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
존 프랑켄하이머가 생전에 했던 인터뷰를 언젠가 본 적 있는데, 한동안 영화를 계속 실패하다가 텔레비전 영화를 만들 기회가 생기자 고민을 엄청나게 했다고 한다. 텔레비전으로 시작한 감독이니 일이 낯설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만추리안 캔디데이트>를 만든 감독이 나이가 들어서 다시 텔레비전으로 돌아가자니 그냥 쑥스러웠던 거다. 결국 “그런 식으로 폼만 잡다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죽을래?”라고 마음을 굳게 먹고 텔레비전 일을 했다는데, 그가 에이치비오(HBO)에서 만든 <앤더슨빌>이나 <버닝 시즌>과 같은 작품들은 꽤 좋은 영화들이니, 손해 보거나 스타일을 구긴 사람은 없다고 봐야겠다.
그동안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이제 텔레비전 일을 한다는 건 할리우드에서 더 이상 흉이 아니다. 심지어 그건 극장을 잡을 수 없어서 에이치비오(HBO)를 대안으로 택하는 수준 정도도 아니다. 그건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하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매체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프랑켄하이머가 경력을 시작한 50년대엔 텔레비전 고유의 개성은 생방송이었다. 하지만 요새는 떡밥을 던지며 한없이 이어지는 시리즈의 형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본격적인 기원은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 픽스>와 크리스 카터의 <엑스 파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텔레비전 시리즈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도 바뀌었다. 곧 개봉될 <세븐 데이즈>의 홍보 포인트 중 하나는 ‘미드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아마 <로스트>의 배우인 김윤진의 존재를 고려한 광고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세븐 데이즈>는 정말로 ‘미드’처럼 보인다. <24>처럼 정신없이 흔들리고 처럼 쉽게 드러나는 감각적인 스타일을 갖고 있다. 영화 같은 시리즈라는 걸 광고했던 <연애시대> 때와는 정반대라고 할까.
이게 좋은 건가? 아니. <24>나 가 그런 스타일을 택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분명한 스타일을 짜 넣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시즌제로 몇 년을 끄는 작품의 일관성과 개성을 유지할 수 있다. <24>의 분할화면처럼 시리즈의 설정과 얽혀 분리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하지만 <세븐 데이즈>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미드’ 스타일을 모방하기만 한다. 그 결과 영화는 의도만큼 쿨하지 않고 그냥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해 보이기만 한다.
교훈은 자명하다. ‘쿨함’을 무조건 모방하는 건 촌스러운 짓이다. 그건 모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을 만들 때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건 표면의 스타일이나 쿨함이 아니라 장르 자체에 대한 연구이다. 자신이 다르고 있는 재료들을 다루는 방법을 알면 쿨함은 알아서 따라온다. 뻔하디 뻔한 소리인데, 왜 이걸 지키는 사람들은 이렇게 찾기 어려운 걸까?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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