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유명 영화와 이름을 똑같이 짓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들이 늘어나고 있다. 위부터 <마이 뉴 파트너> <무방비 도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왕과 나> 순으로 왼쪽은 원작 제목의 외국 영화, 오른쪽은 같은 이름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
‘무방비 도시’ ‘마이 뉴 파트너’…이름만 같고 내용은 딴판
인지도 높지만 관객들 혼동 원작이미지 훼손 우려도
인지도 높지만 관객들 혼동 원작이미지 훼손 우려도
<마이 뉴 파트너> <무방비도시> <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비열한 거리> <왕과 나>…. 어디서 들어본 듯하다? 고전 유명 영화들과 제목이 똑같은 영화나 드라마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리메이크나 패러디물이 원작의 이름을 따다 쓰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흔하지만 이 작품들은 원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어서 고전영화팬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체로 유명한 고전 걸작 영화의 제목이 지닌 분위기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또한 유명영화 제목들이 다른 이름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년 초 개봉하는 김명민, 손예진 주연의 <무방비도시>는 소매치기와 형사 이야기인데 제목은 이탈리아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유명 영화 <무방비도시>(1945년)를 가져왔다. 역시 내년 초 개봉작인 안성기, 조한선 주연의 <마이 뉴 파트너>도 1984년 흥행작인 클로드 지디 감독의 <마이 뉴 파트너>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이름이 똑같다. 영화뿐만 아니라 에스비에스 드라마 <왕과 나>도 율 브리너, 데보러 커 주연의 1956년작 이름을 썼다.
유명 영화의 원제는 아니지만 국내 개봉 당시 독창적으로 만들어 달았던 제목들을 다시 쓰는 경우도 있다. 올해 초 개봉한 한국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워렌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주연했던 1967년작 <보니 앤 클라이드>의 한국판 제목을 썼다. 제작사 청년필름 쪽은 “내용과 맞으면서도 힘 있고 익숙한 제목을 찾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올 초 개봉했던 설경우 조한선 주연의 <열혈남아>도 1988년 개봉한 왕자웨이 감독 영화의 한국 제목과 이름만 같다. 이명세 감독이 최근 연출한 <엠>의 경우 영화사 걸작으로 꼽히는 프리츠 랑 감독의 1931년작 <엠>과 제목이 같은데, 이 감독이 히치콕 감독에게 엠이란 글자를 받는 꿈을 꾸어 제목을 <엠>으로 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최근 들어 부쩍 심해졌지만 이전에도 <비열한 거리>, <품행제로>, <공공의 적> 등 종종 같은 사례가 있었다. 영화계에서는 이렇게 유명 제목을 그대로 쓰는 것이 마케팅 효과도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심영 케이엠컬쳐 이사는 “예전 영화에서 이름을 가져오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고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심희장 아이엠픽쳐 마케팅 이사는 “제목이 관객의 입에 붙어야 하니까 친숙한 이름을 선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패러디나 리메이크도 아닌데 영화 제목을 똑같이 짓는 것은 외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저작권법 상으로는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관객들에게 혼동을 주고 원래 영화들에게는 유무형의 피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외국에서는 제목이 같으면 당연히 리메이크작일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내용이 다른 경우에 이름을 똑같이 쓰는 사례는 거의 없다”며 “유명 작품을 비틀어 새로 만드는 것 같은 명백한 이유가 아니라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종철 영화평론가는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옛 작품의 느낌이 훼손당하는 듯해 유쾌하지 않다”고 평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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