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
얼마 전에 한예슬의 로스앤젤레스 기행을 담은 한 케이블 방송 연예 프로그램을 본 적 있었다. 그 사람이 까르륵거리면서 그 동네 가게나 유원지에 가 노는 대부분의 장면들은 예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정작 참을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한예슬의 나레이션이었다. 절대로 내용을 똑바로 기억할 수 없지만 대충 이런 식이다. “나에게는 열정이 있다, 그리고 그건 영화다. 어쩌구 저쩌구.” 일단 로스앤젤레스 시내를 돌아다니며 까부는 한예슬의 모습이나 그 사람 원래 캐릭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다가 어쩜 저렇게 내용이 공허할 수 있나. 한예슬 역시 저런 말을 시치미 뚝 떼고 하느라 얼마나 민망했을까?
저번에 한국영화의 카피 제목과 어린아이 괴롭히기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보다는 눈에 덜 뜨이지만 역시 비슷하게 괴상한 유행이 있다. 그건 여성 캐릭터의 나레이션이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앞뒤에 나레이션이 등장한다면 십중팔구 그건 여성이다. <미녀는 괴로워>, <6년째 연애중>, <어깨너머의 연인>…. 여러분이 한 번 직접 꼽아보라.
여성 캐릭터의 나레이션이 등장하는 것이 나쁜가? 천만에. 어떤 형식으로건 여성 캐릭터에게 목소리를 주는 건 일단 좋은 거다. 문제는 이들의 나레이션에 내용이 전혀 없다는 거다. 대부분 이런 나레이션은 캐릭터나 사건에 대해 별다른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미녀는 괴로워>나 <스카우트> 정도가 수줍게 캐릭터와 설정을 설명해주긴 하는데, 심지어 그것들도 예외적이다. <6년째 연애중>이나 <어깨너머의 연인>, 특히 <어깨너머의 연인>을 보면 나레이션에 ‘전혀 내용이 없다.’ 뭔가 선언적인 태도로 자신과 인생에 대해 거창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까지 한 캐릭터들의 뻘짓과도 맞지 않고 주체성은 찾아볼 수가 없으며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문장들은 물속에 들어간 솜사탕처럼 허공중에 녹아 사라져버린다. 그들은 그냥 공허하며 선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삽입된 게 아니라 그냥 관객들에게 보이스 오버로 뭔가 선언을 하는 게 쿨하다고 생각되어서 들어간 거다.
나는 이게 시리즈 전체가 주인공 캐리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었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악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오해할까봐 말하겠는데, 나는 캐리 브래드쇼의 캐릭터만 뺀다면 <섹스 앤 더 시티>에 유감없다. 그건 캐리의 나레이션도 마찬가지다. 캐릭터는 재수없지만, 캐리 브래드쇼는 재능있는 컬럼니스트이고 그 나레이션에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내용과 날카로운 위트가 있다. 목소리의 장악을 통해 얻은 쿨함도 존재하지만 그건 내용에 비하면 하찮다.
문제는 대부분의 <섹스 앤 더 시티>의 모방자들이 내용을 보는 대신 외피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진짜로 <섹스 앤 더 시티>를 생산적으로 흉내내고 싶다면 그 뻔하디 뻔한 겉멋을 흉내내는 대신 자신만의 내용을 찾아라. 요즘 세상엔 흉내를 하는 데에도 창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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