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 28일 개봉
제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은 감독과 영화제 이름에 눌려 어려운 메시지를 발견하려고 골몰할 필요가 없다. 의미를 발견하고 싶다면 말릴 일도 아니지만 애초에 주제를 밑줄 그어 전달하려고 만든 영화는 아닌 듯하다. <밤과 낮>은 시시때때로 빛깔이 바뀌는 흐르는 물 같은 영화다. 확실한 것은 한 가지, 무척 웃기다.
낮엔 여자에 작업 걸고 밤엔 아내에게 어리광
사내의 비루한 일상 담아낸 ‘34일의 파리 일상 담아낸 ‘34일의 파리 일기’ 홍 감독의 전작 <해변의 여인>에서 남자 주인공은 아메바를 닮은 도형을 그리며 말한다. “이게 한 사람의 실체라고 치면 사람들은 통념 탓에 몇몇 꼭지점만 본다. 그 꼭지점만 이어 삼각형이나 사각형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 꼭지점 수를 무수히 늘려가야 실체에 근접할 수 있다.” 사실 자신이 바람피운 사실을 얼버무리려고 멋있게 지어낸 것이지만 <밤과 낮>에 대한 단서 같이 들리기도 한다. <밤과 낮>은 실체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통념에서 벗어나 변화무쌍한 실체에 근접하려는 지독한 관찰 과정을 관객이 키득거리며 경험하게 해준다. 웃음은 모순이나 역설에서 피식거리며 나온다. 인물들은 ‘이런 사람’이라고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가 없다. 주인공 성남(김영호), 유학생 두 명과 대마초를 피우다 경찰에 잡힐까봐 도망 치는 꼴을 보니 소심한데 또 파리까지 대책 없이 온 걸 보면 대범한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 거기서 우연히 10년 전 연인 민선을 만나는데 자신의 애를 여섯 번이나 낙태했다는 민선을 기억도 못하니 인정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민선이 죽자 목 놓아 우는 걸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민선이 같이 자자고 할 때는 윤리를 들이대더니 젊고 예쁜 유정(박은혜) 하고는 어떻게 한번 자볼까 궁리한다. 유정과의 연애에 몰두하다가도 새벽 1시만 되면 서울에 있는 아내 성인(황수정)에게 전화해 어리광을 부리는데 두 여자에 대한 감정이 모두 진심으로 보인다. 유정, 같이 여행 가도 기름값 한번 안내는 얌체인데 성남의 유혹에 넘어가니 맹한 구석도 있다. 그토록 도도하더니 성남의 반말 등에 “남자 답다”며 넘어간다.
성남은 홍 감독의 앞선 영화 주인공처럼 교양인으로 꾸며도 수컷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이기적이고 치졸한 사내지만 홍 감독의 남자 주인공 중 가장 의뭉스럽지 않은 인물이다. 한식집에 같이 간 유정과 현주가 “그림이란 뭔가요”라고 철학적인 질문을 하는 동안 성남은 “이 집 음식 정말 맛 없다”라고 독백한다. 북한 대학생(이선균)을 우연히 만나고는 대사관에 신고해야 하나 고민한다. 남자끼리 친해지자고 제안한 팔씨름에서 온 힘을 다하고 이기면 기분 좋은 표정이 된다. 그런 성남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냉소나 자조 없이 홍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따뜻하다.
역설이나 모순 덕에 성남의 삶은 웃기고 슬프고 비루한 동시에 신비하다. 성남이 가정으로 복귀하는 ‘윤리적인’ 선택은 아내의 ‘비윤리적인’ 거짓말에서 이뤄진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유정의 임신 가능성에 눈감는 무책임함과 짝패를 이룬다. 영화 장면 곳곳에 프랑스 파리 도심을 흐르는 물이 나오는데 거기엔 개똥도, 주인공 성남이 접은 종이배도 떠내려간다. <밤과 낮>은 성남이 쓴 34일 동안의 일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날은 단 한 문장으로 끝나고 어떤 날은 긴 기억을 남긴다. 홍 감독은 베를린영화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기장 형식은 하루 하루가 독립된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인물이 움직이면서 하루와 하루 사이 연결성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며 또 하루와 하루의 대립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홍 감독의 영화는 제작 과정과 닮아 있다. 황수정, 김영호, 박은혜를 만나 농구도 하고 가위바위보 게임도 하며 직감에 따라 캐스팅했다. 촬영 장소가 주는 느낌, 그때 그때 배우의 감정 등을 반영해 쪽대본으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28일 개봉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영화사 봄 제공
사내의 비루한 일상 담아낸 ‘34일의 파리 일상 담아낸 ‘34일의 파리 일기’ 홍 감독의 전작 <해변의 여인>에서 남자 주인공은 아메바를 닮은 도형을 그리며 말한다. “이게 한 사람의 실체라고 치면 사람들은 통념 탓에 몇몇 꼭지점만 본다. 그 꼭지점만 이어 삼각형이나 사각형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 꼭지점 수를 무수히 늘려가야 실체에 근접할 수 있다.” 사실 자신이 바람피운 사실을 얼버무리려고 멋있게 지어낸 것이지만 <밤과 낮>에 대한 단서 같이 들리기도 한다. <밤과 낮>은 실체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통념에서 벗어나 변화무쌍한 실체에 근접하려는 지독한 관찰 과정을 관객이 키득거리며 경험하게 해준다. 웃음은 모순이나 역설에서 피식거리며 나온다. 인물들은 ‘이런 사람’이라고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가 없다. 주인공 성남(김영호), 유학생 두 명과 대마초를 피우다 경찰에 잡힐까봐 도망 치는 꼴을 보니 소심한데 또 파리까지 대책 없이 온 걸 보면 대범한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 거기서 우연히 10년 전 연인 민선을 만나는데 자신의 애를 여섯 번이나 낙태했다는 민선을 기억도 못하니 인정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민선이 죽자 목 놓아 우는 걸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민선이 같이 자자고 할 때는 윤리를 들이대더니 젊고 예쁜 유정(박은혜) 하고는 어떻게 한번 자볼까 궁리한다. 유정과의 연애에 몰두하다가도 새벽 1시만 되면 서울에 있는 아내 성인(황수정)에게 전화해 어리광을 부리는데 두 여자에 대한 감정이 모두 진심으로 보인다. 유정, 같이 여행 가도 기름값 한번 안내는 얌체인데 성남의 유혹에 넘어가니 맹한 구석도 있다. 그토록 도도하더니 성남의 반말 등에 “남자 답다”며 넘어간다.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
역설이나 모순 덕에 성남의 삶은 웃기고 슬프고 비루한 동시에 신비하다. 성남이 가정으로 복귀하는 ‘윤리적인’ 선택은 아내의 ‘비윤리적인’ 거짓말에서 이뤄진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유정의 임신 가능성에 눈감는 무책임함과 짝패를 이룬다. 영화 장면 곳곳에 프랑스 파리 도심을 흐르는 물이 나오는데 거기엔 개똥도, 주인공 성남이 접은 종이배도 떠내려간다. <밤과 낮>은 성남이 쓴 34일 동안의 일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날은 단 한 문장으로 끝나고 어떤 날은 긴 기억을 남긴다. 홍 감독은 베를린영화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기장 형식은 하루 하루가 독립된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인물이 움직이면서 하루와 하루 사이 연결성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며 또 하루와 하루의 대립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홍 감독의 영화는 제작 과정과 닮아 있다. 황수정, 김영호, 박은혜를 만나 농구도 하고 가위바위보 게임도 하며 직감에 따라 캐스팅했다. 촬영 장소가 주는 느낌, 그때 그때 배우의 감정 등을 반영해 쪽대본으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28일 개봉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영화사 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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