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있는 조연 도맡아온 배우 조은지
색깔 있는 조연 도맡아온 배우 조은지
관객 500만명을 코앞에 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주는 재미의 8할은 말투 거친 아줌마 선수(김지영)와 눈치나 주책은 약에 쓰려해도 없는 골키퍼(조은지) 두 조연이 빚어낸다. 조은지는 청와대에 접대하러 들어가면서 껌을 짝짝 씹어대던 <그 때 그 사람들>의 여대생, <달콤 살벌한 연인>의 예쁜 여자 주인공의 주책 없는 친구로 천박하면서도 천진하고, 황당하게 웃기면서도 처연한 조연을 능청맞도록 해내왔다. 데뷔작 <눈물>(2001)부터 소녀의 구김 없는 웃음과 마스카라 검게 번진 아낙네의 눈물을 한 얼굴에서 보여줬던 배우 조은지(27)를 13일 만났다. 그는 주로 조연이었지만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철없는 여대생, 주책맞은 친구 등
천진하면서도 능청스런 배역 소화
“미녀 아니지만 사랑스런 주인공 꿈꿔” 그가 맡은 인물들은 속물 같은 밑자락도 “그게 뭐 어때서”라는 듯 드러낸다. 보통 사람이라면 예의며 교양 밑으로 숨길 것들을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펼쳐 놓으니 귀여워져 버린다. “제가 괴짜같아요? 저 평범해요. 하지만 뭐가 평범한지 그 기준은 제가 정하죠.(웃음) 저는 나서기보다 이끌려가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적응기간도 긴 편이에요. 술 마시고 얼씨구 절씨구 놀다가도 다음날 ‘안녕하세요, 어제는 잘 들어가셨죠.’ 깍듯하게 예의 차려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 바람둥이 중식(정보석)을 기다리다 지친 30대 소옥을 맡은 그는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부른다. 알딸딸하게 취한 사람의 쓸쓸하고 우스운 등짝을 그만큼 제대로 표현하는 배우도 드물다. “사실 음주는 잘 못해요. 그래도 가무는 잘하죠. 클럽에 가면 주목을 받아요. 다들 ‘쟤 많이 마셨나보네’ 그래요. 기분 가는대로 미친 듯이 춤 추니까요. 공부할 때 빼고 놀 때는 에너지가 막 나오는 것 같죠.” <눈물>의 10대 술집 접대부 란이도 소옥이도 개똥 같은 세상 뒹굴다 세상 돌아가는 지독한 이치를 눈치 챈 사람들이다. 그래도 맹하도록 천진해 누구에게나 덥석 말도 잘 걸 듯하다. “초등학교 때 말도 친구도 없었어요. 혼자라는 게 별로 외롭지도 않았어요. 중학교 때부터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했고 한 순간에 사람이 바뀌었죠. 무용을 배웠는데 선생님이 ‘자질은 없지만 무용의 필수조건인 팔다리는 길구나’했죠. 뭔가 부당하게 억압당하는 기분이 들어 고등학교 때 머리를 박박 깎기도 했어요. 잡지 모델하다가 <눈물>에 뽑혔을 때는 ‘배우가 되겠다’ 그런 생각은 없었지만 창피하게 연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 뒤 여러 상처가 쌓이면서 배우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생겼어요. 일이 안 들어오고 밑바닥을 쳐보니까 연기를 하고픈 강렬한 열망이 들더라고요.” 그가 연기한 인물에서 그를 떼어내는 건 쉽지 않다. “제가 딱 꽂히는 캐릭터가 있어요. 누가 해도 괜찮을 거 같은 인물이 아니라 제가 하면 잘 할 수 있을 듯한 사람들이에요. 예전에는 대사나 지문에만 골몰했다면 요즘엔 인물의 과거를 생각해봐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죠. 제가 미녀가 아닌데 어떻게 미녀 주인공이 되겠어요. 하지만 미녀가 아니어도 사랑받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조은지 생애 최고의 순간을 물었다. “지나보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찍을 당시였던 것 같아요. 촬영 끝나는 날 울컥하고 기쁘고 하여간 말을 못 이었어요. 배우들이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매번 훈련 끝나고 술 한잔씩하고…. 마치 다른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천진하면서도 능청스런 배역 소화
“미녀 아니지만 사랑스런 주인공 꿈꿔” 그가 맡은 인물들은 속물 같은 밑자락도 “그게 뭐 어때서”라는 듯 드러낸다. 보통 사람이라면 예의며 교양 밑으로 숨길 것들을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펼쳐 놓으니 귀여워져 버린다. “제가 괴짜같아요? 저 평범해요. 하지만 뭐가 평범한지 그 기준은 제가 정하죠.(웃음) 저는 나서기보다 이끌려가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적응기간도 긴 편이에요. 술 마시고 얼씨구 절씨구 놀다가도 다음날 ‘안녕하세요, 어제는 잘 들어가셨죠.’ 깍듯하게 예의 차려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 바람둥이 중식(정보석)을 기다리다 지친 30대 소옥을 맡은 그는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부른다. 알딸딸하게 취한 사람의 쓸쓸하고 우스운 등짝을 그만큼 제대로 표현하는 배우도 드물다. “사실 음주는 잘 못해요. 그래도 가무는 잘하죠. 클럽에 가면 주목을 받아요. 다들 ‘쟤 많이 마셨나보네’ 그래요. 기분 가는대로 미친 듯이 춤 추니까요. 공부할 때 빼고 놀 때는 에너지가 막 나오는 것 같죠.” <눈물>의 10대 술집 접대부 란이도 소옥이도 개똥 같은 세상 뒹굴다 세상 돌아가는 지독한 이치를 눈치 챈 사람들이다. 그래도 맹하도록 천진해 누구에게나 덥석 말도 잘 걸 듯하다. “초등학교 때 말도 친구도 없었어요. 혼자라는 게 별로 외롭지도 않았어요. 중학교 때부터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했고 한 순간에 사람이 바뀌었죠. 무용을 배웠는데 선생님이 ‘자질은 없지만 무용의 필수조건인 팔다리는 길구나’했죠. 뭔가 부당하게 억압당하는 기분이 들어 고등학교 때 머리를 박박 깎기도 했어요. 잡지 모델하다가 <눈물>에 뽑혔을 때는 ‘배우가 되겠다’ 그런 생각은 없었지만 창피하게 연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 뒤 여러 상처가 쌓이면서 배우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생겼어요. 일이 안 들어오고 밑바닥을 쳐보니까 연기를 하고픈 강렬한 열망이 들더라고요.” 그가 연기한 인물에서 그를 떼어내는 건 쉽지 않다. “제가 딱 꽂히는 캐릭터가 있어요. 누가 해도 괜찮을 거 같은 인물이 아니라 제가 하면 잘 할 수 있을 듯한 사람들이에요. 예전에는 대사나 지문에만 골몰했다면 요즘엔 인물의 과거를 생각해봐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죠. 제가 미녀가 아닌데 어떻게 미녀 주인공이 되겠어요. 하지만 미녀가 아니어도 사랑받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조은지 생애 최고의 순간을 물었다. “지나보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찍을 당시였던 것 같아요. 촬영 끝나는 날 울컥하고 기쁘고 하여간 말을 못 이었어요. 배우들이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매번 훈련 끝나고 술 한잔씩하고…. 마치 다른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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