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로메로 1978년작 의 한 장면 ⓒ 의 한 장면
어둠(Night)
보이지 않기에 무서울 수 밖에 없다. 예측할 수 없기에 무서울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을 불태우고 환하게 비추는 태양이 없기에 무서울 수 밖에 없다. 달은 어차피 태양의 빛을 받아 우리에게 보여지는 제한적인 공간. 그속에서 우리의 공포는 싹튼다. 저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두 발로 걷고 말을 하며 생각을 할 수 있을 뿐, 인간은 미약한 동물이 아니던가. 그렇듯, 인간의 미약함이 그대로 노출되는 공간이 바로 어둠이다.
눈, 그리고 추위(Snow & coldness)
하늘에서 눈이 내리면 무슨 생각이 드나? 예쁘던가? 아름답던가? 그래서 숱한 멜로영화에서는 눈이 내린다. 아무 소리 없이 꽃송이같은 눈이 조용히 내려앉으면 우리는 환호한다. 마음 속 한구석에서 갈망하던 낭만이 춤을 춘다. 하지만, 어떤 사물과 현상이든 그 뒤에는 양면성이 있다. 우리의 삶에 빠질 수 없는 불과 물이 때때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눈도 마찬가지다. 눈이 오면 춥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있어 추위는 어둠 못지 않은 무서움을 유발한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언제 그칠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을 보고 느낀 적이 있는가? 눈과 추위가 어우러진 그 앙상블에서 우리는 때때로 소통의 도구가 절단되는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소통이 절단되는 것을 '고립'이라고 한다.
고립(Isolation)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 말하고 교류해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대화의 부재 속에서 우리는 그렇듯 타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외로움은 만병의 근원, 공포의 근원이 되곤 한다. 무엇이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환경에서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 '공포' 밖에 없다. 인간의 삶은 예측불가능 투성이라지만, 고립 속에서 일어나는 예측불가능은 때때로 인간의 모든 것을 위협하기도 한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으며, 그 눈으로 인해 모든 것이 끊어졌다. 대화를 나누고 교류할 수 있는 인간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다. 공포의 조건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렇듯 공포가 판치는 무대 '배로우(BARROW)'는 이런 곳이다. "북위 71도 23분. 북극권으로 깊게 들어간 북아메리카 최북단에 있는 봉우리 포인트로 알래스카 주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 지역이다. 봄에는 3개월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이, 겨울에는 30일 동안 해가 뜨지 않는 극야 현상이 일어나는 기이한 도시." 좀비(Zombie)
30일동안 해가 뜨지 않는 '극야 현상' 속에서 좀비는 그렇게 나타난다. 해가 뜨지 않는 마당에 폭설이 퍼붓고 있으니 인간의 피와 냄새에 굶주린 그네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낙원이었을 것이다. 조지 로메로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시리즈에서 그렸던 '좀비'는 형체가 단순하다. 인간의 냄새를 맡으면 놀라울 정도의 괴력과 집념을 보여주지만, 죽은 자와 같다. '좀비'의 정체 자체도 뇌(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채 의식없이 방황하는 괴물들을 말한다. 그러나, 21세기의 좀비들은 다소 다르다. 30일 간의 '극야 현상'이 자리잡는 배로우 마을을 천국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조지 로메로가 좀비들을 묘사하던 30여 년 전과는 달리 이런 이야기도 한다. "우리가 악몽에나 나오는 존재라는 것을 인간이 믿게 하는데에 수백년이 걸렸다." 그래서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배로우 마을에서 저항하는 인간들을 모두 없앨 궁리를 한다. 완벽한 업그레이드다. 뚜렷한 목적과 함께 존재의 방식에 대한 정의까지 모두 정리한 것이다. 좀비는 그렇게 공포의 공간 속에서 인간을 위협한다.
사투(Death Struggle)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싸움이다.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싸워야 하며, 불가능이라 생각되는 그 모든 것과 싸워 이겨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역사였다. 물론, 때때로 갈등 때문에 싸우며, 탐욕 때문에도 싸운다.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인간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싸워나갈 것이다.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는 배로우 마을에서의 좀비와의 사투를 그린다. 공포의 조건들을 적절하게 구성해 '생각하는 좀비'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에 대항하는 인간을 조명한다. 그속에는 단순한 공포물의 범위를 벗어난 역사가 숨어있다. 인간을 괴롭히고 위협하는 모든 요소들이 그 공포와 좀비들의 침투 속에 스며들어 있다. 인간의 끈질긴 생명에 대한 본능과 애착, 불가능을 극복하기 위해 때때로 실행해야 하는 희생과 살신성인은 그속에서 그려진다. 때로는 의지를 불태우다가도 자포자기하는 인간의 나약함도 드러나 있다. 때로는 죽는 것이 나을 때도 있는 극단적인 발상이 어떤 환경에서 나타나는지도 그려나간다. 그리고 좀비가 돼 인간의 정체성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지막 자존심이 어떤 것인지도 보여준다. 사투를 벌일 수 있는 용기와 의지는 이렇듯 다양한 동기에 의해 태어난다. 제목 그대로, 배로우 마을에 남은 이들은 30일 밤동안 그렇게 사투를 벌인다.
공포의 총합(The Sum Of All Fears)
비슷한 설정으로 제작된, 스웨덴 최초의 뱀파이어 영화로 기록된 <프로스트바이텐>(2005)은 은근한 코믹으로써, '공포'라는 조건에 있어서는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는 나름대로 치밀한 구성 속에서 '공포의 총합'과 인간의 비극을 그려나간다. 의지와 대결, 희생 그 모든 가치는 절제된 침묵과 어둠 속에서 불꽃을 튀긴다. 하지만 그 불꽃의 존재는 잠시 뿐, 떠오르는 햇빛과 함께 사라져간 것이야말로 인간의 역사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라짐은 자연시되며 아무런 기쁨과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역사는 그렇듯,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희생을 먹고 발전하는 것 같다. 소설가 톰 클랜시가 말하는 <공포의 총합(The Sum Of All Fears)>은, 테러와 핵폭발, 그리고 그속에서 감지되는 제3차 세계대전의 위협을 말한다. '전쟁'이야말로 '공포의 총합'이란 뜻이다.
하지만, 전쟁은 눈 속에서 소리소문없이 묻혀지는 공간에서도 일어난다.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공포든, 제한적인 공간에서 소리소문없이 포위돼 꼼짝없이 당해야만 하는 공포든, 공포의 깊이와 간절함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가 그려내는 치밀한 공포도 나름대로는 '공포의 총합'이라 할만 하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까.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제목이다. 앞서 언급한 <공포의 총합>도 영화 제작 후 한국 수입 과정에서 <썸 오브 올 피얼스>라는 어색한 원어제목 그대로 수입됐던 적이 있다. 대니 보일의 좀비 영화 <28일 후>의 선례를 기억한다면, 굳이 입에 잘 붙지도 않는 원어제목을 그대로 활용해도 될까 싶은 생각도 든다. <30일 간의 어둠>과 같은 제목으로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일까. 괜찮은 영화가 별다른 개성도 없이 입에 착착 붙지도 않는 제목을 그대로 가진다는 것이 다소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고립(Isolation)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 말하고 교류해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대화의 부재 속에서 우리는 그렇듯 타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외로움은 만병의 근원, 공포의 근원이 되곤 한다. 무엇이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환경에서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 '공포' 밖에 없다. 인간의 삶은 예측불가능 투성이라지만, 고립 속에서 일어나는 예측불가능은 때때로 인간의 모든 것을 위협하기도 한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으며, 그 눈으로 인해 모든 것이 끊어졌다. 대화를 나누고 교류할 수 있는 인간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다. 공포의 조건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렇듯 공포가 판치는 무대 '배로우(BARROW)'는 이런 곳이다. "북위 71도 23분. 북극권으로 깊게 들어간 북아메리카 최북단에 있는 봉우리 포인트로 알래스카 주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 지역이다. 봄에는 3개월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이, 겨울에는 30일 동안 해가 뜨지 않는 극야 현상이 일어나는 기이한 도시." 좀비(Zombie)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좀비‘는 진화형이다 ⓒ 인터비스
진화된 좀비와의 ‘사투‘는 인간에게 다양한 희생과 의지를 요구한다 ⓒ 인터비
‘공포의 총합‘이 완벽하게 재현된 환경에서 ‘괴물‘이 나타난다면? ⓒ 인터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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