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
최근 들어 본 영화들 중 <클로버필드>만큼 “이 영화는 가짜야!”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클로버필드>가 아이디어를 빌려온 <블레어 윗치>는 어땠냐고? 난 그 영화는 아주 진지하게 몰입하며 봤다. 진짜가 아닌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난 별다른 어려움 없이 <블레어 윗치>가 제공하는 가짜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클로버필드>를 보면서 같은 짓은 못하겠다. 정말로.
두 영화의 차이는 뭘까? 가장 큰 차이점은 스케일이다. <블레어 윗치>는 될 수 있는 한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사회를 살고 있다고 해도 우린 모두 어느 정도 미신적인 구석이 있어서, 그 정도 모호함 속에서는 충분히 현실감 넘치는 공포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클로버필드>가 보여주는 현실은 아무리 생생해도 가짜일 수밖에 없다. 마천루만한 크기의 괴물이 뉴욕을 습격해 쑥대밭으로 만든 적이 있었나? 내가 알기로는 없다. 그런 괴물이 뉴욕시를 침공할 수 있을까? 물리법칙이 갑자기 바뀌지 않는 한 어림없다.
그러나 진짜 차이점은 편집에 있다. <블레어 윗치>는 편집된 영화이다. 설정 자체에도 편집이 개입되었다. 숲에서 발견된 테이프와 필름을 두 감독들이 편집해서 장편 영화로 만들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클로버필드>의 설정에는 편집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클로버필드>는 센트럴파크의 폐허에서 발견된 비디오테이프이고 여기엔 어떤 인공적인 편집도 개입되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캠코더를 끄고 켜는 과정만이 개입되어 있을 뿐이다. 이건 굉장히 대단한 시도이고, 아마 만드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 <블레어 윗치>를 넘어서는 형식적인 리얼리티를 확보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에서는 각본의 인위성이 도입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파티에서 캠코더로 찍은 비디오테이프 한 권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캐릭터들과 그들의 상황을 설명하는 정보들이 몽땅 담겨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 답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설정을 통해 드라마를 만들려면 인위적으로 설정을 조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생생하기 그지없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인다. 그에 비하면 모큐멘터리 설정으로 사실성을 과장하지 않은 일반 극영화의 드라마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적어도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을 보면서 “이건 가짜야!”라는 생각이 계속 드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거다. 사실은 스필버그의 <이.티.>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모큐멘터리의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부를 수 있는 법칙이 적용되는 게 아닐까? 이 장르에서 지나치게 형식적인 사실성에 접근하면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 사실성을 놓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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