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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표절 논란’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록 2008-02-17 20:19

저공비행
얼마 전에 디아블로 코디가 쓴 <주노>의 각본이 한국 영화 <제니, 주노>를 표절한 것이라는 괴상한 소문이 돌았다. 디아블로 코디 자신이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제니, 주노>의 감독까지 부인한 루머가 아직도 돌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사실 두 영화는 소재와 주노라는 이름을 제외하면 별다른 공통점도 없다. 결말도 다르고 태도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다. 주인공의 이름이 주노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이걸 표절이라 생각 안 했을 거다. 그리고 표절을 하면서 주노라는 이름을 일부러 차용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나?

그나마 두 작품 사이에 의미있는 시간차가 존재하는 <주노> 소동보다 더 괴상한 건 곧 국내에서 개봉될 서스펜스 영화 <어웨이크>가 한국 영화 <리턴>을 표절했다는 루머다. 둘 다 수술 중 각성이라는 소재를 다룬 스릴러라는 이유 때문인데, 조금만 할리우드 소식에 밝은 사람들이라면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문이라는 걸 알 거다. <어웨이크>의 각본은 <리턴>보다 훨씬 전에 나왔고 <리턴>이 개봉되었을 무렵, <어웨이크>는 제작 중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타이밍만 따지면 <리턴> 쪽이 의심받기 더 좋다. 그렇다고 정말 베꼈다는 건 아니지만….

얼핏 보면 이런 소동은 재미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 영화를 표절했다는 가설은 말도 안 되는 농담거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노>의 경우는 정말로 믿는 사람들이 생기고 할리우드의 작가들도 나름 진지하게 반응한다. 그만큼이나 한국 영화의 위상이 커졌고 우리의 자존심도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인터넷이나 디브이디와 같은 테크놀로지의 발달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결론은 특별히 달라지지 않는다. 우린 지난 10년 동안 훨씬 국제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표절 논란이 특별히 더 재미있어지는 건 아니다. 특히 <어웨이크>의 경우는 그냥 게으르다. 이 루머를 격파하기 위해서는 별다른 노력이나 지식도 필요없다. 그냥 영화 정보 사이트에 가서 몇 가지 기초적인 조사를 하면 된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조사를 하는 사람들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적다. 자칭타칭 인터넷 저널리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도대체 왜들 검색을 안 하는 걸까? 그게 바로 인터넷라는 문명의 이기가 존재하는 첫번째 이유가 아닌가? 적어도 저널리스트라는 사람들은 루머를 다루면서 최소한의 사전 조사는 해야 한다. 그게 그 사람들의 의무다.

그러나 국내 인터넷 환경에서 이런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그건 게으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기초지식의 결여 때문인 것 같다. 이상하게도 연예 기자들의 경우, 다루는 대상에 대한 기초 지식이 턱없이 부족해도 사람들은 뭐라 하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런 사전 조사 없이 보도자료들을 그대로 긁어 기사처럼 올려도 마찬가지다. 연예 관련 정보처럼 ‘가벼운’ 것들은 대충 틀려도 된다는 것인지? 그럼 대충 틀려도 되는 ‘가벼움’의 정도는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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