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
얼마 전에 있었던 <밴드 비지트>(13일 개봉)의 시사회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파견된 외교관 한 명이 이스라엘 문화와 영화, 한국과의 교류에 대한 짧은 연설문을 낭독했던 것이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문화 교류라는 건 중요한 거고 비록 절반 이상이 영어 대사여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밴드 비지트>가 지난해 이스라엘 영화계를 대표하는 작품임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민망함은 여전히 남는다. 어딘지 모르게 이렇게 국가가 관련된 공식적인 소개는 <밴드 비지트>라는 영화와 어울리는 것 같지가 않다.
이 영화의 내용을 아시는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이스라엘로 공연을 온 경찰 악단이 실수로 이름이 비슷한 작은 마을에 갇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는 이야기다. 처음엔 어색하기만 하던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인생을 바꿀 만한 대단한 일들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결말은 흐뭇하고 만족스럽다.
너무 이상주의적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개인은 원래 국가보다 더 쉽게 말이 통한다. 사람들이란 대부분 어딜 가도 비슷하다. 그들에게 공통되는 언어와 취미를 한두 개 주고 모두가 적당한 예의를 차려야만 하는 공간에 넣어보라. 그들이 미친 애국자나 광신도가 아니라면 뜻밖에 잘 어울릴 것이다. <밴드 비지트>에서도 주인공들에게 소통의 도구가 되는 건 영어라는 언어와 쳇 베이커, 조지 거슈윈과 같은 음악가들, 그리고 인간 보편의 감정이다. 하지만 이런 화해와 동조는 개인의 영역에서만 쉽다. <밴드 비지트>는 노골적으로 이집트 문화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두 나라 사이 화해를 호소하는 영화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 메시지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집트에서 상영금지 되었고 카이로 국제 영화제에서도 공개되지 못했다. 이집트인들이 주인공인 영화지만 이들을 연기한 배우들은 모두 이스라엘인들이나 팔레스타인인들이다. 이집트에서는 이스라엘 배우와 공연하기만 해도 정부의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본 이집트 관객들은 이 영화에 만족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다고 해서 두 나라의 벽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린 아무리 개인으로서 다른 개인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싶어도 결국은 집단의 일부이고 집단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밴드 비지트>라는 영화가 이러한 상황 때문에 위선적이거나 공허해지지는 않는다. 반대로 오히려 쉽게 뚫을 수 없는 이러한 장벽 때문에 애잔한 서글픔이 추가되었고 그 때문에 영화의 감흥은 더 커졌다. 단지 내 말은 대사관의 공식 행사가 없는 개인적인 자리였다면 이 영화의 감정이 더 와 닿았을 거라는 것이다.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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