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레지던트 이블3>의 앨리스, <레지던트 이블3>의 클리어,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 <킬 빌>의 더 브라이드 등 영화 속 여전사들.
할리우드 영화 속 ‘강한 여성’ 의 진화
‘레지던트 이블3’의 여전사들, 강하고 정의로우며 성적 매력도 넘쳐
가부장적 권력에 도전하고 자립 존중하는 현대여성 욕망의 투영 좀비들의 창궐로 인류가 멸망 직전에 몰린 <레지던트 이블3>(18일 개봉)에는 두 명의 여전사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 앨리스는 아무리 많은 좀비가 몰려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탁월한 전투력을 가진 전사이고 클레어는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이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지도자다. 남성들은 두 여전사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보조적인 존재이거나, 인류의 생존에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악당들로 나온다. 이처럼 여성이 남성보다 정의롭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능력까지도 압도적으로 우월한 여전사의 이미지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한 트렌드가 되었다. 여전사의 대두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부장제를 고수했던 남성의 권력은 흔들리고, 반대로 여성은 남성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능력을 갖춰가고 있다. 연하의 꽃미남이 인기인 반면 ‘능력 있고 씩씩하며 의지력이 강한 여자’가 각광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강인한 여성은 여성 자신의 욕망일 뿐만 아니라, 궁지에 몰린 남성들의 은밀한 요구이기도 하다. 약해진 남성을 보살피고 도와줄 여전사, 혹은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물론 강한 여성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나 필름 누아르에 등장한 팜므 파탈은 남성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남자들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기도 하는 강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이 강한 여성들은, 남성 우위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무기를 갈고 닦아 남성 개인을 사로잡은 여성일 뿐이다. 이들은 남성을 이용하지만, 완벽하게 남성 사회를 전복하지는 못한다. 오하라는 남성에게 의존하고, 팜므 파탈은 남성의 어리석음을 비웃지만 그 체제 안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다소 상업적 취향이긴 하지만, 70년대의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에서 강인한 흑인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이미지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재키 브라운>에서 정갈하게 부활시킨 후, <데스 프루프>에서 신나게 폭주한다. 80년대는 남성적인 마초 영웅들이 할리우드를 장악한 시대였다. 그리고 아마조네스 타입의 여전사들도 마초 영웅 틈에서 탄생했다. <코난2>의 흑인 여전사 그레이스 존스는 여성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두려운 야수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반면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와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턴은 자타가 공인하는 여전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어떤 남성의 도움 없이도, 오로지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생존하길 원하고 또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한계는 명확했다. 요즘의 여전사들에 비해, 이들은 여성적인 면이 부족하다. 단지 외모만이 아니라, 이들은 남성 못지않은 근육질로 무장한 채 괴물들과 싸운다. 그리고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모성애다. 싸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을 구하려고 헌신한다. 여전사이기 이전에, 어머니의 원형인 것이다. 반면 21세기의 여전사들은, 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미녀 삼총사>의 세 미녀들, <툼 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 요보비치, <언더월드>의 케이트 베킨세일, <킬 빌>의 우마 서먼 등이 대표적인 여전사다.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포드는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남성과의 관계 역시 자신이 주도적인 입장에서 끌어간다. 과거 남성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력을 선취한 것이다. 요즘의 여전사들에게는 남성이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남성은 단지 선택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 자신의 의지다. 그런데 묘하게도 21세기의 여전사들은 더욱 주체적이면서 강력해진 동시에 더욱 섹시하고 고혹적이기도 하다. 액션만이 아니라 얼굴과 몸매, 패션까지 여전사들의 모든 것이 남성의 호흡을 가쁘게 한다. 여기에는 양면성이 있다. 대전격투 게임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나오는 비치 발리볼 게임까지 만들어졌다. 여전사일지라도, 그들을 하나의 성적 판타지로 바라보는 경향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여전사의 섹시함은, 여성다움을 버리고 남성적인 근육질의 전사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적인 면을 가지면서도 남성과 대등하게 싸운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남성들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섹시함’을 키우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섹시함 자체가 여성의 무기이기도 하고.
할리우드의 여전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트렌드로 이미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조폭 마누라> <형사> 정도에 불과하다. 할리우드와는 다른 한국의 독창적인 여전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김봉석/영화평론가
가부장적 권력에 도전하고 자립 존중하는 현대여성 욕망의 투영 좀비들의 창궐로 인류가 멸망 직전에 몰린 <레지던트 이블3>(18일 개봉)에는 두 명의 여전사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 앨리스는 아무리 많은 좀비가 몰려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탁월한 전투력을 가진 전사이고 클레어는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이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지도자다. 남성들은 두 여전사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보조적인 존재이거나, 인류의 생존에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악당들로 나온다. 이처럼 여성이 남성보다 정의롭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능력까지도 압도적으로 우월한 여전사의 이미지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한 트렌드가 되었다. 여전사의 대두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부장제를 고수했던 남성의 권력은 흔들리고, 반대로 여성은 남성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능력을 갖춰가고 있다. 연하의 꽃미남이 인기인 반면 ‘능력 있고 씩씩하며 의지력이 강한 여자’가 각광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강인한 여성은 여성 자신의 욕망일 뿐만 아니라, 궁지에 몰린 남성들의 은밀한 요구이기도 하다. 약해진 남성을 보살피고 도와줄 여전사, 혹은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물론 강한 여성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나 필름 누아르에 등장한 팜므 파탈은 남성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남자들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기도 하는 강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이 강한 여성들은, 남성 우위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무기를 갈고 닦아 남성 개인을 사로잡은 여성일 뿐이다. 이들은 남성을 이용하지만, 완벽하게 남성 사회를 전복하지는 못한다. 오하라는 남성에게 의존하고, 팜므 파탈은 남성의 어리석음을 비웃지만 그 체제 안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다소 상업적 취향이긴 하지만, 70년대의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에서 강인한 흑인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이미지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재키 브라운>에서 정갈하게 부활시킨 후, <데스 프루프>에서 신나게 폭주한다. 80년대는 남성적인 마초 영웅들이 할리우드를 장악한 시대였다. 그리고 아마조네스 타입의 여전사들도 마초 영웅 틈에서 탄생했다. <코난2>의 흑인 여전사 그레이스 존스는 여성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두려운 야수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반면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와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턴은 자타가 공인하는 여전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어떤 남성의 도움 없이도, 오로지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생존하길 원하고 또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한계는 명확했다. 요즘의 여전사들에 비해, 이들은 여성적인 면이 부족하다. 단지 외모만이 아니라, 이들은 남성 못지않은 근육질로 무장한 채 괴물들과 싸운다. 그리고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모성애다. 싸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을 구하려고 헌신한다. 여전사이기 이전에, 어머니의 원형인 것이다. 반면 21세기의 여전사들은, 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미녀 삼총사>의 세 미녀들, <툼 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 요보비치, <언더월드>의 케이트 베킨세일, <킬 빌>의 우마 서먼 등이 대표적인 여전사다.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포드는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남성과의 관계 역시 자신이 주도적인 입장에서 끌어간다. 과거 남성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력을 선취한 것이다. 요즘의 여전사들에게는 남성이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남성은 단지 선택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 자신의 의지다. 그런데 묘하게도 21세기의 여전사들은 더욱 주체적이면서 강력해진 동시에 더욱 섹시하고 고혹적이기도 하다. 액션만이 아니라 얼굴과 몸매, 패션까지 여전사들의 모든 것이 남성의 호흡을 가쁘게 한다. 여기에는 양면성이 있다. 대전격투 게임
할리우드의 여전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트렌드로 이미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조폭 마누라> <형사> 정도에 불과하다. 할리우드와는 다른 한국의 독창적인 여전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김봉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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