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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총잡이는 죽지 않는다, 오로지 고독할 뿐

등록 2008-02-24 21:59

현대적 서부극 ‘3:10 투 유마’ 계기로 본 무법자들의 연대기
현대적 서부극 ‘3:10 투 유마’ 계기로 본 무법자들의 연대기
현대적 서부극 ‘3:10 투 유마’ 계기로 본 무법자들의 연대기
한때 종말을 고한 것 같았던 서부극이 부활하고 있다. 러셀 크로우 주연의 <3:10 투 유마>, 브래드 피트 주연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현대물이면서도 서부극 장르의 장치를 끌어들인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이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이어 개봉한 <3:10 투 유마>는 전형적인 서부극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다.

인생의 시험대서 최선 다하는 영웅
선-악 허문 스파게티웨스턴과 차별
명작 ‘용서받지 못한자’ 계보 이어

■ 새롭게 단장한 서부극, <3:10 투 유마> =21일 개봉한 <3:10 투 유마>는 무장 강도, 살인 등을 저지른 무법자 벤 웨이드가 체포되며 시작한다. 사흘 뒤 오후 3시 10분 유마행 열차에 벤 웨이드를 태우기 위해, 철도회사에서는 호송대를 조직한다. 빚에 쪼들리던 가장 댄 에반스는 호송대에 자원하여 위험한 여정을 떠난다. 에반스가 선이라면, 웨이드는 악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철도회사는 에반스의 농장을 빼앗기 위해, 불량배를 고용하여 마구간을 불태우고, 철도회사가 고용한 핑커튼 탐정들은 인디언 마을을 공격해 부녀자까지 살육했다. 웨이드는 강도를 하면서 사람을 죽이지만, 무고한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에반스의 아들은, 비겁한 아버지 에반스가 아니라 호탕한 무법자 웨이드를 존경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하이 눈>처럼 제한된 시간 내에 홀로 수많은 적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에반스는 결단을 내린다. 에반스에게는 거대한 정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에반스가 원한 것은, 가정의 평화 그리고 명예다. 그는 단지 안락한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과 아들의 존경을 바란다. 남북전쟁에서 얻어낸 훈장이 아니라, 아들이 진정으로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는 명예를 원한 것이다. 묘하게도, 인생에서 전혀 다른 방향을 선택했던 에반스와 웨이드는 점차 가까워진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협조한다. 그러면서도 스파게티 웨스턴처럼 선과 악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결한 삶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3:10 투 유마>는 인생의 유희가 아니라 시험의 장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영웅을 보여준다.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끊임없이 생명력을 얻어 부활할 수 있는 장르임을 <3:10 투 유마>는 증명한다.

■ 최초의 장르 영화= 사실 전형적인 서부극이라는 말도 이제는 존재하기 힘들다. 수많은 영화 장르 중에서 서부극이 가장 먼저 완성되었던 것은, 미국의 건국신화라는 거창한 목적 외에 총과 말이 등장하는 거대한 스펙터클이 가능하다는 상업적 판단이 컸다. 서부극에는 개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자신의 목숨도 스스로 지킨다는 철저한 개인주의, 서부개척의 모험정신, 정의에 대한 맹신, 백인 중심주의 등이 담겨 있다. <역마차>(1939), <백주의 결투>(1946), <하이 눈>(1952), (1957), <리오 브라보>(1959) 등 상업적인 장르로서의 서부극은 50년대까지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이미 50년대에 서부극은 자기반성을 모색한다. 서부극의 정점에 달한 작품은 거장 존 포드의 <수색자>(1956)다. <수색자>는 그동안 서부극에서 당연하게 묘사되었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디언은 과연 누구이고,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 미국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등등.


■ 서부극의 변신 =혁명의 시대였던 60년대에 들어서면, 수정주의 서부극이 유행한다.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1970)는 무법자들의 세계를 통해서 폭력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69)는 미국의 서부개척 자체가 최악의 폭력이었음을 보여준다. 아서 펜의 <작은 거인>(1970)은 백인이면서 인디언 사회에서 살아온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서부극의 전제 자체를 무너뜨린다. 또한 세르지오 레오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스타로 만든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등의 스파게티 웨스턴을 통해 서부극의 장엄한 신화 자체를 조롱한다. 서부 총잡이의 역사는 멋진 영웅들의 결투가 아니라, 비열하고 치졸한 악당들의 협잡과 이전투구였음을 스파게티 웨스턴은 보여준다.

서부극의 쇠락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1980)이 흥행실패로 제작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A)를 파산시킨 뒤 서부극은 몰락지경이었다. 이후 가끔 가벼운 오락물 정도로 만들어지던 서부극은 1992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감독하고 주연도 맡은 <용서받지 못한 자>로 대미를 장식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단지 고발을 위한 수정주의 서부극이 아니라, 서부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총잡이’의 고뇌를 그린 진짜 서부영화였다. 초라하고 지친 몸이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 마지막 총잡이의 모든 것을 보여준 <용서받지 못한 자>로 서부극은 다시 시작할 원점을 만들었다. 한 번을 돌아 다시 출발한 서부극은 아직도 보여줄 것이 무한한 것이다.

김봉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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