 11월2일까지 서울광장, 대한극장 등에서 열리는 제1회 충무로영화제는 특별히 국내외 고전 영화들을 조명한다. △존 부어맨 감독 특별전 △찰리 채플린 30주기 추모전 △아시아 뮤지컬의 재발견 등 섹션과 축제가 다양한데 특히 1957년부터 87년까지 7자로 끝나는 연도를 들었다 놨다 했던 작품들 17편을 따로 모았다. 흥행, 역사적 의미, 작품성 등을 따져 고르고 골랐으니 이름하여 ‘한국영화추억전 #7’이다. 각 연도별 교양백과 같은 영화를 하나씩 김홍준 운영위원장이 골라줬다. 당대 사람들의 판타지와 현실이 스크린에 되살아났다. 5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를 영화로 만날 수 있는 ‘인문박물학적’ 영화 체험 기회다. 영화제 정보는 chiffs.kr

57년부터 7자로 끝나는 해 대표작 17편 상영
지난 50년 젊은이들 풍속도·판타지가 한눈에

■1957년, 〈순애보〉=대천해수욕장 전경을 ?f는데, 저 근육질 남자들과 에스라인 몸매 여자들이 정녕 50년대 사람들이란 말인가. 여자들은 넓은 챙 모자에 어깨를 훌러덩 드러낸 수영복을 입고 백사장에 누워 살을 태우거나 수상스키를 타고 있다. 여주인공 김인순(김의향)은 “방콕과 홍콩을 돌아 어제 서울에 도착하길” 밥먹듯 하는 “에어껄(비행기 승무원)”이다. 그는 화가 최문선(성소민)을 찾아 해변을 거닐 때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옷을 3번이나 바꿔 입고 선글라스도 낀다. 당시 ‘수영복 착용’이란 ‘심한 노출’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영화다. 여자 주인공은 사랑에도 적극적이어서 최문선에게 “이성으로서 감정 없는 접촉은 불가능해요”라고 구애하며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간다.

이 도발적인 영화를 만든 감독은 한형모다. 당대 유행을 주도했던 감독으로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키스 장면을 담은 윤인자 주연의 〈운명의 손〉(1954년), 중산층 여성의 욕망을 그린 〈자유부인〉(1956년)을 내놓은 당사자다. 〈순애보〉는 한국 전쟁의 잔해는 싹 지워버리고 서구 문명에 대한 불타오르는 짝사랑을 담아 그 시대 사람들의 열망과 판타지를 스크린에 띄웠다.

■1967년, 〈엘레지의 여왕〉=제목처럼 ‘엘레지의 여왕’이 별명인 당대 최고 스타 이미자씨가 난데없이 등장해 카메라를 보며 영화를 소개한다. “이건 제 이야기이고 제 배역은 남정임씨가 맡았습니다.” 그러더니 노래까지 한곡 부르고 나서야 비로소 영화가 시작된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야기, 엄마는 집 나가고 아빠는 중풍으로 누웠는데 늙은 할머니까지 책임져야 하니 어린 미자는 거의 거지꼴이다. 노래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지 못했던 미자, 낮에는 회사 급사로 일하고 밤에는 노래 공부에 매달리니 결국 방송사 ‘전국노래자랑’에서 ‘톱싱어’로 뽑힌다. 가고파 캬바레에서 일하며 인기를 쌓아갈 즈음 악사 장(박노식)과 결혼해 딸도 낳았는데, 아~ 성공은 덧없어라. 악사 장은 결국 그를 떠나버리고 불멸의 인기곡 ‘동백아가씨’는 방송금지처분을 받고 말았다.

여기서, 이미자의 아역을 맡았던 김명옥에게 주목. 이 아이가 훗날 콧소리 담뿍 담은 ‘빙글빙글’로 인기를 모은 가수 나미다. 김명옥은 가수 윤복희의 일대기를 그린 〈미니아가씨〉(1968년)에서 윤복희의 아역을 맡기도 했다. 남정임이 립싱크로 들려주는 이미자의 인기 곡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당시 쇼 프로그램과 댄스홀 풍경, 오디션 과정을 볼 수 있다. 특히 지금도 방영 중인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의 40년 전 모습이 담겨 있다.

■1977년, 〈고교우량아〉=1976년을 강타한 〈고교얄개〉의 속편 격이다. ‘유쾌한 우량아’라는 별명을 지닌 승현(이승현)의 뇌는 다음 것들으로 이뤄져 있다. 누나(정윤희)와 매형(하명중)에게 용돈 타기, 민들레 빵집에서 만나는 여자친구 ‘몽당연필’ 주희(강주희)의 마음에 들기, 수업 시간 방해하기…. 말썽꾸러기라도 정의감은 넘친다. 전학 온 힘깨나 쓰는 학생이 학교 ‘짱’ 자리를 놓고 싸움을 걸자 혼을 내준 뒤 상대에게 이런 민망한 대사를 날린다. “너는 우량아인 척하지만 아니다. 남자가 싸울 때는 옳지 못한 걸 볼 때다. 그게 우량아의 정의다.”

살벌했던 유신정국이고 뭐고 〈고교우량아〉는 조각구름 하나 지나지 않도록 쾌청, 명랑하기만 하다. 그래도 “애국심을 고취하는 서정시를 쓰겠다”는 여학생이나 교련복 입고 행진하는 남학생들의 모습에서 얼핏 그 시대가 스친다. 참고로 이런 하이틴 영화 열풍 속에서도 흥행에 참패한 작품이 있었으니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를 만든 송영수 감독의 데뷔작 〈나비 소녀〉다. 시대에 대한 비판을 묵직하게 담아 가라앉아 버렸다. 이 작품도 ‘추억전’에서 상영한다.

충무로영화제 ‘한국영화추억전 #7’ 상영작
충무로영화제 ‘한국영화추억전 #7’ 상영작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배창호 감독, 이명세 조감독이 세공한 감수성의 결정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 연극무대에서 “카페 마들렌에서 아침을 먹는다”는 대사를 읊는 주혜린(황신혜)의 고혹적인 눈매가 첫 장면이다. 결국 주혜린은 “브로드웨이에서는 문을 연다고 하지 않고 불을 밝힌다고 하지요”라며 느끼하게 다가온 남자에게 빠진다. 혜린 앞에서는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차나 한잔…” 밖에 말 못하는 김영진(안성기)은 3년 넘게 목 빠져라 혜린을 기다린다.

줄거리야 사실 딱 보면 척 알 만한데 명장면이 하나 둘이 아니다. 영진이 처음 혜린을 만나는 장면, 카메라는 영진의 안경 뒤에 숨는다. 안경알 속 혜린만 또렷하고 나머지는 흐릿해져버린다.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온 혜린과 영진이 다시 만나 차를 마시는 장면, 에디트 피아프의 곡이 흐르고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아래 혜린은 “〈뉴욕타임스〉에서 저를 동양에서 온 신데렐라라고 했죠”라며 뽐내는데, 갑자기 전기가 끊겨 조명도 노래도 사라지자 처연한 처지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혜린의 사무실 밖 붉은 공중전화박스에서 영진이 하염없이 혜린을 기다리는 장면은 거의 고전이다. 최루탄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던 시절에 손끝의 떨림, 주전자에서 뽀얗게 올라오는 수증기, 날아가는 노란 우산을 섬세하게 잡아낸 이 말간 얼굴의 영화로 “한국 영화를 다시 보기로 했다”는 관객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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