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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름다운 잔혹함-뮤지컬 영화 ‘스위니 토드’

등록 2008-01-13 21:14

뮤지컬 영화 ‘스위니 토드’
뮤지컬 영화 ‘스위니 토드’
동명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감독 특유 유머 버무려
‘끔찍한 장면-서정적인 음악’ 기괴한 하모니 걸작
1979년에 뮤지컬 <스위니 토드>가 초연된 뒤로 어디서 공연되든지 따라붙는 문구가 하나 있다.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잔혹한 뮤지컬’. 팀 버튼이 쓴 동화책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돌이켜 보면 그가 대학 시절에 이 작품에 매혹당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멜로디가 유려한 노래 ‘조안나’가 울려퍼지는 동안 주인공인 스위니 토드의 면도날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난도질을 당한다. 그렇게 박자 맞춰 희생자들이 죽어나가는 동안 면도날을 휘두르는 그의 얼굴은 딸인 조안나에 대한 그리움과 애수로 꿈이라도 꾸듯 부드럽다.

뮤지컬 영화 ‘스위니 토드’
뮤지컬 영화 ‘스위니 토드’
가장 끔찍한 장면에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를 짜넣은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유머감각은 그의 유려한 음악과 함께 이 뮤지컬 작품을 진정한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물론 이렇게 한 번 비틀어댄 유머감각이라면 팀 버튼 역시 지지 않지만 두 사람의 유머감각은 전혀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팀 버튼이 ‘유년’과 ‘동화’ 너머 잔혹함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스티븐 손드하임의 유머감각은 철저하도록 성인의 세계에 속해있다. 유년의 쓴맛에 집착해온 팀 버튼은 손드하임의 냉소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유머를 기반으로 한 어른들의 세계에 도전했고 자신의 관점으로 ‘스위니 토드’를 재구성하는 데는 성공했다.

팀 버튼 스스로는 뮤지컬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백조의 호수’ 게이 버전으로 유명한 안무가 매튜 본이 팀 버튼의 <가위손>을 발레로 만들기도 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뮤지컬과 춤의 좋은 소재가 되어왔다. 그가 대본을 쓰고 제작한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도 뮤지컬 영화다. 그의 영화들이 설혹 <슬리피 할로우>처럼 푸르스름하거나 툭하면 등장인물들의 목이 달아나고 괴물이나 악당이 등장한다 해도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그 꿈은 ‘악몽’에 가깝지만 깨고 보면 꽤 재밌고 귀엽기도 한 가벼운 악몽일 뿐이다.

팀 버튼은 조니 뎁이 연기한 스위니 토드라는 인물 그 자체에 집중했다. 무대 공연에서는 스위니보다는 그의 동업자인 러벳부인이 더 조명을 받는데 그의 영화 속에서는 스위니 외의 인물들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간단하게 넘어간다. ‘스위니 토드의 발라드’와 ‘오-아가씨’, ‘상점의 노래’ 등이 통째로 삭제되거나 멜로디만 차용됐지만 단지 러닝타임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그의 장기가 가장 그답게 발휘된 곳은 화면에 피가 철철 흐를 때가 아니라 러벳 부인이 스위니와의 행복한 생활을 꿈꾸며 부르는 ‘바닷가에서’를 부르는 장면이다. 영화적 특성을 십분 살려서 러벳 부인이 부르는 우스꽝스러운 가사의 상황을 알뜰하게 화면에 나열해 코믹함을 더했고 여기에 고아 소년 토비아스까지 얹어 흡사 몬스터 가족의 음울한 소풍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스위니 토드>가 브로드웨이에서는 가장 잔혹한 뮤지컬일지 몰라도 영화 쪽에서는 1989년에 이미 피터 잭슨 감독이 감독한 <피블스를 만나보아요>라는 제목의,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살육당하는 내용의 인형극 뮤지컬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는 피터 잭슨이 유명감독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뮤지컬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말도 안되는 모험이었기에 내용부터 엽기적인 이 저예산 뮤지컬 영화는 소리 소문 없이 묻혔다.

뮤지컬의 황금기였던 1940년대부터 1960년까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시간차 없이 스크린으로 옮겨지기도 했지만 그 뒤로 오랫동안 뮤지컬 영화는 스크린에서 모습을 감췄다. 현실과 동떨어진 촌스런 장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지컬로 전성기를 맛봤던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물론 특히 디즈니사는 뮤지컬 영화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했다. 디즈니가 뮤지컬 만화영화 <인어공주>로 큰 성공을 거두자 에이비시 텔레비전이 디즈니와 손잡고 격년 간격으로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빅터/빅토리아>(95), <신데렐라>(97), <애니>(99) 등이 티브이 영화로 제작됐다. 이 때 안무로 시작해 <애니>의 감독까지 맡았던 롭 마샬은 몇 해 뒤 영화 버전 <시카고>로 대박을 터뜨리며 뮤지컬 영화의 활로를 열었다. 21세기의 관객들은 멀쩡하게 말하다가 노래와 춤을 추는 이 ‘고전적’인 장르를 낯설고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팀 버튼도 <시카고>의 성공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 음울하면서도 웃긴 작품을 영화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스위니 토드>에선 비록 헬레나 본햄 카터의 빈약한 노래를 참아야 하지만 예상 외로 선전한 조니 뎁이 감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므로 가위손이 연인을 잃고 면도날을 휘둘렀다는 농담은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원작이 없었다면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팀 버튼에게서 바랄 수 있는 것은 모두 담겨있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무대 뮤지컬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스티븐 손드하임의 음악을 듣는 즐거움도 있으니 말이다.

이수진/공연칼럼니스트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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