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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카데미가 사랑한 ‘고달픈 청춘’들

등록 2008-02-14 19:28수정 2008-02-17 19:05

주노
주노
작품상 후보작 ‘어톤먼트’ ‘주노’ 21일 나란히 개봉
비극적인 멜로물 <어톤먼트>(감독 조 라이트)와 유쾌한 성장담 <주노>(감독 제이슨 라이트먼)는 만찬용 드레스와 찢어진 청바지만큼 정서가 다른 영화다. <어톤먼트>가 1930년대 영국 저택과 2차 세계 대전 전쟁터를 누비며 비장미를 한껏 쌓아가는 동안 <주노>는 현재 미국의 작은 마을을 활보하며 블로그에 목숨 거는 청춘의 발랄함과 도발을 길어 올린다.

하지만 21일 함께 개봉하는 두 영화는 닮은 점도 꽤 있다. 사춘기 소녀의 성장이 이야기의 중요한 줄기를 이룬다. 둘 다 생경하지 않을 만큼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충분히 신선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24일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또 두 작품 모두 걸출한 새 세대 여배우를 세상에 알렸다. <어톤먼트>에서 13살 브라이오니역을 맡은 14살 시얼샤 로넌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주노>에서 덜컥 임신한 16살 주노가 된 20살 엘렌 페이지는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어톤먼트
어톤먼트
■ 청춘의 굴레= 사소한 오해와 역사의 소용돌이 탓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이야기는 닳고 달았지만 <오만과 편견>을 만들었던 존 라이트 감독은 날선 연출의 칼날로 첫사랑의 혼란과 아슬아슬한 비끌림을 예민하게 저며낸다.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이 쓴 같은 이름의 소설을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햄튼이 각색했다.

음악은 감정을 압축하고,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편집은 오해의 틈을 도려내 보여준다. 탤리스가의 딸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그 집 가정부 아들 로니(제임스 멕어보이) 사이 흐르는 묘한 긴장감, 이를 바라보는 세실리아의 동생 브라이오니의 오해와 질투를 라이트 감독은 하나의 음악, 눈을 찌르듯 창을 통과하는 햇살과 문 틈에 낀 벌의 불안한 날개짓만으로도 전달한다. 어린 브라이오니는 세실리아와 로니의 밀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로니를 성폭행범으로 오해한 브라이오니의 증언 탓에 로니는 전쟁터로 끌려간다.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브라이오니는 간호사가 돼 피고름을 닦으며 자신의 죄를 씻으려 한다.

사전을 뒤적이지 않으면 좀처럼 알 수 없는 ‘어톤먼트’는 속죄라는 뜻이다. 로니와 세실리아의 사랑 이외에 브라이오니의 성장과 고통이 이 영화의 뼈대다. 특히 어린 브라이오니는 활력과 불안, 조숙함과 천진함을 동시에 껴안아야하는 인물이다. 연기를 배운 적도 없는 시얼샤 로넌은 푸른 눈동자 안에 그 양면적인 감정을 모두 담았다.

■ 청춘의 도발 = 미국 미네소타주의 소도시 16살 짜리 주노는 덜컥 임신한다. 아기 아버지는 아직 솜털이 보송한 블리커다. 그렇게 대책 없어 보이는 청춘들이지만 줏대가 없는 건 아니다. 뱃속 아기에게도 손톱이 있다는 말에 낙태를 포기한 주노는 아기에게 적합한 입양부모를 찾아 나선다. “엄마가 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바네사와 작곡가 마크 부부다. 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블리커는 다른 여자아이와 졸업 파티에 간다고 하지, 바네사 부부는 서로 갈라서겠다며 으르렁거리지, 주노에겐 걱정만 늘어간다.

<주노>는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자의 도덕관념과 여성만의 희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를 모두 껴안는 영리한 영화다. 대중이 가장 반길만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주노>에 독특한 비주류 색깔을 입히는 건 주노의 캐릭터와 그를 맡은 엘렌 페이지의 연기다. 말총머리를 달랑거리며 하드록과 공포영화에 열광하는 주노의 도도한 눈초리는 상대를 휘어잡고도 남는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내 갈 길 간다’는 태도는 이 소녀가 지닌 매력의 결정체다.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우스개로 만들 만큼 객관화하는 능력과 유머 감각을 지닌 주노는 사랑도 똑부러지게 찾아낸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유피아이코리아·미로비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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