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문소리는 여배우 기근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보물'임에 틀림없다. 문소리는 분명 전도연, 김혜수와는 다른 영역을 연기하는 배우다. 아니, 그녀의 연기를 지켜보면 문소리만이 연기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에서 문소리가 보여준 모습은 이것이 진정 문소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우습게도 우리나라 여배우들의 연기력을 측정하는 좋은 기준은 '예쁜 척'이다. 그리고 경지에 이른 여배우들은 '예뻐보이려 애쓰지 않으나 오히려 아름다워 보이는' 연기를 선보인다. 그 대표급에 바로 문소리가 존재한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명승부를 펼친 여자핸드볼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 엄태웅, 조은지 등의 실력파 배우들이 출연해 밀도 있는 연기를 펼친다.
영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비(非)인기종목이지만 메달권에 급접해있는 종목이 안고 있는 비애를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핸드볼은 비인기종목이다. 그럼에도 올림픽에 나가면 메달권에 가장 근접해있는 종목이다. 평소에 국민들은 핸드볼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리그가 있는지 없는지, 심지어는 룰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올림픽이 되면 목이 터져라 응원한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다. 누구도 그 선수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영화의 첫 장면처럼 미숙(문소리), 정란(김지영), 수희(조은지)는 핸드볼 대잔치에서 우승을 하고도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뛸 무대를 잃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실제 아테네 올림픽 결승이 끝난 후 임영철 감독는 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탄으로 말을 다 잇지 못한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최약체라는 오명을 들었던 그들, 아줌마 부대가 당시 최강 덴마크와의 결승에서 동점 19차례, 연장에 재연장,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김정은 역시 한 단계 더 성숙된 느낌이다. 그동안 드라마 <루루공주>, <연인>을 통해 단순히 예뻐 보이려는 연기자에 머물렀던 그가 감동을 연기하는 진정한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김지영과 조은지는 영화에서 감초 연기를 톡톡히 하며, 윤활유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태왕사신기>에서 배용준의 이모라고 불리며 수모를 겪었던 문소리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우생순>을 통해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색다른 소재와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가지고 찾아온 한국 영화가 박스 오피스를 탈환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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