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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우주정복’ 회의적인 괴짜 우주인

등록 2007-10-18 19:33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
18일 개봉한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감독 야마가 히로유키)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등을 내놓은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의 창립 작품이다. 8억엔을 들여 3년 동안 제작한 이 대작은 1987년 당시 흥행에는 참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마니아 취향의 탄탄한 작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는 가이낙스의 색깔을 드러내며 ‘불운의 명작’으로 명성을 유지해왔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목이 된 안노 히데야키(〈신세기 에반게리온〉 등)가 작화를, 가이낙스 대표 야마가 히로유키가 감독을 맡고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입힌 이 작품이 고화질로 복원됐다.

오네아미스 왕국의 최초 우주인을 다룬 이야기인데 전개는 관습을 벗어나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처럼 주인공 시로쓰구는 낙관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지만 성적이 나빠 떨어지고 왕립우주군에 입대했다. 왕립우주군, 이름은 거창한데 인공위성 하나 제대로 날려본 적 없어 “땅 위를 걸어다니는 우주군”이라는 놀림만 당하는 집단이다. 삶에 큰 기대 없이 술이나 마시는 평범한 시로쓰구는 가난하며 독실한 종교인인 소녀 리크니를 만나 우주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왕립우주군〉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회의와 질문으로 차 있다. 시로쓰구의 역할은 답하는 게 아니라 묻는 것이다. 인류는 바다와 땅 밑을 개척했지만 동시에 파괴해 버렸다. 인류가 우주까지 망쳐버리진 않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큰돈을 들여 우주선을 만드는 게 옳을까? 마침내 시로쓰구가 우주로 떠나 지구를 바라보면서 읊조리는 말은 기쁨에 들뜬 감탄이 아니라 인류의 성찰과 각성을 호소하는 기도다. 신지도 시로쓰구도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더는 인류의 착한 이성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회의하면서도 한발짝씩 세계로 나아가길 멈추지 않는 가이낙스식 주인공들이다. 100%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이 20년 전에 던진 질문은 여전히 의미심장하고 그림은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고 역동적이다. 다만 소녀 리크니를 묘사하는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자신을 겁탈하려 하는 시로쓰구의 머리를 내리친 뒤에 되레 때린 걸 미안해하는 식으로 남성 판타지에 기대 왜곡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가이낙스의 작품이 이렇게 독특한 색깔을 지닌 까닭은 그 모태에서 찾을 수 있다. 가이낙스의 전신은 오타쿠(마니아) 대학 동창 4명이 만든 아마추어 창작 집단 다이콘이다. 자신을 사로잡은 작품들을 향한 오마주와 패러디를 비밀스런 보물처럼 작품 속에 담뿍 숨겨둔다. 김종철 영화평론가는 “가이낙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처럼 대중들이 모두 좋아하는 작품보다 단단한 팬층을 확보한 작품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이모션픽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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