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거스트 러쉬, 라비 앙 로즈
원스, 어거스트 러쉬, 라비 앙 로즈
2007년 하반기에 들어서 영화계에 나타난 특징은 ‘음악 영화’의 연속적인 등장이다. 그 중 대표적인 영화가 <원스>, <어거스트 러쉬> 그리고 <라비 앙 로즈>이다. 재미있게도 세 편의 영화 모두 만들어진 국가가 다르다. <원스>는 아일랜드, <어거스트 러쉬>는 미국, <라비 앙 로즈>는 프랑스이다. 그런 만큼 각 영화의 매력도 차이를 지닌다.
■ 주인공들의 음악적 동기
<원스>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남자’와, 그 노래를 듣고 남자의 마음에 끌린 ‘여자’의 이야기이다. 옛사랑에게 상처가 깊은 남자의 구구절절한 노래는 여자의 피아노 선율과 함께 어우러지며 더욱 빛을 발한다. 여자에게도 사랑에 대한 상처로 인한 음악적 감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음악으로 강한 연대감을 느끼고 소통하게 된다.
남자는 옛사랑을 찾기 위해서 런던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데 그 전에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고자 한다. 여자는 남자의 녹음작업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함께 런던에 가자는 약속을 하게 되지만 결국 여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거리의 음악가와 가난한 여자에게 유일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영화는 그들이 사회 속에서 지니는 근원적인 익명성을 강조한다. 또한 이름이 없는 그들은 도처에 존재하는 민중들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어거스트 러쉬>는 주인공의 이름 자체를 제목으로 하여 주인공인 소년 ‘어거스트 러쉬’를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소년이 ‘어거스트 러쉬’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까지는 꽤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소년은 록 밴드 보컬인 ‘루이스’와 클래식 첼리스트 ‘라일라’의 하룻밤의 사랑 속에 태어난 아들이다. 라일라의 아버지는 라일라에겐 태어난 아들이 죽었다고 말하고 바로 고아원으로 보내버린다. 그 곳에서 소년은 ‘에반 테일러’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데 고아원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보다 ‘괴짜’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에반은 들리는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받아들이고 부모님의 음악소리가 자신에게 들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에반이 부모님을 찾기 위해 음악소리를 따라간 곳은 뉴욕. 그 곳에서 악기 연주나 노래 따위로 돈을 버는 거지소굴에 들어가게 된다. 소굴을 지휘하는 대장 ‘위저드’는 에반의 천재성을 한 눈에 알아버린다. 그리고 그에게 예명을 지어주는데 그것이 바로 ‘어거스트 러쉬’이다.
어거스트는 우연히 어느 교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고, 그 곳 소녀에게서 악보를 배운다. 어거스트는 그날 바로 작곡을 시작하고 오르간을 마스터하는 등 엄청난 능력을 선보인다. 목사의 추천으로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한 어거스트는 교향곡을 작곡하고, 그 교향곡이 뉴욕의 큰 무대에 올라 연주된다.
<라비 앙 로즈>는 프랑스의 유명 여가수 ‘에디트 삐아프’의 자전적 영화로, 그녀의 대표적인 명곡 ‘라비 앙 로즈’를 제목에 내세운다. <원스>의 주인공들이 사랑에 대한 상처를 위해 노래하고, <어거스트 러쉬>의 어거스트는 부모님을 찾기 위해 음악을 했다면, <라비 앙 로즈>의 에디트는 처음엔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후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노래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명 가수인 어머니와 서커스단에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에디트는 친구와 함께 거리에서 노래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그러던 중 극장 주인에게 발탁이 되어 에디트 삐아프, 즉 ‘작은 참새’라는 예명을 얻고 노래로 큰 인기를 얻는다.
에디트는 노래를 통해 얻는 유명세와 찬사를 좋아하면서도 화려한 인기 뒤에 존재하는 고독과 외로움을 사랑으로 달래려 했다. 그러나 사랑에 번번이 실패하고, 간신히 만난 사랑이자 복서인 ‘막셀’까지 비행기 사고로 죽자 에디트는 극도로 외로움을 느끼며 건강 상태까지 악화된다.
에디트는 노래를 할 때만 버틸 수 있었고, 건강 때문에 무대에서 쓰러져도 마약류의 약을 써서라도 노래를 하려고 하여 건강을 더 망가뜨리게 된다. 에디트는 노래를 할 때에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에 집착했다.
■ 음악과 음악의 소통
음악영화이기 때문에 그런지 세 영화 모두 음악과 음악이 소통하는 장면이 명장면이다. <원스>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피아노를 연습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해준다며 악기 판매점으로 데려간다. 착한 주인 덕에 여자가 이따금씩 손님이 없는 틈에 피아노 연습을 해온 곳이다. 그곳에서 남자는 자신이 작곡한 악보를 여자에게 보여주고 합주를 제안한다. 남자는 기타로 멜로디를 알려주고 여자는 피아노로 멜로디를 따라 치며 노래를 배우는 것이다. 사전 연습이 끝나고 즉흥적으로 시작되는 피아노와 기타 합주는 상당히 감동적이다. 남자의 노래 위에 여자가 화음을 만들어 붙이면서 그 감동은 더욱 극대화된다.
또 남자가 ‘나에겐 너무 로맨틱해서 힘들다’는 이유로 가사를 입히지 못하고 있는 반주곡에 여자가 가사를 입혀 곡을 완성하는 장면도 명장면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If you want me’라는 곡은 원스 OST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이다.
<어거스트 러쉬>에서는 일단 초반에 루이스와 라일라가 만나기도 전, 루이스의 록 연주와 라일라의 첼로 연주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마치 하나의 곡처럼 어우러지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루이스와 라일라 둘 다 음악을 그만 두었다가 다시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예전과 똑같이 다른 장소에서 연주를 동시적으로 시작하며 서로를 느끼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명장면은 어거스트가 자신이 작곡한 곡을 지휘하다가 객석에 자신의 부모님이 왔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챈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아들의 곡임을 단번에 알아듣고 곡 자체를 온 몸으로 빨아들이는 라일라와, 라일라의 존재를 느끼고 무작정 달려온 루이스의 극적인 만남의 감정이 어거스트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다.
<라비 앙 로즈>는 에디트의 음악과 에디트를 위한 작곡가들의 음악과의 소통에 관심을 갖는다. 에디트는 노래만 부르는 가수였기 때문에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에 비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작곡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에디트 개인의 삶과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약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작곡가들이 에디트에게 곡을 선사하는 장면에서 에디트가 자신의 삶을 잘 표현했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정서에 와 닿는다고 느끼는 곡을 선택하는 모습으로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에디트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어서 노래하지 않겠다고 결심해놓고 어느 작곡가의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를 듣고는 딱 자신의 이야기라며 마지막 콘서트를 열게 되는 것은 에디트가 자신이 부를 노래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실화? 픽션?
이 세 영화는 ‘실화’인가 ‘픽션’인가로 나눌 수 있다. 일단, 에디트 삐아프의 생애를 영화화한 <라비 앙 로즈>는 당연히 실화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픽션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 영화적으로 높이 평가될 만하다. 예를 들어 어린 에디트가 서커스 단원이 불쇼를 연습하고 있는 것을 구경하다가 뿜어져 나오는 불 속에서 천사를 발견하는 것은 증명할 수 없는 상상일 뿐이지만, 그 이후로 에디트가 자신의 외로움을 기도로 달래며 의지하게 되는 모습을 무리 없이 설명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거리의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원스>는 픽션이기는 하지만, 실화적인 측면이 있다. 거리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대부분 상처가 존재할 것이라는 토대 위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는 줄거리 역시 개연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고가의 녹음실을 절반 가격으로 흥정하는 모습이나,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는 장면은 영화가 관객들에게 주인공들의 현실적인 처지를 설득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거스트 러쉬>는 오로지 픽션의 상상력으로만 구성한 측면이 강하다. 영화 속 사건들이 거의 대부분 우연에 의존한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록 밴드의 보컬과 클래식 첼리스트의 만남은 첼리스트가 공연 뒤풀이로 가게 된 클럽의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으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어거스트가 교회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줄리어드 음대에 갈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어거스트와 루이스, 라일라 이 세 명이 만나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우연에 의존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분명히 그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명장면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장면이다. 그동안 주인공들의 심리적 고통을 영화가 잘 설명해주었기 때문에 그토록 원했던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영화를 사랑과 우연의 절묘한 조화를 예찬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연의 연속으로 사건들이 해결되어가는 과정은 관객의 입장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지금까지 2007년 하반기에 개봉된 음악 영화 세 편 <원스>, <어거스트 러쉬>, <라비 앙 로즈>를 비교해보았다.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이 영화들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음악의 힘을 강하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상처를 치유 받고 사랑을 되찾게 해 주리라는 두 남녀의 믿음, 나의 음악이 그리운 존재를 만나게 해주리라는 어거스트의 믿음, 음악으로 외로움을 극복하여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는 에디트의 믿음은 영화에 잘 녹아들었다. 음악에 대한 강한 믿음이 음악 속에 담기니 호소력이 더 강해졌다. 때문에 관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특히 독립영화인 <원스>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음악 영화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남자 그 여자 작사 작곡>, <딕시칙스>, <포미니츠>, <페이지터너>, <카핑 베토벤> 등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들 때문에 2007년은 심심하지 않았다. 2008년에는 어떤 음악 영화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까 궁금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자가 남자의 노래를 듣고 말을 건네며 둘의 첫만남이 이루어진다.
남자는 옛사랑을 찾기 위해서 런던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데 그 전에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고자 한다. 여자는 남자의 녹음작업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함께 런던에 가자는 약속을 하게 되지만 결국 여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거리의 음악가와 가난한 여자에게 유일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영화는 그들이 사회 속에서 지니는 근원적인 익명성을 강조한다. 또한 이름이 없는 그들은 도처에 존재하는 민중들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타를 처음 쳐보는 어거스트는 기타 줄을 때리며 연주하는데도 훌륭한 곡을 선보인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래를 불러야 했던 에디트



어거스트가 지휘하는 무대에서 극적으로 만나는 세 사람.

어거스트가 지휘하는 무대에서 극적으로 만나는 세 사람.
지금까지 2007년 하반기에 개봉된 음악 영화 세 편 <원스>, <어거스트 러쉬>, <라비 앙 로즈>를 비교해보았다.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이 영화들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음악의 힘을 강하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상처를 치유 받고 사랑을 되찾게 해 주리라는 두 남녀의 믿음, 나의 음악이 그리운 존재를 만나게 해주리라는 어거스트의 믿음, 음악으로 외로움을 극복하여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는 에디트의 믿음은 영화에 잘 녹아들었다. 음악에 대한 강한 믿음이 음악 속에 담기니 호소력이 더 강해졌다. 때문에 관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특히 독립영화인 <원스>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음악 영화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남자 그 여자 작사 작곡>, <딕시칙스>, <포미니츠>, <페이지터너>, <카핑 베토벤> 등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들 때문에 2007년은 심심하지 않았다. 2008년에는 어떤 음악 영화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까 궁금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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