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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안갯속 괴물보다 공포스런 인간

등록 2008-01-10 20:55

SF공포물 ‘미스트’ 개봉
SF공포물 ‘미스트’ 개봉
SF공포물 ‘미스트’ 개봉
스티븐 킹 원작 대러본트가 영화화
마을 나타난 괴생명체와 맞서다
‘집단광기’ 드러내는 사람들 섬뜩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진짜 무서운 건 좀비, 흡혈귀, 악령 보다 사람이다. 이성의 헐거운 껍질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선 쉽사리 찢겨져버리고 그 밑으로 인간 본성의 시궁창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기 마련이다. 킹의 소설은 브라이언 드 팔마(<캐리>), 스탠리 큐브릭(<샤이닝>), 로브 라이너(<미저리>) 등 여러 감독들에게 영감을 줬고, 단편을 포함해 100여편이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로 나왔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각광받는 원작자 킹의 영상 단짝이 프랭크 대러본트 감독이다.

10일 개봉한 에스에프 공포물 <미스트>는 대러본트 감독이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에 이어 8년만에 만든 영화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 괴생물체의 공격 자체가 주는 공포에 점점 미쳐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를 섬뜩하게 버무렸다. 거대한 위험에 맞서 가족을 지키려고 사투를 벌이는 아버지 영웅 이야기의 관습을 깨버리고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SF공포물 ‘미스트’ 개봉
SF공포물 ‘미스트’ 개봉
스멀스멀 기어오는 안개는 고립감을 높이는 효과적인 장치다. 호수를 끼고 있는 한적한 마을에 폭풍우가 친 다음날, 데이빗은 먹거리 등을 사려고 아들과 함께 대형 마트에 간다. 마트는 북새통인데 어느 참에 안개가 마트 창문 바로 앞까지 가득 차 있다. 한 노인이 코피를 줄줄 흘리며 뛰어 들어와 소리친다. “안개 속에 뭔가가 있다. 절대 나가지 마라.”

대러본트 감독은 사람들의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대비한다. 극한 상황에서는 학력과 거주지 등의 미세한 차이마저 의심과 반목의 근거가 된다. 괴물의 촉수를 봤다는 데이빗의 증언을 합리주의자 변호사 노튼은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다. 노튼은 명백한 증거물을 보는 것마저 거부해버리고 마트를 떠난다. 노튼의 이성이 그의 미망이다. 이에 반해 카모디 부인은 자신이 신의 목소리를 전달한다면서 성경 구절을 들먹이고 종말론을 부르짖는다. 데이빗은 그 중간 지대에서 합리적인 판단력을 유지하려고 고심한다.

제작비 1700만달러를 들여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든 이 영화에서 안개는 괴물을 감추거나 드러내 공포를 극대화한다. 촉수 괴물은 전체 윤곽을 보여주지 않는다. 몸통은 안개 속에 묻어둔 채 단 한 개의 촉수로도 사람을 간단하게 부숴버려 거대한 전체를 상상하게 한다. 독거미들은 사람을 숙주 삼아 새끼를 치고 염산처럼 살을 파고드는 거미줄을 희뿌연 안개 속에 뿜어댄다.

괴물만큼 극악하게 주인공을 죄어오는 건 사람들의 집단 광기다. 괴물의 공격이 더해질수록 카모디 부인의 종말론은 힘을 얻는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카모디 부인을 “미친 여자”라고 무시했던 보통 사람들은 공포에 휩쓸려 광신도가 된다. 그들이 인간 제물을 원하니 카모디 부인과 갈등을 빚는 데이빗의 일행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든지 이웃에게 희생되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데이빗과 행동을 함께 하는 교사가 “사람들의 바탕은 착하다”며 마트에 남자고 말하자 다른 사람은 대답한다. “우리는 모두 한 꺼풀만 벗겨내면 미친 존재들이야.”


원작 소설에서 스티븐 킹은 결론을 맺지 않고 열어뒀다. 대러본트 감독이 새롭게 꾸민 결말은 예측할 수 없게 독창적이고 암울하다. 데이빗은 매순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만 그 결정이 올바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의지와 이성의 힘은 운명 앞에서 나약하기 짝이 없고 그 ‘어찌할 수 없음’이 공포를 더한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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