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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불온한 욕망의 ‘미궁’ 속으로

등록 2007-11-11 19:57수정 2007-11-11 20:05

세븐데이즈
세븐데이즈
만듦새 탄찬한 범죄스릴러 영화 두편
액션, 멜로, 코미디가 꽉 잡고 있는 한국영화에서 범죄 스릴러는 찬밥이었다. 관객은 ‘국산’ 두뇌 게임에 선뜻 응하지 않았고, 탄탄한 이야기를 갖추고 제대로 게임을 걸어오는 작품도 드물었다. 그런데 올 가을에는 사랑 싸움의 자리를 두뇌 싸움이 차지했다. 여름 개봉했던 <리턴>에 이어 14~15일 <세븐데이즈>와 <웨스트 32번가>가 맞붙고 29일엔 <우리동네>가 뒤따른다. 수만 많은 게 아니라 작품의 짜임새도 탄탄해졌다. 남은 것은 관객들의 선택이다. 한국 영화 변방의 장르 스릴러에 도전한 신작들이 와 <24시> 등 미국 범죄 드라마로 높아진 관객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까? 이번 주 개봉하는 <세븐데이즈>와 <웨스트 32번가>에서 긍정적인 단서들을 찾을 수 있다.

사건의 미궁, ‘세븐데이즈’

납치된 딸위해 사형수 돕는 변호사
‘숨 쉴틈 없는 7일’ 팽팽한 긴장감

3800컷. 이제까지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컷 수가 많다. 그만큼 편집이 빠르다. 유능한 변호사 지연(김윤진)의 딸이 납치되고, 납치범의 요구에 따라 지연이 강간·살해범으로 일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정철진을 이심에서 무죄로 석방시키기 위해 정철진 사건에 뛰어들 때까지 한 호흡에 몰아쳐 들어간다. 이심까지 주어진 시간이 딱 7일이다.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이야기의 긴장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지연이 정철진 건을 조사할수록 권력 실세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다. 정철진은 진짜 범인인가? 권력 실세는 누구인가? 납치범은 누구인가? 샛길로 새지 않고 이 세 가지 질문만을 팽팽하게 엮고 시간에 한계를 주는 것이 <세븐데이즈>가 관객을 긴장하게 하는 전략이다. 관상부터 저놈이 천상 범인, 증거도 없이 미모의 변호사가 열변을 토하면 배심원이나 판사가 감동해 무죄 판결 내려주는 식의 김 빠지는 설정들이 <세븐데이즈>에는 없다. 대신 미국 범죄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현장의 혈흔 검사, 부검 등이 도드라진다.


세븐데이즈
세븐데이즈
인물의 심리 묘사에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고 바로 해결을 찾아가는 직구같은 영화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파헤쳐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진 않지만 롤러코스터 같은 속도와 문제 해결의 쾌감은 준다. 그런데 남는 의문 몇 가지. 돈도 꽤 있어 보이는 납치범은 왜 정철진이 이심까지 넘어가기 전에 유능한 변호사를 합법적으로 쓰지 않았을까? 시간의 압박이 무색하도록 매일 하루 사이에 어떻게 그리 많은 일들이 다 벌어질 수 있을까? <구타유발자>의 원신연 감독 작품이다.


심리의 미궁 ‘웨스트 32번가’

뉴욕 룸살롱서 벌어진 살인사건
세속적 성공에 눈먼 ‘인간’ 탐구

‘웨스트 32번가’
‘웨스트 32번가’
한국 교포들이 많이 사는 미국 뉴욕의 웨스트 32번가. 첫 장면은 그곳 룸살롱을 훑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어와 한국어가 섞여 있는 그곳은 한국도 미국도 아닌 경계의 공간이다. 룸살롱의 수익금을 폭력 조직에게 운반하는 역할을 하던 영업이사가 총 세발을 맞고 숨진다. 용의자는 14살짜리 한국인 케빈 리다. 케빈 리의 변호를 맡아 승소해 이름을 날리고픈 한국인 2세 변호사 존 킴(존 조)이 케빈의 누나 라일라 리(그레이스 박)를 찾아온다. 룸살롱의 새로운 영업이사로 발탁됐다가 쫓겨난 건달 마이크 전(김준성)은 존 킴에게 접근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영화의 핵심적인 질문은 범인이 누구냐이기보다 인물들의 속내가 무엇이냐다. 음습하고 정체성이 모호한 웨스트 32번가는 존 킴, 마이크 전, 그리고 라일라까지 인물들의 성격과 닮았다. 교포사회라는 공동체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지만 그들은 여러 결을 띤다. 존 킴은 한국식 술 문화를 백인 친구들과 함께 우스개로 삼는 백인에 가까운 교포다. 마이크 전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는 교포 사회의 논리에 익숙한 인물이다.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아닌 이들은 스스로가 누구인지 헷갈리거나 관심이 없으며 오직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욕망밖에 없다. 인물이 그들이 속한 사회의 어두운 은유이자 결과물이란 점에서 <웨스트 32번가>는 단순한 추리물이 아니라 범죄 느와르에 가깝다. 서로 이용하려고 눈을 번득이고 있는 인물들 사이의 긴장이 팽팽하게 극을 끌고 간다.

‘웨스트 32번가’
‘웨스트 32번가’
이 영화의 배우와 감독은 모두 교포 2세다. 그래서 제작진 스스로 깊이 공감할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영화 전반에 스며 있다. 양파 껍질처럼 겹겹이 의뭉스러운 인물에 대한 탐구가 돋보이지만 추리 과정은 상대적으로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남는 의문 몇 가지. 마이크 전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만한 단서를 쥔 목격자를 존 킴에게 왜 그렇게 쉽게 소개해줬을까? 왜 마이크 전을 조종했을 폭력 조직의 핵심까지 이야기를 뻗어가지 않았을까? <모텔> 등으로 선댄스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마이클 강 감독의 작품이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씨제이엔터테인먼트, 프라임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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