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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내가 아는 ‘그’가 진짜 ‘그’일까

등록 2008-03-16 20:56

저공비행
우리가 가까이 두고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정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런 사람일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답은 거의 제로다. 한 번 생각해보라. 여러분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100퍼센트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가? 어림없다.

오드리 헵번의 영화 <샤레이드>가 떠오른다. 헵번이 연기한 레지나는 휴가에서 돌아오자 남편이 전재산을 빼돌린 뒤 살해당했다는 걸 알게 된다. 알고 봤더니 지금까지 레지나가 남편에 대해 알고 있던 건 이름에서부터 경력에 이르기까지 몽땅 가짜다. 그런 남자와 평생을 같이 하려고 결혼까지 했던 거다. 그리고 원래 결혼이란 대부분 이런 위험을 품고 있다. 아니, 대부분 레지나의 경우보다 더 위험하다. 레지나의 남편은 진상이 폭로될 무렵 적절하게 죽어줬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레지나의 결혼생활은 조금 극단적인 경우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 배반감을 느낄 때는,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이나 작가와 같은 유명인들은 어떨까? 예를 들어 유인촌 장관의 노골적인 코드 인사 발언에 실망한 사람들 중에는 왕년에 그의 팬이었던 이들도 꽤 될 거다. 극중 이미지와 자연인의 모습이 충돌할 때 결과가 좋은 경우는 별로 없다.

인터넷은 어떨까? 나는 10년 넘게 인터넷을 통해 활동을 해왔는데, 내 별명과 아이디를 달고 다니며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이 존재가 나 자신과 전혀 닮지 않다는 걸 알아차리고 가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의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계를 번갈아 살다보면 그냥 둘이 분리된다. 대부분 인터넷 자아 쪽이 더 그럴싸해 보인다. 더 쉽게 꾸밀 수 있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이것들은 코미디 소재가 된다. 바로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소통을 하면서 상대방의 정체가 누군지 모른다는 설정은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코끼리>에서도 사용된다. 실제 세계에서는 앙숙이던 두 사람이 인터넷 세계에서는 연인이더라는 설정은 영화 <유브갓 메일>에서 본격적으로 그려졌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 맞게 해피엔딩이었지만, 실제 세계에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유브갓 메일>에서도 해피엔딩은 순전히 작가의 농간이었다. 내가 그 영화의 멕 라이언이었다면 지금까지 톰 행크스가 저지른 기만과 사기에 치를 떨며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을 거다. 그리고 실제 세계의 사람들에 비하면 톰 행크스는 양반라는 걸 여러분도 안다.

자신의 이미지를 비교적 쉽게 통제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인터넷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해주기도 했지만 또다른 형태의 정글을 만들기도 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 같은 멍한 태도로는 안 된다. 제발 모두들 교활해지자. 세상은 무섭고 사람들은 추하다.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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