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전쟁이 남긴 상처 ‘집단 성폭행’ 고발

등록 2008-01-01 21:32수정 2008-01-02 12:49

‘그르바비차’
‘그르바비차’
1991~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민병대와 군인들은 보스니아 여성 2만여명을 ‘인종 청소’ 명목으로 성폭행했다. 그 결과로 잉태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이야기, <그르바비차>(3일 개봉)는 행동하게 하는 영화다.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사회적 의제로 올렸듯이 32살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이 데뷔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전쟁 피해 여성을 향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베를린영화제는 사뭇 투박해 보이는 이 영화에게 최우수작품상인 황금곰상을 안겨 사회적 파장에 불을 지폈다.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그르바비차’ 3일 개봉
보스니아 내전 피해여성과 딸 통해 인권유린 이슈화

12살 딸 사라와 함께 사는 에스마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며 딸의 수학여행비 마련에 애쓰는 보통 엄마다. 하지만 그의 등엔 깊게 팬 흉터 자국이 있다. 나이트클럽에서 군복 입은 남자가 여성과 춤추는 것만 봐도 눈물이 쏟아진다. 심리치료 상담사가 “말하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는다”고 설득해도 에스마는 입을 열지 않는다.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마을 그르바비차, 겉은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람들은 전쟁이 남긴 기억에 여전히 지배받고 있다.

딸 사라는 아버지가 세르비아군과 싸우다 전사한 영웅인 줄로만 안다. 전사자 증명을 받아오면 수학여행비가 공짜인데 엄마는 명단 이야기만 나오면 딴청을 피운다. 끝까지 닦달하자 어머니는 딸의 뺨을 사정없이 치고 폭발한다. “진실이 알고 싶어? 나는 강간당했고 네가 그 결과물이야.” 에스마는 실성한 듯이 사라를 때린다.

<그르바비차>는 모성이 모든 걸 치유할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고통의 결정체이자 삶을 지탱해주는 고갱이가 돼 버린 딸을 두고 에스마 내면의 갈등은 복잡하고 격렬하다. “너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버리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지만, 에스마의 눈엔 간간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스친다.

진실을 알게 된 사라는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에스마는 사라와 끝까지 함께 갈 수 있을까? 사라는 자신을 슬프게 바라보다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다. 에스마는 길게 흐느끼며 비로소 상담사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버스 안, 사라는 멈칫거리며 에스마에게 손을 흔들고 에스마는 이에 답한다. <그르바비차>는 그 정도의 낙관에서 멈춘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 보스니아 상황을 참고하면 즈바니치 감독이 보여준 결말이 되레 너무 희망차 보인다. ‘악마의 씨앗’인 아이들은 버려져 고아로 떠돌고 여성들은 편견과 낙인이 두려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보스니아 정부는 2005년 말까지도 이 여성들을 전쟁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르바비차>는 목적이 분명한 영화다. 즈바니치 감독은 수상식에서 “보스니아 내전 당시 온갖 인권 유린을 벌인 세르비아의 라트코 믈라디치와 라도반 카라지치가 잡히지 않았고 이건 누구도 그들을 잡는 데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 작은 영화를 보고 보스니아에 대한 당신들의 생각을 바꿨으면 한다”고 말했다.

즈바니치 감독의 꿈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이 영화가 황금곰상을 받자 보스니아 언론들도 집단 성폭행을 다시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는 보스니아는 물론 개봉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세르비아에서도 상영됐다. 3일 개봉.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위드시네마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