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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동정 없는 세상 달리는 나·쁜·놈·들

등록 2008-02-10 19:19수정 2008-02-10 23:46

영화 ‘추격자’
영화 ‘추격자’
영화 ‘추격자’
성매매 알선업 하는 전직 형사
잔혹한 연쇄살인마 쫓아 분투
걸출한 연기·현실적 연출 돋봬

지난해 말 <세븐데이즈>가 관객 200만명을 넘어서더니 31일 개봉한 <더 게임>도 첫주 흥행 1위를 했다. 한국 범죄스릴러는 인기가 없다는 것도 옛말이 된 셈이다. 14일 개봉하는 <추격자>(감독 나홍진)도 과연 이른 흐름을 이어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단 영화 자체는 눅진한 피와 땀, 한국 사회의 공기를 진한 밀도로 뭉쳐 옹골찬 범죄물로 나왔다. 한국 관객들이 익숙한 미국 드라마 <시에스아이>가 영민한 수사관과 세련된 수사기법으로 범인을 쫓는다면 <추격자>의 무기는 팽팽하게 긴장된 장딴지 근육과 터질 듯한 심장박동이다.

이야기는 관객들의 예상을 배반하며 인정사정 안 보고 달린다. 일단 연쇄살인범이란 절대악을 쫓는 주인공이 형사가 아니라 비호감 인물이다. 전직 비리형사인 엄중호(김윤석), 지금은 출장성매매 알선업을 한다. 몸살 앓는 미진(서영희)에게 “욕 처들어 먹고 질질 짜지 말고 일 나가라”고 닦달하는 남자다. 아픈 미진은 중호의 으름장에 못 이겨 손님 지영민(하정우)의 집으로 일 나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영민에게 불려나간 여자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이 도망친게 아니라 팔려간 거라는 직감에 따라 중호는 미진을 쫓아가지만 미진은 이미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그때부터 미진을 살리고 지영민을 잡으려고 엄중호는 죽도록 달리고 개싸움을 벌여야한다.

영화 ‘추격자’
영화 ‘추격자’
영화는 시작한 지 10분도 안돼 지영호가 살인범이란 걸 까발려버린다. 그리고 30여분 만에 중호는 지영민을 찾아내 치고 받고 쥐어뜯어 지영민을 붙잡아 경찰에 넘기고, 지영민은 경찰에게 자기가 여자들을 죽였다고 실실 자백해버린다. 보통 범죄물의 결말을 아예 앞에 붙여버린 채 이야기는 가파르게 코너를 꺾어가며 탄탄하게 내달린다. 미진에게 관객들이 잔뜩 감정이입하도록 몰아간 뒤 관객의 기대를 야멸차게 저버린다.

현장감 물씬 풍기는 묘사는 이야기를 팔딱이는 생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옥수동, 평창동, 북아현동에서 제작진은 내장처럼 엉킨 골목길들을 들쑤셔 서울의 체취를 그대로 담았다. 경찰들의 너저분한 입성, 중호의 거친 말투 등도 현실적이다. 영민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드는 노련한 수사관의 미묘한 말투 변화, 거기에 반응하는 영민의 자세 변화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짜낸다.

<추격자>는 죽음에도 계급이 있어 약자의 죽음 따위에는 별 관심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담았다. “하수도 고쳐달랬더니 상수도 뜯어 씻지도 못하게 했다”며 한 남자가 시장에게 똥물을 던진 사건이 경찰에게는 미진의 죽음보다 더 중요하다. 연쇄살인범을 잡아 똥물 투척 사건을 무마해야 하는 경찰은 영민의 수작에 놀아나기 바쁘다. “영민아, 너 원래 그런 놈 아니잖아” 달래는 경찰, 중호가 영민을 마구 패는 걸 방치해 그렇게라도 증거를 얻어 보려는 경찰…. 그들의 헛발질은 허탈한 웃음을 자아낸다.

냉혈한 엄중호가 마지막에 거의 미친 짐승처럼 미진을 찾아 헤매는 까닭을 영화에서는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크게 의아해지지 않는 까닭은 배우 김윤석이 눈빛과 몸으로 복잡한 감정들이 들러붙은 분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정우도 처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영민이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지 알려주지 않지만 하정우가 연기한 영민은 아무런 범행 동기나 거리낌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추격자>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두 배우의 탁월한 연기호흡, 그리고 김윤석의 말처럼 “500m 뛰는 5초 장면을 찍기 위해서 2㎞를 뛴” 땀에서 비롯됐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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