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
2008년 선보일 한국영화 한눈에 보기
2008년 스크린은 역사 시대극 천하다. 고려 말부터 1970년대까지 시대적 배경도 소재도 갖가지다. 얼추 봐도 10여편이 포진해 있다. 올해 한국 영화는 흥행 성적에서 최악의 부진을 겪었고, 제작자들은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 것을 부진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과연 내년 사극들이 참신한 이야기에 목말라하는 관객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을까? 제작자들은 새로움을 좇아 ‘오래된 미래’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영화계가 사극에 관심을 갖는 까닭은 현대물에서 독특한 소재를 찾기가 그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도 갈수록 규모가 커져 영화의 스펙터클을 넘어서고 있고 비슷한 영화들이 여러편 개봉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현대물에 비해 사극은 영상부터 새로운 충격을 주며 차별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왕의 남자> <궁녀> 등을 제작한 영화사 아침 정승혜 대표는 “역사는 해석하기에 따라 다른 이야기의 보고”라며 “<조선남녀 상열지사> 등의 흥행 이후 제작자도 사극에 무거운 역사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자유로운 발칙함을 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30~40년대, 대작들의 격전지
일제강점기이지만 역사적인 무게는 확 덜어냈다. ‘그 시대라고 독립운동가만 살았더냐’라는 전제를 깐 듯 주인공들 면면이 도적부터 신출내기 방송국 피디까지 다채롭다. 서양과 동양, 자유과 억업의 분위기가 얽혀 있는 당시 풍경은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를 빼고 제대로 스크린에 옮겨진 적이 없었다.
제작비 120억원 규모 대작인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만주 벌판이라는 배경도 한국형 웨스턴이라는 장르도 낯설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만든 <석양의 무법자>의 큰 틀을 따라 돈욕심 꽉 찬 주인공 세 명이 등장한다. 열차털이범 윤태구(송강호)가 지도를 하나 훔치는데 마적던 창이파 두목 창이(이병헌)는 이 지도를 되찾아야만 한다. 창이를 현상금 사냥꿈 박도원(정우성)이 쫓는다. 여기에 마적떼, 조선독립군, 일본군까지 얽히고 섥혀든다. 코끼리, 낙타, 늑대 등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동물이 등장한다. 시대적 고증에는 관심없이 이국적인 풍광으로 채우는 오락영화다.
<해피엔드> <사랑니>를 만든 정지우 감독의 신작 <모던 보이>도 제작비 80억원 규모 대작인데 주인공은 조선총독부 서기관이며 ‘낭만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해명(박해일)이다. 1930년대 경성을 재현해 그 풍경 속에 철딱서니 없는 해명(박해일)과 해명이 폭 빠저버린 정체불명의 댄서 조난실(김혜수), 이둘을 쫓는 알쏭달쏭한 인물 신스케(이한)를 놓았다.
<모던 보이> 개봉이 4~5월로 미뤄지면서 같은 시대를 다뤘지만 제작비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은 <라듸오데이즈>(감독 하기호)와 <원스 어폰 어 타임>(감독 정용기)은 한숨을 돌렸다. 이 두 코미디 영화는 1월 31일 개봉해 맞붙는다. <라듸오데이즈>는 1930년대 한국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한량에 가까운 피디(류승범)과 얼치기들이 수시로 방송 사고를 치며 라디오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을 따라간다. 코믹 액션물인 <원스 어폰 어 타임>은 보석 ‘동방의 빛’을 훔치려는 재즈가수겸 도둑 춘자(이보영)와 최고의 사기꾼 봉구(박용우)의 대결을 그린다. <라듸오데이즈>를 만든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의 박주석 마케팅 팀장은 “일제강점기에도 즐거움은 있다는 식으로 30년대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도들이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조선까지, 멜로·액션·코미디 집합
시대만 미답 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니라 이야기도 파격적이다. <비열한 거리>의 유하 감독이 만드는 <쌍화점>은 고려왕과 미소년 36명으로 구성된 왕의 친위부대 ‘건룡위’의 수장 사이 동성애를 다룬다. 왕은 주진모, 친위부대 수장은 조인성이 맡았다. 이들의 사랑에 권력을 쥔 원나라 왕후가 끼어든다.
100억원대 블록버스터인 <신기전>(감독 김유진)은 세종 30년, 1448년에서 시작하는데 비밀 병기를 둘러싼 국제 암투가 현대와 다르지 않다. 최무선이 로켓병기의 일종인 신기전을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강대국과의 대결, 추격, 액션 등을 보탰다. 조선은 외압에 맞서려고 몰래 신기전을 개발하지만 이를 눈치챈 명나라 자객들이 연구소를 습격한다. 목숨을 건진 홍리(한은정)는 보부상 상단 우두머리 설주(정재영)와 함께 도망친다.
여균동 감독의 <기방난동사건>은 1724년 건달 천둥(이정재)과 명월향 기생 설지(김옥빈)의 좌충우돌 연애와 건달 사이 액션을 버무린 코미디다. 조선 저잣거리를 옮긴 세트장엔 ‘고모네 선술집’ 등 현대적인 글귀들이 우습게 붙어있다. 시대를 더 내려와 <불꽃처럼 나비처럼>(감독 김용균)은 명성황후를 지키려던 무사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다.
한국전쟁~배트남전, 희비극의 여로
<즐거운 인생>에 이어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 완결편인 <님의 먼곳에>는 웃기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리듬에 발장단이 맞춰지는 그런 영화로 나올 예정이다. 1971년 순이(수애)는 자기한테 눈길 한번 제대로 안주는 남편 상길(엄태웅)을 따라 베트남까지 간다. 위문공연단에 합류해 남편을 찾지만 상길이 실종됐다는 소식만 듣는다. 게다가 위문공연단 단장(정재영)은 오직 한몫 크게 잡을 속셈밖에 없는 속물이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이 밴드는 <늦기 전에> 등을 부르며 흥을 돋운다. 1970년대 기지촌을 배경으로 삼은 <고고70>(감독 최호)은 가난한 청춘들이 밴드를 만드는 이야기다.
한국 전쟁의 비극을 철저히 고증하거나 픽션으로 만든 작품들도 개봉을 기다린다. 노근리 학살 사건을 다룬 <작은 연못>(이상우), 1953년 전쟁 막바지 약육강식의 살풍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소년들의 이야기 <소년은 울지 않는다>(감독 배형준)이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모던 보이> 개봉이 4~5월로 미뤄지면서 같은 시대를 다뤘지만 제작비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은 <라듸오데이즈>(감독 하기호)와 <원스 어폰 어 타임>(감독 정용기)은 한숨을 돌렸다. 이 두 코미디 영화는 1월 31일 개봉해 맞붙는다. <라듸오데이즈>는 1930년대 한국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한량에 가까운 피디(류승범)과 얼치기들이 수시로 방송 사고를 치며 라디오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을 따라간다. 코믹 액션물인 <원스 어폰 어 타임>은 보석 ‘동방의 빛’을 훔치려는 재즈가수겸 도둑 춘자(이보영)와 최고의 사기꾼 봉구(박용우)의 대결을 그린다. <라듸오데이즈>를 만든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의 박주석 마케팅 팀장은 “일제강점기에도 즐거움은 있다는 식으로 30년대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도들이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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