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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메키스는 어떻게 ‘졸리 아닌 졸리’를 완성했나

등록 2007-11-19 09:22

저메키스는 어떻게 ‘졸리 아닌 졸리’를 완성했나
저메키스는 어떻게 ‘졸리 아닌 졸리’를 완성했나
15일 개봉한 <베오울프>의 로버트 저메키스(55) 감독은 당대 최첨단 기술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도록 보편적인 이야기에 녹여내는 재주를 지녔다. ‘스필버그 사단의 영재’로 불리던 그는 <백 투더 퓨처> 시리즈 등 초기작부터 꾸준히 특수효과를 무기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왔다.

배우의 움직임을 디지털로 낚아채 가상 공간에 재현해 낸 <베오울프>는 저메키스가 추구해온 이런 시도의 정점을 보여준다. 영화속 안젤리나 졸리는 실제 안젤리나 졸리이면서 졸리가 아니다. 졸리를 디지털 이미지로 만든 복제물이다. 3차원 아이맥스 버전으로도 나온 <베오울프>는 그 환상 안에 관객이 직접 걸어 들어가 만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저메키스는 워너브라더스와의 인터뷰에서 “캠프 파이어에 둘러 앉아 이야기하고픈 인간의 욕망은 계속되지만 전통적인 필름의 개념은 바뀔 것”이라며 “이제 영화제작자들은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적 팔레트를 지니게 됐다”고 말했다.

#1. 경계 허무는 영상실험의 연속

■ 만화와 실사의 경계 = 20년 전인 1988년 저메키스가 만든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당시까지 나온 영화 중에서 가장 제작비가 많이 든 것(7000만 달러)이었다. 그 덕분에 이 영화는 실사와 만화 캐릭터의 거의 완벽한 결합을 보여준다. 코끼리 덤보는 진짜 땅콩을 날름 받아먹고 3살 짜리 몸에 50살의 지능을 지난 만화 아기는 진짜 담배를 피워댄다. <…로저 래빗>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저메키스의 만화같은 상상력은 이어 <죽어야 사는 여자>(1992년)로 나아가는 데, 성형 중독에 걸린 메릴 스트립, 골드 혼은 머리가 한바퀴 돌고 배에 동그란 구멍이 뚫린다.

■ 과거와 현재의 경계 = “(오줌을 참으며) 저 쌀 것 같은데요.” 아이큐 75인 포레스트 검프(톰 행크스)는 흑백 필름 속 실제 케네디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눈다. 화장실 가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는 검프를 보며 케네디 대통령이 쑥쓰럽게 웃기까지 한다. 기술을 총동원해 미국 현대사를 재현한 <포레스트 검프>(1994년)는 컴퓨터그래픽이라고 보이지 않는 ‘따뜻한’ 컴퓨터그래픽으로 미국인의 향수를 자극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등 6개상을 휩쓸었다.

■ 실재와 환상의 경계 = 같은 이름의 동화책을 영화로 만든 <폴라 익스프레스>(2004년)는 <베오울프>에 쓰인 ‘퍼포먼스 캡처’ 방식을 처음 도입한 애니메이션이다. 산타를 찾는 아이들의 모험을 담은 이 영화 속에서 인물의 머리카락 한올 한올이 살아있다. 톰 행크스가 온몸에 센서를 달고 1인 5역을 연기하면 이를 컴퓨터에 저장해 가상 공간 속에 옮겨 놓는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했다. 기존 애니메이션보다는 훨씬 사실적이었지만 인물의 눈은 묘하게 퀭했다. 눈은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눈동자 표현은 인물을 살아있게 만드는 데 중요했다. 그러나 안구에는 센서를 붙일 수 없었던 탓에 제대로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했고, 그래서 인물이 “좀비·골룸 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닮은 형상을 선호하지만 너무 똑같으면 되레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는 ‘언캐니 밸리’(불편한 계곡) 효과와 퀭한 눈이 맞물려 탄성을 자아내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느낌을 남겼다.

#2. 저메키스 왕국의 영웅 ‘베오울프’

<베오울프>는 이런 <폴라 익스프레스>의 단점을 기술적으로 극복했다. 안구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장치를 이용했다. 이렇게 해서 물의 마녀(안젤리나 졸리)의 유혹하는 눈동자와 베오울프(레이 윈스톤)의 얼굴에 얼핏 스치는 흔들림은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었다. 저메키스는 배우를 디지털로 복제해 자기 마음대로 변형시켰다. 실제로는 키 178㎝에 통통한 몸매인 레이 윈스턴은 2m 키에 근육질 베오울프가 되어 어마어마하게 큰 괴물 그렌델(크리스핀 헬리언 글로버)과 맞서 싸운다. 안젤리나 졸리의 몸은 미끈하고 번쩍거리는 점액질로 둘러쌓여있고 꼬리까지 달았다. 안소니 홉킨스, 존 말코비치 등 명배우들이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닌 디지털 캐릭터로 태어났다.

저메키스는 최첨단의 기술을 구현할 이야기로 고전 서사시를 골랐다. 현실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한 서사시는 진짜이면서 가짜인 퍼포먼스 캡처 기술과 잘 어울렸다. 6세기 덴마크를 무대로 영웅과 괴물의 전쟁을 다룬 고전 <베오울프>는 구전되면서 생략된 부분이 많았다. 괴물 그렌델이 덴마크의 왕 흐로스가를 죽이지 않는 까닭은 뭔지, 그렌델을 죽인 베오울프가 괴물의 어머니인 물의 마녀의 목을 자르지 않은 이유가 뭔지, 원작에서 생략된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넣었다. 그래서 용을 잡은 영웅 베오울프는 자신의 욕망에 승복해 불행을 자초하고 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지니게 됐다.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철저한 꿈의 재현을 지향하는 저메키스는 최첨단의 기술로 만든 고전 서사시의 공간에 인간도 괴물도 아닌 영웅을 넣어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의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제작자 스티브 스타키는 “이 영화는 기존의 실사와 애니메이션이라는 전통적 범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제3의 예술형식”이라고 말했다. <베오울프>는 284개 스크린에 걸리며, 이 중 37개는 3디 디지털로 상영한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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