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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화 속 경찰이 무능한 이유

등록 2007-11-25 21:18

저공비행
얼마 전에 <우리 동네> 시사회를 보고 왔는데, 좋은 영화였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쉽게 진부해질 수 있는 연쇄살인 이야기를 창의적으로 변주한 것도 맘에 들었으며 결말의 울림도 상당했다.

하지만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경찰의 무능함이었다. 물론 영화 속의 경찰들은 유능할 수도 있고 무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동네>의 경찰들은 무능함의 도가 지나치다. 범인이 누군지 확신이 섰고 간접증거까지 있는데, 영장도 없이 혼자 (그것도 밤에!) 용의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건 도대체 뭔가? 범인이 남기고 간 게 분명한 물건들을 마구 맨손으로 쥐고 흔드는 건 뭐고? 같은 구역에서 유사한 내용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희생자들이 다섯 명이나 난 뒤에야 간신히 알아차리는 건 또 뭐고? 아무리 주인공 형사가 맘속이 심난하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하다.

그러다 역시 연쇄살인마를 다룬 <살인의 추억>이 생각났다. 우리가 이 영화를 엄청 사실적인 작품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일단 80년대라는 시대 배경을 잘 살렸기 때문이지만, 진짜 이유는 영화 속의 경찰들이 폭력적이고 멍청하고 무능하기 때문이다. 우린 언젠가부터 사실성과 무능함을 같은 선에 놓고 보고 있다.

경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전체적으로 유능함을 다루는 데 굉장히 서툴다. 가까운 예로 얼마 전에 개봉된 <세븐 데이즈>를 보자. 김윤진의 연기는 좋지만, 이 사람이 법정에서 변호사 노릇을 하는 순간 영화는 갑자기 ‘미드’(미국 드라마)의 모방이 되어버린다. 우선 변호사의 유능함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겠고, 간신히 그 비슷한 방법을 찾자니, 결국 미국 법정 드라마를 어색하게 모방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거다. 리메이크가 된다는 소릴 들었는데, 아마 그 영화가 더 낫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할리우드는 법정물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있으니까. 같은 변호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이클 클레이튼>을 보라. 사실성의 깊이가 다르다. 흉내에서는 깊이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유능함’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괜히 겉멋만 내세우는 대신 진짜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의 전문가다운 행동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법. 이런 식으로 관객들을 설득하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우린 장르 주변을 빙빙 돌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재미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주인공들이 자기 역할을 잘 하고 똑똑할수록 장르 영화들은 더 재미있어지며 <우리 동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사실적으로 유능한 인물들’은 실용적인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쓸만한 롤모델이 심하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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