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지난주 퇴근을 하고 기어이 서울까지 나와 [에반게리온-序]를 봤다. 주말까지 기다리면 될 터였지만,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는 마음도 한 몫했지만 그보다는 참을 수가 없었다. 보고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에반게리온-序]에 대한 각종 평이 분분한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에반게리온-序]를 극장에서 본다는 것은 이보다 잘 만들어진 최신 영화를 볼 때와는 차별되는 두가지 만족의 지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극장 안이 조용했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와 조조영화로 [클로버필드]를 보고 나왔는데, 통상 사람이 많은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이입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치뤄야 하는 반대급부가 만만치않다. 조용한 극장안에서 일행끼리 수근대는 소리에 기분을 확 상하기도 하고, 앞자리의 누군가가 극장에 와 자리에 앉으면서까지 끄지 못한 핸드폰으로 들어온 외부의 연락을 확인하느라 훤~하게 켜놓은 불빛을 목도해야 하며, 남들이 뿌시럭거리고 먹는 팝콘이며 후르륵하는 콜라 빠는 소리를 들으며 인내심 테스트를 하기 일쑤다. 그런데 한창 젊은 사람들이 관객석을 가득 매우는 평일 저녁시간에 [에반게리온-序]를 봤지만, 그런 반대급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매우 희귀한 경험이었는데 [천군]이란 영화를 속초 황금극장에서 나와 친구들만 앉아서 봤던 때 이후로 거의 없는 경험이었다. (더구나 이번엔 매진사례였다) 생각해보니 이유는 간단하다. [에반게리온-序]의 관객층의 대다수는 일본의 에반게리온 오타쿠들과 비교야 되겠는가만은, 나처럼 청소년기던 청년기던 맞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에반게리온을 보며 위안받고 함께 고민하고 그리고 영향받았던 이들일 터이니 말이다. 기술시사회나 영화제가 아닌데도 영화가 끝나고도 OST와 더불어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은 대부분의 관객들 속에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두번째로. 분분한 의견 중 TV판과 내용이나 화면이 바뀌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 의견과는 달리, 나는 사도와 에반게리온의 전투장면 외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거의 바뀌지 않았던 것이 새 옷을 전면적으로 입은 에반게리온을 만나는 것보다 기뻤다. 그래서 이것 역시 감독의 어떤 의지가 개입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관객에게 그것이 좋을 수야 없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만약에...그 시절 함께 공감하고 고민했던 신지가, 마음을 짠하게 만들던 레이의 푸른 머리가, 또 리츠코가 3D가 되서 더빙된 말과 입을 딱딱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보기야 훨씬 좋았겠지만, 어째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서운하고 낯선 일이 아닐까? 그래서 업그레이드된 전투장면에서는 보다 실감나는 즐거움이 있었고, 초당 프레임이 적어 움직임이 더딘 2D의 옛 인물들과의 조우에서는 에반게리온을 처음 만났던 시절에 대한 추억의 조우도 함께 할 수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웠는데, 그것은 아마 내가 그들을 이미 알고 있으며, 나이먹지 않은 그들을 만나는 동안 만큼은 나 역시 에반게리온을 처음 보았을 때의 시절과 상황 한복판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에반게리온을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12월이었다. 입사 후 1년 가까이 생산라인에서 현장실습이란 이름으로 근무했던 나와 내 동기들은 빅딜 데모가 터지자 데모를 하는 날 외에는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아졌다. 파업이 시작되고 신입사원인 우리들이 문선대를 하면서 인사팀에서 '신입사원들은 인사팀 소속이지 현장 소속이 아니니 연수원 강의실로 출근하라'는 지침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데모를 하지 않을 때는 나와 내 동기들 20명은 연수관 강의실에 모여있었다. 당최 앞이 보이지 않던 파업 속에서, 책상과 TV, 비디오플레이어가 전부였던 강의실에서 하루종일 수다를 떨고있자니 나를 제외하면 모두 서른살 전후의 공대 출신 남자들에게는 무리였고, PC가 있는 것도 아니니 각자 뉴스 검색을 하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 누군가 비디오 테입을 8개 가져왔는데, 에반게리온 TV판을 녹화한 것이었다. 문화적으로 무지했던 나는, 그 상황에서 이름도 생소한, 영화도 아닌 만화를, 그것도 로보트가 나오는 비디오를 보겠다니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데모와 연습 때문에 하루에 끽해야 테입 한개를 볼 수 있는 상황을 못견디고 주말에 비디오테입을 빌려서 방구석에 쳐박혀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8개를 줄줄이 틀어 봤었다. 마음이 불안하고 상황이 비극적이던 시절, 에반게리온은 나에게 동감이었고 위안이었으며, 문화적 충격이었다. 98년이 저물어가던 날 정처없이 갈등하던 내 앞에 나타나 에바를 왜 타야하는지 아니 에바를 타야하는 것인지를 갈등하며 나와 함께 상처받고 성장하던 에반게리온의 영원한 히로인 신지는, 2008년이 시작되는 무렵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세상보다 더 흔들리고 있는 내 앞에 나타나 여전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중요한 어떤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때로 부터 10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세상은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다. 신지가 여전한 고민을 여전한 모습으로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에반게리온의 내용이 그대로기 때문이듯 말이다. 내가, 또 우리들이 여전한 고민과 갈등과 방황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들의 세상이 우리에게 보내오는 어떤 사건들이-에반게리온의 사도와는 본질이 무척 다르겠지만- 그 색깔만을 조금씩 달리했을 뿐 본질적으로 변화한 부분이 없으며, 그 안에서 흔들리는 우리들 역시 그런 세상으로부터의 달음박질 쳐 떨어져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10년이 지나고 다시 만난 에반게리온은 그래서 변하지 않는 세상과 여전한 우리를 보여주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젠 다른 결말을 향해 가야 할 때임을 환기시킨다. 힘들던 시절도 돌아보면 추억이 된다고 한다. 아니, 힘들었던 만큼 더 진한 추억이 되는가보다. 여전히 끝나지 않고있는 거대한 조직과의 싸움 속에 갇혀있지만, 10년 전의 회사 강의실에서 동기들과 함께 불안한 시절을 나누면 함께 보았던 에반게리온은 그 시절과 함께 추억이 되었다. 이 쌉싸름한 겨울에 옛 모습과 새로운 모습이 뒤섞여 등장한 [에반게리온-序]은 내게 이 시절도 돌아보면 두눈 뜨거울 추억임을 속삭여주었다. 그래서일까? 너무 새로와져서 돌아오지 않은, 추억을 일깨워 현재를 격려하는, [에반게리온-序]가 반갑고 고맙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에반게리온을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12월이었다. 입사 후 1년 가까이 생산라인에서 현장실습이란 이름으로 근무했던 나와 내 동기들은 빅딜 데모가 터지자 데모를 하는 날 외에는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아졌다. 파업이 시작되고 신입사원인 우리들이 문선대를 하면서 인사팀에서 '신입사원들은 인사팀 소속이지 현장 소속이 아니니 연수원 강의실로 출근하라'는 지침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데모를 하지 않을 때는 나와 내 동기들 20명은 연수관 강의실에 모여있었다. 당최 앞이 보이지 않던 파업 속에서, 책상과 TV, 비디오플레이어가 전부였던 강의실에서 하루종일 수다를 떨고있자니 나를 제외하면 모두 서른살 전후의 공대 출신 남자들에게는 무리였고, PC가 있는 것도 아니니 각자 뉴스 검색을 하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 누군가 비디오 테입을 8개 가져왔는데, 에반게리온 TV판을 녹화한 것이었다. 문화적으로 무지했던 나는, 그 상황에서 이름도 생소한, 영화도 아닌 만화를, 그것도 로보트가 나오는 비디오를 보겠다니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데모와 연습 때문에 하루에 끽해야 테입 한개를 볼 수 있는 상황을 못견디고 주말에 비디오테입을 빌려서 방구석에 쳐박혀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8개를 줄줄이 틀어 봤었다. 마음이 불안하고 상황이 비극적이던 시절, 에반게리온은 나에게 동감이었고 위안이었으며, 문화적 충격이었다. 98년이 저물어가던 날 정처없이 갈등하던 내 앞에 나타나 에바를 왜 타야하는지 아니 에바를 타야하는 것인지를 갈등하며 나와 함께 상처받고 성장하던 에반게리온의 영원한 히로인 신지는, 2008년이 시작되는 무렵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세상보다 더 흔들리고 있는 내 앞에 나타나 여전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중요한 어떤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때로 부터 10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세상은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다. 신지가 여전한 고민을 여전한 모습으로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에반게리온의 내용이 그대로기 때문이듯 말이다. 내가, 또 우리들이 여전한 고민과 갈등과 방황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들의 세상이 우리에게 보내오는 어떤 사건들이-에반게리온의 사도와는 본질이 무척 다르겠지만- 그 색깔만을 조금씩 달리했을 뿐 본질적으로 변화한 부분이 없으며, 그 안에서 흔들리는 우리들 역시 그런 세상으로부터의 달음박질 쳐 떨어져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10년이 지나고 다시 만난 에반게리온은 그래서 변하지 않는 세상과 여전한 우리를 보여주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젠 다른 결말을 향해 가야 할 때임을 환기시킨다. 힘들던 시절도 돌아보면 추억이 된다고 한다. 아니, 힘들었던 만큼 더 진한 추억이 되는가보다. 여전히 끝나지 않고있는 거대한 조직과의 싸움 속에 갇혀있지만, 10년 전의 회사 강의실에서 동기들과 함께 불안한 시절을 나누면 함께 보았던 에반게리온은 그 시절과 함께 추억이 되었다. 이 쌉싸름한 겨울에 옛 모습과 새로운 모습이 뒤섞여 등장한 [에반게리온-序]은 내게 이 시절도 돌아보면 두눈 뜨거울 추억임을 속삭여주었다. 그래서일까? 너무 새로와져서 돌아오지 않은, 추억을 일깨워 현재를 격려하는, [에반게리온-序]가 반갑고 고맙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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