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추격자〉 생애 첫 주연, 김윤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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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개봉한 스릴러 <추격자>(감독 나홍진)의 탄력이 놀랍다. 첫주에 할리우드 영화 <점퍼>에 밀려 관객수 2위에 출발했던 <추격자>는 제목대로 바로 추격에 성공해 개봉 2주차에 선두로 나섰다. 개봉 첫주에 흥행 성적이 결판나고, 2주차부터는 관객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요즘 ‘흥행의 법칙’을 깨는 놀라운 힘이다. 더구나 신인감독의 데뷔작이어서 <추격자>의 돌풍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 뒷심의 중심에 배우 김윤석이 있다. 김윤석은 상대역 하정우와 함께 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스릴러에 더운 콧김 뿜어내는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타짜>에서 악인의 끝인 아귀, <즐거운 인생>에서 생활에 지친 대리운전사,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알코올중독자 아버지로 연기실력을 입증한 그는 내공 하나로 마흔 살에 처음 주연을 맡았다. 개봉 뒤 만난 그는 요즘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깃발 날리죠.”
김윤석은 <추격자>에서 형사였다가 비리로 쫓겨나 출장성매매 알선업을 하는 더럽고 이기적인 엄중호로 나온다. 자기와 함께 일하는 여자들을 지영민(하정우)이 빼돌렸다고 여기고 추적하다 지영민을 발견하고 읊는 중호의 대사, “야, 4885(영민의 휴대폰 번호 뒷자리)…. 너지?”는 관객들 사이에서 명대사로 꼽히고 있다. 대사를 내뱉는 김윤석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허탈함, 상대에 대한 무시와 분노까지 미묘한 감정들이 스멀거렸다.
영화 개봉 뒤 만난 김윤석은 1인칭 주어인 ‘나’를 내세워 자신인 듯 중호를 설명하곤 했다. “이 바닥 여자가 (혼자) 애를 데리고 살면 감이 딱 잡히거든요. 그런데도 (엄마가 사라진) 딸한테 집요하게 물어봐요. 아빠 어디있냐고. 사실 잔인한 질문이거든. 그럴 만큼 상대방의 아픔에 대해 잘 모르는 인간이에요. 그런데 바로 이 장면에서 두 사람(중호와 미진의 딸) 사이에 감정이 미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해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노선이 중호라는 인물에 들어있는 거죠.”
<타짜>의 악랄한 도박꾼 아귀를 연기할 때 그는 전라도 사투리에 서울말을 섞어 썼다. 아귀가 전국구로 뛰는 도박사인 점을 감안해 사투리 느낌을 일부러 살짝 죽였던 것이다. <추격자>에선 말투가 달라졌다. “이기적인 인물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으니까 말이 거의 다 직선이죠. 중호는 거의 명령조죠. 형사라는 전직과 지금의 어두운 생활, 성격이 모여서 그런 말투가 돼요.”
<추격자>는 중호와 연쇄살인범 영민히 하루 동안 벌이는 벌이는 개싸움과 추격전을 펌프질로 뛰는 박동이다. 그의 등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뛰다 내지른 토악질의 비린내가 스크린에 풍긴다. “싸움 장면은 사랑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배려해야 그런 격렬한 격투가 나와요. 마지막 격투는 30시간 넘게 찍었는데 몸도 힘들지만 그 와중에도 세밀한 묘사를 살려야하는 게 힘들었어요. 연기하는 김윤석과 그걸 냉정하게 바라보는 김윤석이 동시 진행되어야 하거든요.”
자기가 맡은 인물의 모든 정보를 모아 곱씹고서 땀구멍 하나하나로 뱉어내는 듯한 연기의 비결은 뭘까.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선생님 흉내 잘 내는 애들 있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특징적 부분을 흉내 낼 때보다 특징적이지 않은 부분을 포착해 흉내 낼 때 사람들이 감탄해요. 특이한 말투를 흉내 내는 것은 기본이되 그 말투를 뱉고 난 뒤에 아주 미세한 동작을 완성시켜주면, 꺼뻑 넘어가는 거죠.”
그는 주로 세상의 진흙탕에서 악다구니 치는 악인들을 연기해왔다. “선과 악 딱 둘로 나누니까 재미가 없죠. 선하게 그려지는 사람은 치사하지도 이기적이지도 야비하지도 않은 놈인데 이렇게 재미없는 놈을 왜 제가 연기해야 해요. 이렇게 현실성이 없는 역할을…. 세상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고 순간순간 야비한 선택을 하잖아요.”
대학교 1학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작업하는 맛”에 빠져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간 그는 “이 일을 포기 못 하겠구나”라는 생각에 극단76 등 연극판에서 버텼다. 그런 그도 한동안 지쳐 라이브재즈카페를 차리고 무대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연극은 저의 가장 큰 밑천이에요. 하고 싶은 배역? 그런 거 없어요. 꿈꿔봤자 소용 없어요. 그런 역할이 나한테 와야지. 연기자로서 도달하고 싶은 경지? 그런 것도 없어요. 제가 역할모델이고 제가 과정이고 목표죠. 오래하다 보면 그렇게 돼요.(웃음)”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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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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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조소영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