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색계> 포스터
이안감독의 [음식남녀]는 외공B0 · 내공B0 · 대중성B0쯤 되어 보이는 참 괜찮은 가족영화이고, [와호장룡]은 외공B0 · 내공C+ · 대중성A0쯤 되어 보여서 대중적 재미로 볼만한 무협영화이고, 최근의 [블랙백 마운틴]은 동성애를 아직도 불편해 하기에 보지 않았지만 잘 만든 영화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이런 정도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이 그리 많지 않다. [색/계], 1942년 상하이, 중일전쟁을 배경으로 한 ‘미인계 스파이’영화다. 영화홍보물에 ‘농밀한 베드씬’을 20여분이나 보여준다며, 호객하는 글귀가 선명하다.
베드씬. 젖내 시절엔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낯 둘 바도 모르고 몸 둘 바도 몰랐다. 그저 쥐구멍만 찾았다. 여드름 시절엔 캥기는 뒷덜미로 식은 땀이 바짝 흐르면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목젖만 잠겨 올랐다. 대학시절엔 눈도 이골이 났고 귀도 많이 닳아서 뻔뻔한 얼굴로 침만 꼴깍 삼켰다. 청춘의 풋내가 익어가면서 청탁(淸濁)을 좀 가리게 되어 막가는 야한 사진이나 탁한 화면은 싫어졌고, 삶의 마디마디가 굵어지면서 누드도 심드렁해지고 막무가내 베드씬보다는 남녀의 심리적 미묘함이 배어든 터치가 읽히는 장면이 좋아졌다. 요즘엔 베드씬 자체엔 별로 관심이 없고 그들의 삶을 그려내는 하나의 모습으로 베드씬이 자연스럽게 섞여드는 게 좋다.(나이 드는 게 씁쓸하다가도, 어려선 까맣게 모르고 지내던 삶의 숨겨진 뒷자락이 손에 잡혀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영화는 양조위와 탕웨이의 생생한 정사장면에 상당한 무게가 실려 있다. 그런데 탄탄한 스토리의 진행에 누드와 정사 장면의 타이밍이 자연스럽게 이어 들지 못한다. 게다가 감독이 섹스 자체에 미숙한 건지 잘못된 고정관념에 갇혀있는 건지, 장면의 흐름이 꺾이고 리듬이 끊어지면서 어색한 과장을 보인다. 그러나 그만한 미인의 벗은 몸을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천박하지 않은 분위기로 볼 수 있는 것도 그리 흔치 않거니와, 포르노영화가 아니고서야 그만큼 적나라하게 그려낼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단순한 정사장면에 그치지 않고 남녀의 미묘하고 복잡하게 얽혀든 심리상태를 그려내고 있는 점이 좋았다. (굳이 까다롭게 따져 말하자면, 여배우가 정사의 표정연기가 좀 도식적이어서 요염토록 섹시한 매혹을 뿜어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거슬릴 정도는 아니니, 풋내기치고는 잘 소화해낸 셈이다.) 그게 장 자크 아노의 [연인]만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저 게슴츠레한 관음에만 그치기엔 아까운 미감이 담겨 있다. 일반사람들에겐,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제국]만큼이나 자극적이었겠다.
두세 군데 좀 어색한 곳 말고는 시나리오도 단단하여, 미인계 스파이영화 실비아 크리스텔의 [마타하리]나 폴 버호벤의 [블랙 북]처럼 스토리가 뻔하게 잡혀 들어오지 않아서, 영화내내 긴박감을 놓아주지 않았다. 영화가 중간쯤에 늘어지는 감이 있기는 하지만. 마무리가 어처구니없는 반전이 아니라 치밀한 반전이어서 더욱 좋았다. 작은 소품부터 음악 · 미술 · 의상 그리고 무대배경까지 매우 정성스러워서 영화의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지금까지 만난 이안작품 중에서 가장 흡족하고 가장 재미있었으며, 대중성을 겨냥한 영화치고 이만한 작품성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중성과 예술성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흔치 않은 영화이다. 외공A0 · 내공B0 · 대중성A0.
이 영화의 1등 공신으로, 탕웨이를 꼽는 사람이 많겠지만, 난 양조위를 꼽는다. 일본군 앞잡이의 냉혹하게 일그러진 이중성이 음울하게 외로운 한 마리 승냥이처럼 어슬렁거린다. 가파른 바위턱에 올라서서 떠오르는 둥근 달을 향하여 울부짖는 처연함은 상처 깊은 신음소리이다. 탕웨이가 연분홍 매화가 점점이 박힌 쪽빛 치파오로 탄탄히 휘어 감고서 중국노래와 춤을 보여주는 장면은, 그녀의 매력을 가장 아름답게 승화시킨 장면이기도 하지만, 양조위의 처연함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장면이기도 하다. 정사장면에서 그의 광기어린 황홀경으로 텅 비어버린 눈망울에 비쳐든 ‘그렁그렁 흔들리는 눈빛’은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가히 경이로울 정도로 신들린 표정연기이다.
원래 난 양조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우울증을 깊이 감추고서 지적인 듯이 진지하고 무겁게 깔고 들어오는 품새에서 ‘비린내 나는 비꼬임’이 느껴져 떨떠름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오히려 [화양연화]에선 점잖은 품격에 음울한 방황이 숨어들면서 엇갈려 어울려드는 모습을 보았고, [무간도]에선 그가 아니면 그 역할에 더 이상 어울릴 배우가 없어 보였다. 그리곤 이 영화에서 마침내 그의 연기력에 감동한 나머지 존경하는 맘까지 스며들어왔다. 그의 풋풋하게 반항적인 우울함보다도, 지긋이 짙어가는 중년의 무거운 비장함이 훨씬 멋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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