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한 장면. MK픽처스 제공
‘찬밥 인생’ 공감대
비주류 약자 연대와 희망…‘감동’ 입소문
비주류 약자 연대와 희망…‘감동’ 입소문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명승부를 보여줬던 여자 핸드볼 팀의 실화를 담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 이하 우생순)이 이례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예매율을 높여가며 장기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생순>은 <디워> 이후 32주 만에 3주 연속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올해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관객 200만명을 넘겼다.(제작진 추정 27일까지 250만명)
영화 예매 사이트인 맥스무비 자료를 보면 <우생순>의 예매율은 첫 주 30.65%에서 셋째 주엔 38.3%로 높아졌다. 맥스무비 쪽은 “보통 흥행작이라도 3주차가 되면 예매율이 10~20% 감소하기 마련”이라며 “2003년 이후 한국 영화 가운데 개봉 1주차보다 3주차에 더 높은 예매율을 보인 것은 <살인의 추억> <웰컴 투 동막골> <왕의 남자> <타짜>뿐”이라고 밝혔다. 특히 40대 이상의 예매율은 첫 주 12%에서 셋째 주 16%로 4%포인트 높아져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우생순>의 주인공들은 30대 주부로 스포츠 현장에선 찬밥 신세다. 이혼, 불임, 남편의 사업 실패로 짊어지게 된 빚 탓에 인생이 팍팍하다. 게다가 핸드볼은 경기장이 텅텅 비기 일쑤인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이들은 억척같이 훈련해 세계 최강 팀에 맞서 명승부를 펼친다. <우생순>은 ‘비주류’ 약자들의 연대와 희망을 감동적으로 보여줘 여러 연령대에서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성 대 남성의 예매율은 6 대 4 정도로 비교적 고르게 나타났다. 제작사인 엠케이픽쳐스의 심재명 대표는 “아줌마들의 투혼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팍팍한 현실을 사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이라고 밝힌 누리꾼은 홈페이지에 “힘들게 중소기업을 꾸리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우생순>에서 용기를 얻었다”고 썼다. 20대 군인이라는 누리꾼은 “최고의 1등이 아닌 최선의 2등이 더 아름답다는 걸 보여준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라고 썼다.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이 거의 없는 30대 주부들의 이야기여서 또래 여성들의 공감도 불러일으켰다. 주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줌마네’의 박은영(37)씨는 “주부들 사이에 이 영화가 재밌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아줌마들이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또 그들의 근성을 높이 사 감동했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씨네21> 기고에서 “<우생순>은 쾌감 가득한 스포츠 영화이면서 끈질기고 관계지향적이며 약자를 보듬는 ‘아줌마성’을 ‘긍정적 여성성’으로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챔피언> <역도산> 등 스포츠를 내세운 영화는 꽤 있었지만 주인공은 주로 남성 몫이었다. <우생순>은 영화에서 다뤄진 적 없는 핸드볼과 여성을 묶는 색다른 기획으로 새로운 영화에 목말라하는 관객들의 기대를 채웠다.
심재명 대표는 “<우생순>은 위험하지만 분명히 새로운 소재이자 장르”라며 “<식객> <세븐 데이즈> 등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를 보면 요즘 관객들은 새로운 점이 있어야 본다”고 말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는 “영화의 선택권을 주로 여성이 쥐고 있는데 스포츠영화는 남성 캐릭터 중심으로, 남성이 잘하는 종목 위주로 만들어져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것 같다”며 “<우생순>은 여성 관객을 끌어들여 남성 관객까지 흡수한 스포츠영화로 상업적 기획력을 높이 살 만하다”고 설명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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