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게임‘(감독 윤인호) 주연배우 신하균. 연합뉴스
영화 ‘더 게임’에서 청년의 탈 쓴 노인 역
배우 신하균의 얼굴은 언뜻 봐서는 조용하고 선해 보인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관객은 스크린 속에서 그의 얼굴에 서린 은근한 광기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장준환 감독의 2003년작 '지구를 지켜라'에서 내보인 광기 어린 병구의 모습은 관객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각인됐을 듯하다. 그는 이제 국내에서 선과 악의 이중적인 기운을 자연스레 내뿜는 국내에 몇 안 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31일 개봉하는 새 영화 '더 게임'(감독 윤인호)에서도 마찬가지. 겉은 순수한 청년이되 속은 헛된 야욕에 휩싸여 있는 노인이라는 간략한 배역 설명만 들어도 신하균은 적역이라는 느낌을 단번에 준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서는 '우리 형'에서의 속 깊은 형 성현의 분위기가 묻어났다. 그는 며칠 전 진행된 시사회에서 지켜본 스스로의 연기에 실제보다 훨씬 박한 평가를 내렸고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두 주인공 강노식과 민희도가 몸을 맞바꾸고 난 이후부터 관객이 영화를 잘 따라갈 수 있는지가 사실 관건입니다. 배우가 관객을 제대로 이끌지 못해서 기본 설정에 거부감이 생겨 버리면 영화가 통째로 재미 없어지게 되거든요. 그래서 부담이 됐어요. 시사회를 보니 제 연기에 아쉬움이 많이 들더라고요. 더 잘했어야 했는데…" 청년의 몸을 갖게 된 노인 역은 배우로서는 큰 도전이며 변신이다. 게다가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출발한 스릴러 장르의 영화라 사건 전개의 호흡도 빠르니 웬만한 연기 내공이 아니고서는 캐릭터를 새로 만들기는 커녕 쫓아가기도 버겁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캐릭터를 주도했다. "캐릭터에 배우의 상상력으로 채워야 할 부분이 많았어요. 저는 먼저 강노식과 민희도, 두 인물 사이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영화가 본질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에 접근해야 하는데, 그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이죠. 원초적인 욕심과 욕망에 눈이 먼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에서 캐릭터를 가장 만족스럽게 표현한 장면을 묻자 그는 "만족한 부분은 없어요, 다 아쉽죠"라며 손사래를 쳤다. 거듭 요청하고 나서야 "강노식이 회사 임원들 앞에서 점잖게 말을 시작했다가 결국 자기 분에 못 이겨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부분이 그래도 잘 표현된 것 같다"고 겸손하게 설명했다. 이번 작품에서의 연기를 자평할 때는 말을 아끼던 그는 배우 생활을 꾸리는 동안 쌓아온 전반적인 '연기론'에 대한 질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말문을 훤히 텄다. "너무 몰입하지 않으려고 해요. 좀 떨어져서 이성적으로, 계산적으로 작품 전체가 어떻게 그려질까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물론 촬영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몰입하게 되고 완전히 인물에 빠져들 때가 있어요. 연극할 때 선배들이 해준 값진 조언이 '배우 자신은 슬프고 고통스러워도 관객이 그걸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감정적인 몰입과 이성적인 계산 중 교차점이 무엇일까 늘 고민해요." 선과 악을 넘나드는 야누스적 연기에 대해서는 "어떤 쪽도 연기하기에 편하지는 않다"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한다. "캐릭터를 선악으로 나누면 재미가 없어요. 이번 인물도 단순히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기했고요. 앞으로도 관객에게 한쪽 면만 보여줄 생각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을 보여주고 싶어요." 1998년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했으니 그의 연기 경력도 어느덧 10년을 채웠다. 이미 연기파 배우로 자리를 잡은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일까. "관객에게 신하균이란 이름으로 남고 싶은 게 아닙니다. 작품 속 인물들로 저를 기억했으면 해요. 저는 연기란 삶의 경험이 녹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신뢰가 가고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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