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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사랑스러움’이 껄끄러운 세상

등록 2007-12-16 21:05

저공비행
에이미 애덤스는 종종 ‘미친년’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하는 동안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데, 내가 ‘미친년’이라는 표현을 쓴 건 이 사람이 영화 속에서 굉장히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준벅〉이나 곧 개봉될 〈마법에 걸린 사랑〉에 나오는 애덤스의 캐릭터들은 사랑받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활화된 순진무구하고 결백한 인물이다. 이건 좋은 거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팍팍한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겐 그런 태도나 행동이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미친년’이라는 과격한 단어가 은근슬쩍 개입하게 된다. 더 나쁜 단어로는 ‘내숭’이 있는데, 여기서부터 우린 그런 행동이나 캐릭터의 진실성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사랑스러움’이나 ‘애교’의 진실성을 믿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그 대상이 여성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외모지상주의와 성차별이 당연시되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것들은 대부분 경쟁자들을 밀어내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무기일 경우가 많다. 경쟁자들이 거기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건 슬프고 딱한 일이다. 타인의 사랑스러움은 위협적이기도 하지만, 우린 그만큼이나 타인의 사랑스러움을 즐기고 또 필요로 한다. 그런 사람들이 꼭 쟁취해야 할 이성이거나 자기가 키워야 할 아이들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무섭고 메마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슬슬 여기서 이야기는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에 나와 소위 ‘국보급 애교’를 떨어준 한예슬로 넘어가게 된다. 여자 배우가 토크쇼에 나와 약간의 애교를 보여준 건 대단한 뉴스가 아니지만, 한예슬의 경우는 질감이 조금 달랐다. 몇몇 연예 저널리스트들은 습관적으로 〈미녀들의 수다〉의 자밀라 소동과 비교하거나 남녀 시청자들의 양극화된 반응을 찾으려 시도했지만, 그들이 미리 짐작했던 (여성 시청자들의) 안티 소동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답은 이렇다. 한예슬은 노골적으로 ‘애교’를 떨면서도 경쟁자들을 긴장시킬 만한 계산된 행동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고 (남성)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낮추며 비굴하게 굴지도 않았다. 한예슬의 행동은 그냥 애교가 많은 사랑스러운 사람의 당연한 행동처럼 보였고 그 사람의 애교는 ‘그게 뭐 어때서?’식 당당한 항변과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사랑스러움’에 거부감을 느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소행성 충돌이나 핵전쟁의 방해 없이 인간이 진화하고 성장해 좀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면 우린 타인의 사랑스러움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되어 있을 거다. 둔하고 매력 없는 조상들인 우리들에게 그런 후손들의 미래는 지나치게 닭살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거칠고 못난 세상을 사는 게 뭐가 그렇게 좋은가.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그런 날이 오려면 멀었다.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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