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개봉 ‘어웨이 프롬 허’
27일 개봉 ‘어웨이 프롬 허’
치매 아내 요양원서 새 사랑
남편은 집착과 회한에 떠돌아
노년의 삶에 웅숭깊은 시선 눈 밭을 두 노인이 스키를 끌며 지나간다. 뒤로는 스키 자국이 끝없이 이어질 듯 평행선을 긋는다. 44년을 함께 산 피오나와 그랜트 부부가 통나무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들이 얼마나 더 동행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피오나가 치매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웨이 프롬 허>는 사그라지는 기억과 사랑을 관조하며, 그 속에서 삶의 반짝이는 신비를 드러내는 영화다. 카메라는 치매에 걸린 피오나(줄리 크리스)를 청춘의 한 가운데에 선 아름다운 인물을 찬미하듯 그려낸다. 너풀거리는 흰색 머리카락, 속눈썹에 그늘진 푸른 눈을 늘어진 눈가의 주름과 함께 화면에 꽉 차도록 끌어당겼다.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 와인이라는 낱말이 기억나지 않아 횡설수설할 때조차 피오나의 눈은 사색에 잠겨있는듯 웅숭깊다. 그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다른 단계로 의연하게 진입하는 인물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하염없이 강을 바라본 날 피오나는 요양원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랜트(고든 핀센트)는 한사코 말리는데 피오나는 사려 깊은 유머로 응수한다. “(내가) 갑작스럽게 화를 내고 왜 그런지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질 거야. 그래도 (당신은) 웃어넘겨야만 하겠지. 오호! 말하고 보니 평범한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 같은데?(웃음)”
피오나가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할 무렵 두 사람은 봄 햇살 가득한 공원을 거닌다. “망각에는 매혹적인 데가 있어. 요즘엔 노랑을 보고 난 뒤 돌아서면 노랑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느낄 수는 있지. 이 꽃잎 속의 열기를….”(피오나) 피오나가 요양원으로 들어가자 그랜트는 요양원 규칙에 따라 한달 동안 피오나를 못만난다. 다시 본 피오나는 그를 기억도 못하고 요양원 동료 오브리를 향한 열기에 두 볼이 상기돼 있다.
그랜트의 사랑에는 집착과 회한이 떠돈다. 그랜트는 피오나의 사랑을 애써 멀찌감치 바라봐주다가도 “나는 당신의 남편”이라고 소리친다. 한때 다른 여자에게 빠진 적 있었던 그랜트는 죄책감에도 허우적거린다. 그랜트는 오브리의 부인 마리엔에게 오브리를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오브리가 떠난 날 그는 피오나에게 예전에 함께 읽던 책을 읽어주지만 피오나는 울기만 한다. 그랜트가 오브리를 휠체어에 태워 빛이 가득한 복도를 지나 피오나에게 다시 돌려보내는 장면을 카메라는 오래 응시한다. 그도 삶의 다른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요양원에도 사랑과 우정, 망각과 상실이 있다. 그랜트에게 작업을 걸 정도로 활달했던 할머니는 어느 날부터 딸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전직 스포츠 해설자 할아버지는 요양원에서도 중계를 멈추지 않는다. “네~ 지금 간호사가 나를 데려가고 있습니다. 어제는 밥을 먹기 힘들었죠? 오늘은 어떨까요?”
마지막 장면으로 눈밭에 난 스키 자국은 이어지는데 그 주인공이 그랜트와 피오나인지 피오나와 오브리인지 그랜트와 마리엔인지 굳이 밝히지는 않는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원작으로 <나 없는 내 인생> 등에 출연한 배우 출신 감독 사라 폴리가 만들었다. 27일 개봉.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남편은 집착과 회한에 떠돌아
노년의 삶에 웅숭깊은 시선 눈 밭을 두 노인이 스키를 끌며 지나간다. 뒤로는 스키 자국이 끝없이 이어질 듯 평행선을 긋는다. 44년을 함께 산 피오나와 그랜트 부부가 통나무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들이 얼마나 더 동행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피오나가 치매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웨이 프롬 허>는 사그라지는 기억과 사랑을 관조하며, 그 속에서 삶의 반짝이는 신비를 드러내는 영화다. 카메라는 치매에 걸린 피오나(줄리 크리스)를 청춘의 한 가운데에 선 아름다운 인물을 찬미하듯 그려낸다. 너풀거리는 흰색 머리카락, 속눈썹에 그늘진 푸른 눈을 늘어진 눈가의 주름과 함께 화면에 꽉 차도록 끌어당겼다.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 와인이라는 낱말이 기억나지 않아 횡설수설할 때조차 피오나의 눈은 사색에 잠겨있는듯 웅숭깊다. 그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다른 단계로 의연하게 진입하는 인물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하염없이 강을 바라본 날 피오나는 요양원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랜트(고든 핀센트)는 한사코 말리는데 피오나는 사려 깊은 유머로 응수한다. “(내가) 갑작스럽게 화를 내고 왜 그런지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질 거야. 그래도 (당신은) 웃어넘겨야만 하겠지. 오호! 말하고 보니 평범한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 같은데?(웃음)”
27일 개봉 ‘어웨이 프롬 허’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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