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블루스’ 최하동하 감독
‘택시블루스’ 최하동하 감독
“나는 하루 12시간 250㎞를 운행하며 25개 팀을 손님으로 태우는 택시기사다.”
21일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한 영화 <택시 블루스>는 최하동하 감독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민들레> 등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그는 1년 동안 택시를 운전했고, 진짜 손님들을 찍었다. 그러나 <택시 블루스>는 완벽한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실제 화면과 실제를 재현한 화면이 경계 없이 섞여있다. 극영화라기엔 작위적인 줄거리가 없고, 다큐멘터리라기엔 배우의 연기가 섞여 있다. 실제 상황을 담았으니 허구의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는 ‘모큐멘터리’에도 안 맞는다. 서울의 슬픔을 찍은 이 영화는 형식부터 모호하고 독특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실제 택시 운전하면서 손님들 동의 얻어 필름에 담아
극영화·다큐 경계 없이 실제와 배우연기 버무린 실험
어떻게 승객들은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는 데 동의했을까? 최하동하 감독은 먹고살려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택시에서 만난 군상들 모습을 놓치기 아까워 영화를 찍게 됐다. “모든 승객이 서울의 작은 편린을 담고 있어요.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술 취해 사창가로 가고,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뒷좌석에서 우는지 아시나요? 서울의 큰 윤곽을 그릴 수 있을 듯했죠.”
그는 택시에 카메라 5대를 달았다. 손님들은 세 명 중 한 명꼴로 촬영에 동의했다. “누구나 외롭지 않으려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거든요. 제가 들어줄 자세가 돼 있다는 걸 보여주면 동의해요. 아무도 자기 존재에 신경 안 쓸 때 사람들은 자살하고 싶어 하죠.” 영화 속 한강 다리에 적혀있는 낙서는 이렇다. “4000만 국민 중에 나 하나 죽는다고 변하는 게 무엇이 있겠나.”
왜 실제와 재현을 섞어야 했을까? 스크린에 등장하는 세 명 중 두 명은 스태프나 연기자다. 실제 찍은 화면을 연기자들에게 보여주거나 설명해주고 다시 찍었다. 하지만 누가 가짜인지 집어내기는 불가능하다. “생생하게 말하던 승객도 찍기 시작하면 갑자기 점잖아져요. 실제와는 다른 거죠. 장르를 구분해야 관객들이 편안해하는 관습도 깨보고 싶었어요.”
이 상황이 실제라고 믿고 보는 관객은 속는 것 아닌가? “어느 게 실제인지 저도 헷갈려요. 그리고 상관없어요.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는 현실적 방법을 택할 뿐이에요.” 관객들은 타인의 일상을 훔쳐보는 자극을 느끼게 된다. “<인간극장> 같은 휴먼다큐멘터리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리얼리티쇼건, 휴먼다큐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피사체와 일종의 거래를 하는 거죠.” 영화 속 사람들은 왜 거의 모두 슬픈가? 최하동하 감독은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술 취해 사는 동네를 말하지 못하는 남자, 성형 수술 효과를 떠드는 여자…. 카메라는 지친 서민들을 스케치하듯 그려가다 어떤 인물들에게는 좀 더 깊이 다가간다. 차비가 없는 가난한 화가는 택시기사 감독을 단칸방으로 데려가 그림을 준다. 텅 빈 도화지에 가냘픈 사람이 위태로운 쪽배를 홀로 젓는 그림이다. 실제 승객인 이 화가는 술과 그림에 의지해 하루를 버틴다. 택시 기사인 감독도 영화 속 주인공이다. 손님 많은 곳을 찾는 법 등을 들려주며 빠듯한 삶을 읊조린다. “하루 목표치 달성에 울고 웃는 비루함을 느낄 때 힘들죠. 사납금을 채우려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손짓, 눈짓, 행동을 관찰해야 해요.” 그가 그린 서울은 “눈물밖에 안 남은 슬픔의 도시”다. 왜 절망을 보여주려 하나? “절망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긴 힘들다고 생각해요. 방송은 없는 희망을 만들어 전파하죠. 시각의 균형을 잡을 필요도 있잖아요.”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최하동하 감독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영화 사진 인디스토리 제공
극영화·다큐 경계 없이 실제와 배우연기 버무린 실험
‘택시블루스’
이 상황이 실제라고 믿고 보는 관객은 속는 것 아닌가? “어느 게 실제인지 저도 헷갈려요. 그리고 상관없어요.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는 현실적 방법을 택할 뿐이에요.” 관객들은 타인의 일상을 훔쳐보는 자극을 느끼게 된다. “<인간극장> 같은 휴먼다큐멘터리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리얼리티쇼건, 휴먼다큐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피사체와 일종의 거래를 하는 거죠.” 영화 속 사람들은 왜 거의 모두 슬픈가? 최하동하 감독은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술 취해 사는 동네를 말하지 못하는 남자, 성형 수술 효과를 떠드는 여자…. 카메라는 지친 서민들을 스케치하듯 그려가다 어떤 인물들에게는 좀 더 깊이 다가간다. 차비가 없는 가난한 화가는 택시기사 감독을 단칸방으로 데려가 그림을 준다. 텅 빈 도화지에 가냘픈 사람이 위태로운 쪽배를 홀로 젓는 그림이다. 실제 승객인 이 화가는 술과 그림에 의지해 하루를 버틴다. 택시 기사인 감독도 영화 속 주인공이다. 손님 많은 곳을 찾는 법 등을 들려주며 빠듯한 삶을 읊조린다. “하루 목표치 달성에 울고 웃는 비루함을 느낄 때 힘들죠. 사납금을 채우려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손짓, 눈짓, 행동을 관찰해야 해요.” 그가 그린 서울은 “눈물밖에 안 남은 슬픔의 도시”다. 왜 절망을 보여주려 하나? “절망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긴 힘들다고 생각해요. 방송은 없는 희망을 만들어 전파하죠. 시각의 균형을 잡을 필요도 있잖아요.”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최하동하 감독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영화 사진 인디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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