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보라, 이 세상 최고의 ‘눈물 투혼’

등록 2008-01-06 20:13수정 2008-01-07 00:38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새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1. 영화보다 영화 같은 제작과정

2004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이 감동적이란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막상 심재명 엠케이픽처스 대표가 제작을 결정하자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에 30대 여성들이 주인공이란 점이 우려로 떠올랐다. 제작진은 실화의 감동을 믿고 추진하기로 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문제는 돈이었다. 제작 기간이 3년으로 길어지면서 영화시장 침체기와 맞물려 돈 줄이 끊겼다. 40억원 이상으로 예상한 순제작비를 36억원으로 줄어야 했다. 한국 단역보다 10배 비싼 외국인 단역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선수들이 뛰는 장면에서 객석이 카메라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경기장 객석을 높이는 아이디어까지 짜냈다. 그리스 현지 촬영은 배우 문소리와 감독 등 최소한 인원만 날아가 찍었다. 그리스 헬레니코 경기장도 인천 삼산체육관으로 대체했고, 전기료 탓에 에어콘도 못틀고 찍었다.

핸드볼 영화가 세계적으로 만들어진 적이 없어 참고 자료도 없었다. 주로 농구 영화를 훑어 분석하면서 당시 핸드볼팀 선수들을 인터뷰했다. 주요 인물의 개인적 이야기는 허구지만 사실감을 살려야 했다. 당시 선수들은 다른 종목은 유니폼이 여러 벌인데 핸드볼 팀만 단벌이어서 매일 빨아 입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울었다.

여배우들이 핸드볼 경기의 실감을 살리는 것도 걱정거리였다. 배우들은 석 달 동안 핸드볼 훈련을 받았는데, 연습 촬영분을 본 배우들은 자발적으로 합숙을 결정했다. 10일 동안 오전에 훈련하고 오후 촬영하고 밤에 분석을 강행했다. 근육통을 진통제와 파스로 잠재우는 그 사이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 조은지 등의 호흡은 절로 맞춰졌다.

#2. 사실보다 사실적인 영화

2004년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
아줌마 선수들 감동적인 명승부
임순례 감독표 절제된 눈물·웃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결과는 이미 알려졌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 한국 대 덴마크. 19차례 동점, 연장전, 재연장전, 마침내 승부던지기. 한국 팀은 졌지만 경기는 명승부로 남았다. 올림픽 때만 반짝 관심을 받는 데 이력이 난 노장 핸드볼 선수들은 경기 128분을 옹골차게 거머쥐었다.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상상력을 동원해 아줌마 핸드볼 선수들의 질박한 삶을 올려 세웠다. 빚에 짓눌리고 맞선보다 퇴짜 맞기 일쑤인 변두리 인물들은 임감독의 전작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고단한 주인공들과 닮아 보인다.

임감독만 비주류를 주인공 삼는 것이 아니지만 그가 돋보이는 것은 주변부 인생을 슬픔으로 몰아넣어 눈물을 뽑거나 섣부른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세 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그는 완고하게 감정 과잉을 견제했다.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세 청춘(<세 친구>)이나 평생 음악을 좇았건만 나이트 클럽 밴드 생활도 이어가기도 힘든 중년(<와이키키브라더스>)을 관객 앞에 던져 놓는 데 그쳤다. 이에 견줘 <우리 생애…>는 비주류를 향한 시선의 온기와 눈높이는 유지하되 전작들보다는 감정 절제의 끈을 좀 헐겁게 풀고 대중적 어법으로 다가간다.

임 감독의 주인공들은 상처 받아도 떠벌릴 줄 모른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주인공은 술 취한 손님의 장단에 홀랑 옷벗고 연주해야 할 때도 눈물이 그렁그렁하고는 그만이다. <세 친구>의 주인공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도 입고 있던 점퍼를 집어 던지고는 그만이다. 그들은 말수가 적지만 그들이 짊어진 무게는 전해진다.

<우리 생애…>는 더 직설적으로 감정과 입장을 드러내기도 한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두 번 땄고 12년간 최고 선수였던 미숙(문소리)은 남편의 빚을 갚느라 허리가 휜다. 팀도 해체돼 대형 마트에서 “양파가 900원”을 외쳐야 한다. 설렁탕 집에서 일하는 정란(김지영)은 불임 탓에 속이 탄다. 그래도 둘은 울며 고통을 토로하지 않는다. 반면 대표팀 감독 대행으로 온 혜경(김정은)은 협회에서 이혼 경력을 들먹이며 경질하려 하자 “남자(감독)라도 이럴 거냐”며 대꾸하고 맞선다.

임 감독의 영화는 슬플 때 웃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친구에게 여자를 뺏기고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드럼 주자는 그 친구가 크게 다쳤다는 말에 운전하며 울기 시작한다. 그러자 버스에 탄 아기도 따라 우는데 그 모습이 피식 웃기다. <우리 생애…>에서는 웃음의 강도가 훨씬 세졌다. 팀이 해체돼 마트 점원으로 발령난다는 이야기에 모두 침통한데 미숙은 뭐가 대수냐는 투로 말한다. “그거 정규직이지?” 푼수 수희(조은지)와 걸걸한 정란은 캐릭터 자체가 웃음을 몰고 다닌다.

임 감독의 전작들에는 배경 음악이 거의 없었다. 카메라도 좀처럼 인물에 다가가지 않고 그냥 바라봤다. <우리 생애…>는 일단 큰 드라마가 있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코치(엄태웅)와 노장 사이의 불화 등을 뚫고 이야기는 감동적인 마지막 경기를 향해 달려간다. 긴장 고조에 맞춰 음악도 감정을 몰아가고, 카메라는 인물들에 바짝 다가간다. 전작들을 관객이 알아서 느끼라는 식이었다면 <우리 생애…>는 감정이 흐를 골을 파두고 따라가게 한다. 물론 감정을 쥐어짜는 과잉은 피했다.

<우리 생애…>에서 비로소 임 감독의 주인공들은 웃기 시작했다. 고단한 이들은 이 영화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어깨를 걸고 인생 최고의 순간을 음미한다. 10일 개봉.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엠케이픽처스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