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해머(68·사진)
‘제주도 해녀’로 서울여성영화제 찾은 바버라 해머 감독
여성영화계의 대모이자 퀴어영화의 선구자인 바버라 해머(68·사진) 감독이 10일 개막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찾았다. 2001년에 이은 두번째로 그가 들고 온 작품은 다큐멘터리 <제주도 해녀>다.
작품은 구성진 노랫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검은 잠수복을 입은 해녀가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해녀가 물에서 빠져나오면서 물안경 사이로 깊게 주름진 얼굴이 보이자 뭍에 있던 사람들은 “수고했수다” 인사를 건넨다. 영화에는 4·3사건에 대한 내용도 상당한 분량으로 나온다.
“여자가 앞에 서고 남자가 뒤에 있는 이 시위는 해녀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데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해녀는 정말 독특한 여성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고 일에 헌신적이며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부를 만큼 창의적입니다. 또 엄마가 딸에게 문화를 전해주고 직업을 물려줍니다. 모녀간의 유대는 중요한 주제이죠. 다른 나라엔 없는 이 특별한 여성문화를 탐구해 보고 싶었습니다.”
‘레즈비언 감독이 만든 첫 레즈비언 영화’인 <질산염 키스>(1992)를 비롯해 <바비의 수업>(1995), <역사수업>(2000)으로 이어지는 3부작으로 여성과 동성애자 인권을 위해 투신해 온 그가 지구상에서 오로지 한 곳,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전문직 여성인 해녀를 카메라에 담기로 결심한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기회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2001년 <역사수업>으로 여성영화제에 참석한 그에게 이혜경 당시 집행위원장이 한국에서 가보고 싶은 곳을 물었고, 항공기내 책자에서 본 제주 해녀에 관한 글을 떠올린 그는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바로 다음날 그는 제주도로 향했고 촬영은 5일 만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이후 두 개의 예정된 작품들을 완성한 그는 암 3기 진단을 받았고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해야 했다. “대단히 어려운 시기였죠. 그래도 잘 버텼고 1년 반 전 완치됐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제주도 해녀’ 필름을 묵혀두는 것은 촬영을 도운 한국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
“이번에 서울행 비행기내 책자에서도 제주를 소개하는 글을 읽었어요.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는 거였죠. 그런데 해녀도 유산으로 등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성별, 나이, 피부색에 관계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위해 계속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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