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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준비 없는 ‘고화질’ 드라마, 악몽이어라

등록 2007-11-04 19:29수정 2007-11-05 01:31

저공비행
고화질(HD) 텔레비전 이야기를 해보자. 요새 여자 연예인들의 불평 중 하나가 고화질로 나오면 피부의 잡티가 다 드러나 보이니 화장이 더 힘들어졌다는 게 아니던가? 이론만 따지면 맞다. 고화질의 해상도는 분명 기존 텔레비전보다 높다. 같은 구성의 화면이라면 당연히 정보량이 더 많은 고화질 화면 쪽이 주인공 피부의 잡티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 나는 그 연예인들이 고화질 텔레비전을 걱정하는 것만큼 영화출연을 걱정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역시 원론만 따진다면 영화출연은 고화질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만큼 걱정되는 일이어야 한다. 영화 장르로 옮겨 타도 해상도는 여전히 증가한다. 그러나 난 정말로 그런 불평을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 얼마 전 <옥션 하우스>라는 문화방송 드라마 시리즈를 봤는데, 아, 끔찍했다. 에피소드의 반이 주인공 얼굴의 클로즈업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배우들의 화장이 떡진 것까지 다 보인다. 그런 화면이 러닝 타임의 절반을 꽝꽝 채우고 있는 거다. 이건 거의 폭격과 같다. 화장이 떡진 배우의 얼굴은 굳이 시청자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없는 잉여 정보이다. 적당히 알아서 감추고 대신 그 빈자리를 다른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상식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그런 상식은 내가 본 에피소드의 무자비한 클로즈업과 조명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같은 방송국의 같은 고화질 텔레비전 시리즈라고 해도 <케세라세라>를 볼 때는 이런 폭격을 체험한 적 없었다. 아니 덜 체험했다. 여전히 배우의 피부 트러블이 보일 정도로 클로즈업이 남발되긴 했어도 적어도 폭격당하는 느낌은 없었다. 결국 이 모든 건 감각의 문제이고 매체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인데, 내가 본 에피소드는 고화질이라는 매체를 순전히 양적으로만 보고 접근했다 할 수 있다. 여기서 고화질은 더 많은 정보량 이상의 의미가 없다. 같은 구성의 그림을 좀 더 세세하게 보여주는 게 우리 의무다. 그 결과 따라서 화면은 떡진 화장과 피부잡티의 추가 정보가 넘쳐나고 16:9 화면의 양쪽은 의미 없이 텅텅 빈다.

이런 사고방식은 원시적이지만 과도기적이다. 모든 사람들이 고화질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며 고화질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긴 할 거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고화질 텔레비전이 없던 때도 사람들은 비디오로 영화를 잘만 봤다. 화면 비율 때문에 양쪽이 잘려나가고 몇몇 장면들이 부분 확대되긴 했어도 그들은 기본적으로 극장용 영화들이었으며 우리에게 텔레비전 연속극처럼 부지런한 대갈치기 서비스를 해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우린 그런 영화들을 보면서 어떤 불만도 없었다. 아마 사람들은 화면 가득 채운 얼굴에 대한 수요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그냥 몇 십 년 동안 굳어지고 대물림된 습관의 잔재일 경우가 더 많다.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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