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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GP506’ GP너머 군대너머, 섬뜩한 현실의 오마쥬

등록 2008-04-08 15:16

영화 ‘GP506’ 포스터
영화 ‘GP506’ 포스터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심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가장 옥죄는 것이 무엇일까? 괴물? 귀신? 질병이나 범죄? 좀더 일상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이별이나 가난이라고 대답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두려움 혹은 무엇에 대한 것인지 모를 그러나 두려움.

개인적으로 [여고괴담1]과 [여고괴담2] 이후로 가장 공감하면서 본 공포영화가 공수창 감독의 [알포인트]였다. [알포인트]가 개봉했던 2004년은 공포/스릴러 장르가 대세라고 느껴질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공포/스릴러 영화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페이스, 령, 인형사, 분신사바, 얼굴없는 미녀, 쓰리몬스터, 썸, 그리고 알포인트 까지.. 소재나 주제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진 반면, 흥행에 대한 부담이 진부한 클리셰의 반복으로 표출되거나 주제에 대한 부담이 추상과 모호로 묻어나던 그 해의 영화들 속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만큼 죽임에 대한 죄의식이 범벅이 되는 전쟁을 배경으로 했던 [알포인트]는 사람들을 극한의 공포로 몰고 간 원인이 원혼 때문인지, 두려움의 확산에 의한 집단환각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이 두 가지를 믿는 한 사람 혹은 몇몇 사람들의 정신착란이나 집착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열어두고 대신 누군가를 죽이거나 내가 죽어야 하는 전쟁의 한복판에 선 인간들의 고통과 두려움의 정도와 파국을 리얼하게 그려 냈던, 군계일학의 수작이었다. [알 포인트]를 반복해서 극장에서 봤던 2004년 이후, 나는 공수창 감독의 다음 영화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지금부터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동반됩니다.)

공수창 감독이 4년만에 들고 나온 영화인 [GP506]을 본 많은 평론가와 감독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토해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화가 불친절하다"는 것으로, 공포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마지막까지 퇴마 혹은 퇴치에 앞장서서 2탄을 기대케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으며, 같은 배경과 비슷비슷한 모습을 한 인물들이 나와, 과거와 현재로 쉼 없이 오가는 구성이 보기에 편안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나와 일행도 예외는 아니어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나는 멍하니 양 옆을 쳐다봤고, 왼편에서 영화를 본 친구(최작가)는 "뭔 소리야.."라고 했고, 오른편에서 영화를 본 엄마는 "아니 이러고 끝난거야??!!"라고 했으니까.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와 목욕탕에 가 영화에 대해 이런 저런 서로의 그림 조각들을 맞춰 봤는데, 때를 박박 다 밀고 나올 무렵이 되어서는 영화가 좋아졌고 역시 기다린 보람이 느껴졌다.

[GP506] 역시 [알포인트]와 마찬가지로 참극이 어떤 것에 의해서 건 오염(?)된 사람에 의한 짓인지 아니면 귀신에 의한 짓인지, 현상의 주체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현상의 객체(의 두려움)에 의한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21명의 대원들이 머무는 GP에 전에 없었던 어떤 현상과 사고가 겹치고, 그 후 대원들이 전부 몰살된 현장에 사령부에서 나온 군의관 일행과 천호진이 이끄는 헌병 조사대 일행이 문제의 GP에 머물면서 같은 상황에 맞닥드린다는 줄거리만이 관객에게 분명하게 전해질 뿐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비극을 양산한 원인은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도대체 양편으로 갈라선 사람들이 각자 서로에 의해 죽게 될 거라 생각하거나 혹은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를 돌아보면서 머릿속에서 아주 여러 번 반복해서 영화를 돌려보게 되는데, 그 각각의 원인들로 영화를 돌려볼 때마다 공포감을 맞보게 되고, 그리고 영화안과 꼭 닮은 현실 안에 몸담고 있음에 으스스 해졌다.

영화에서 대원들은 낯선 증상을 보이는 대원들을 위험하다고 굳게 믿는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거나 원인을 찾는 노력 대신 위험해 보이는 것을 격리하거나 제거하는 것에 골몰한다. 그래서 낯선 증상을 보이는 대원들은 '죽을 것이다'라고 믿는 동시에 '죽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두려워 하고, 낯선 증상을 보이지 않는 대원들은 낯선 증상을 보이는 대원들이 자신들을 '죽일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몰살하게 만드는 것은 낯선 증상이 가져온 파국이 아니라 낯선 증상이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죽일 것이라는 공포로 인한 파국이다. 결국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것은 낯선 증상이나 그 증상이 동반하는 다른 위험이기 보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전염시키며 극대화되는 두려움이다. 공포에 질린 집단 자살로 보일 정도로 말이다.

영화에서는 이 낯선 증상을 제대로 외부에 보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으며, 이 낯선 증상이 시작된 곳으로 찾아가 보려는 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공포가 지배하는 동안 하릴없이 죽어가는 대원들도 답답했지만, 영화와 꼭 닮은 현실에 살고 있는 나는 낯선 현상을 제일 먼저 목도하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낯선 현상의 위험성을 멋대로 '규졍'하는 상급자들이 너무나 무섭고 끔찍했다. 언뜻보면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더 큰 피해를 막고자 결단하는 "난 놈"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들의 존재만큼이나 끔찍한 것이다. 그들은 과학자도 아니며 영매도 아니고 심리학자도 아니며 신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낯선 현상의 전염성과 위험성에 대해 한치도 의심하지 않으며, 구국(?)의 결단을 한다. 그래서 저 혼자 죽는 것을 선택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모두의 전멸을 향해 돌진한다. 그런데 그들의 결정은 과연 옳을까? 영화에서 같은 장면의 회상이 생존자의 진술에 의해 일견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상황으로 바뀌는 것처럼, 대원들이 죽음을 부를 것이라고 믿는 낯선 증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병균이 아니라 원혼에 의한 것이거나 제3의 이유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영화 속 사람들의 집단 최면에 의한 환각이거나 혹은 일부 사람들의 집착과 광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군대 안에서 소위 책임있는 사람들 혹은 그 옆에서 정보를 먼저 독식하는 사람들은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과감하게 실천한다. 이것이 꼭 영화나 군대만의 문제일까? 영화 밖 현실, GP너머 군대너머 한국 사회의 모습과 섬뜩할 정도로 닮아 있지 않은가?

지난주에 일산 초등생 폭행 및 납치미수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이 경찰서를 방문한 사건이 있었다. 내 주변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만족(?)해했는데, 나는 대통령의 그런 전시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4시간만에 범인이 잡힌 것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결정권을 가진 윗사람들이 이런 현상 자체에 대해 크게 액션을 취하기 보다는,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과 경찰 내부의 감사를 완비하도록 힘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단적인 례는 그렇다 쳐도 우리 사회에서 최근 일련의 이런 일들이 하나 둘인가? 북한의 대남비방방송은 호들갑스럽게 보도하고 전쟁의 공포는 되새김질 하면서 북한이 그런 방송을 하는 속내가 무엇일까를 고민해보고 대처하는 노력의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뿐인가? 삼성 비자금 폭로가 터져나온 이후, 각종 현상을 크게 떠들며 특검이랍시고 하는 사이에 정치권 한쪽에서는 은근슬쩍 금산분리를 차근차근 진행해가고 있다.

그래서 죽을지도 모르고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지도층의 은폐를 위한 미봉책과 독단에 의한 돌진이 집단 자살 같은 전멸을 향해 달리는 [GP506]은, 최근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못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낳은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위해 폭주와 애꿎은 다수의 서민들의 희생이라는 현실의 다른 이름이다. 최소한 먹고는 사는 사회가 아니던가. [GP506]은 만들어진 영화이니 그 엔딩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현실은 멈춰 설 수도, 담론하며 노력할 수도 있다. 집단 환각에 의한 파국은 영화로 충분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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