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나침반>
베스트셀러 원작들 vs 각색 영화 두편
올겨울 눈길을 끄는 두 대작인 에스에프·공포영화 <나는 전설이다>(12일 개봉)와 팬터지 영화 <황금나침반>(18일 개봉)은 원작 소설이 이미 전설인 작품들이다. 리처드 매드슨이 1954년 쓴 <나는 전설이다>는 이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만든 조지 로메로 감독이나 소설가 스티븐 킹 등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필립 풀만의 3부작 <황금나침반>은 1995년에 출판돼 세계적으로 15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카네기 메달, 가디언상 등 영국의 문학상도 싹쓸이 하며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등과 함께 팬터지 문학의 명작으로 꼽힌다.
두 소설은 모두 주류 질서와 절대선에 의문을 제기하는 위험하고 도전적인 기념비들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장르에 속해있지만 현실를 예리하게 은유하며 비판했고, 그래서 단순한 히트작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았다. 과연 영화가 그 세계관을 제대로 스크린에 재현할 수 있을까? 영화와 원작 소설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살펴봤다.
유일신 ‘독선’ 지적인 판타지 명작 바탕
종교적 논란 줄이고 화려한 화면 선사 ■ 원작의 무게를 줄인 <황금나침반> =11월28일 미국 카톨릭연맹은 “무신론적 요소를 바탕 삼아 어린이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며 <황금나침반> 상영을 반대하고 나섰다. 풀만의 원작이 유일신을 내세운 종교의 독선이 세계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종교계의 반응에 크리스 웨이츠 감독은 “카톨릭 신자를 자극할 만한 부분은 거의 없다”고 답했다. 소설 1부에서 종교적으로 논쟁적이며 주류의 권위를 모두 뒤집는 부분은 마지막에 집중되어 있는데, 영화는 그 직전에서 안전하게 멈춘다. 절대 권력을 유지하려고 진실을 부정하는 종교 집단, 이에 맞서면서 또 닮아가는 과학자 집단이 있고, 주인공 라라(다코타 블루 리처드)의 엄마인 콜터 부인(니콜 키드먼)과 아빠인 아스라엘 경(대니얼 크레이그)이 각각 두 집단의 지도자급인 걸로 밝혀진다. 소설은 방대한 줄거리를 풀어가다 마지막에 두 집단이 서로 대치하지만 대의를 위해 약자를 희생시키며 권력을 좇는다는 점에서 실은 같은 원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또 성경 속 신의 뜻을 어겨 원죄를 지은 이브에게도 정당성이 있다고 암시한다. 라라가 지닌, 진리를 알려주는 황금나침반을 돌리는 힘은 종교 단체에서 원죄의 증거라고 매도한 물질 ‘더스트’다. 라라는 두 집단, 그리고 자신의 부모조차 절대선이 아님을 깨닫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더스트나 아스라엘 경의 진면목은 드러내지 않은 채 라라가 아스라엘 경을 위험에서 구하러 떠나는 것으로 1부를 끝맺는다. 종교며 과학까지 모든 기존 권위를 해체하는 회의 속으로 라라를 빠뜨리지 않는 것이다. 종교 권력의 독선적인 면모는 담았지만 아담과 이브같은 성서 속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하며 해석을 뒤엎지 않는다.
1억8천만달러를 들여서 만든 가공의 세계는 충분히 눈요기 거리가 되지만 영화는 줄거리를 담기 바빠 콜터 부인이나 아스라엘 경의 중요한 동기와 목적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이어 <황금나침반>을 만든 뉴라인 시네마가 2·3편을 잇따라 내놓을 예정이다. ‘소시민 생존기’ 로 시대상 조명한 원작
모티브만 빌려 할리우드식 영웅담으로
■ 원작과 대척점에 선 <나는 전설이다> =원작은 절망을, 영화는 희망을 본다. 원작이 소시민의 생존기라면 영화는 영웅담이다. 원작이 신의 섭리 따위는 자취조차 없는, 적자 생존의 쳇바퀴가 돌아가는 세계의 묵시록이라면 영화는 절망 속에서도 신의 사랑이 멈추지 않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2차세계 대전 직후, 핵 전쟁과 집단의 광기를 향한 처절한 비판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입맛에 맞게 거의 정반대로 뒤바꿔버린 것이다.
소설은 핵 전쟁 이후 1976년이 무대다. 작곡가인 로버트 네빌은 흡혈귀들이 밤 사이 부순 집을 수리하고 썩기 전에 주검들을 태우는 일들로 낮을 보낸다. 박쥐에 물려 흡혈귀 박테리아에 면역이 있는 네빌은 지구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다. 흡혈귀가 돼 버린 옛 이웃들은 네빌에게 자기들 편으로 오라고 밤마다 유혹한다. 절대 고독 속에서 네빌은 정상이란 뭔지, 인간이란 뭔지 고민한다. 흡혈귀들은 자아를 상실한 채 집단에 휩쓸리는 현대인을 닮았다. 폭력이 더 큰 폭력으로 대치되는 상황을 섬뜩하게 잡아내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그래 또 다른 시작인 거야. 죽음 속에서 태어난 새로운 공포.”
<콘스탄틴>을 만든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이 만든 영화는 원작의 모티브만 빌어왔다. 인류는 암을 정복하려고 바이러스를 조작했다가 되레 변종 바이러스에게 공격당한다. 변종 인간인 흡혈귀 세상이 되어버린 2012년, 홀로 남은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은 뛰어난 군인인 것도 모자라 빼어난 과학자다. 흡혈귀들은 단지 네빌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폭력적인 짐승들일 뿐이다. 제작진은 뉴욕의 폐허 속 네빌의 외로움을 효과적으로 잡아내며 신에 대한 회의도 약간 곁들였지만 영웅담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태원엔터테인먼트·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종교적 논란 줄이고 화려한 화면 선사 ■ 원작의 무게를 줄인 <황금나침반> =11월28일 미국 카톨릭연맹은 “무신론적 요소를 바탕 삼아 어린이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며 <황금나침반> 상영을 반대하고 나섰다. 풀만의 원작이 유일신을 내세운 종교의 독선이 세계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종교계의 반응에 크리스 웨이츠 감독은 “카톨릭 신자를 자극할 만한 부분은 거의 없다”고 답했다. 소설 1부에서 종교적으로 논쟁적이며 주류의 권위를 모두 뒤집는 부분은 마지막에 집중되어 있는데, 영화는 그 직전에서 안전하게 멈춘다. 절대 권력을 유지하려고 진실을 부정하는 종교 집단, 이에 맞서면서 또 닮아가는 과학자 집단이 있고, 주인공 라라(다코타 블루 리처드)의 엄마인 콜터 부인(니콜 키드먼)과 아빠인 아스라엘 경(대니얼 크레이그)이 각각 두 집단의 지도자급인 걸로 밝혀진다. 소설은 방대한 줄거리를 풀어가다 마지막에 두 집단이 서로 대치하지만 대의를 위해 약자를 희생시키며 권력을 좇는다는 점에서 실은 같은 원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또 성경 속 신의 뜻을 어겨 원죄를 지은 이브에게도 정당성이 있다고 암시한다. 라라가 지닌, 진리를 알려주는 황금나침반을 돌리는 힘은 종교 단체에서 원죄의 증거라고 매도한 물질 ‘더스트’다. 라라는 두 집단, 그리고 자신의 부모조차 절대선이 아님을 깨닫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황금나침반>
1억8천만달러를 들여서 만든 가공의 세계는 충분히 눈요기 거리가 되지만 영화는 줄거리를 담기 바빠 콜터 부인이나 아스라엘 경의 중요한 동기와 목적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이어 <황금나침반>을 만든 뉴라인 시네마가 2·3편을 잇따라 내놓을 예정이다. ‘소시민 생존기’ 로 시대상 조명한 원작
모티브만 빌려 할리우드식 영웅담으로
<나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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