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나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라는 다소 기억하기 힘든 제목으로 개봉된 워킹타이틀의 로맨스 영화 <데피니틀리, 메이비>를 봤다. 이혼을 앞둔 아버지가 막 성교육을 받은 딸에게 자신이 어떻게 아내와 만났는지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에 나오는 세 여자들 중 어느 쪽이 아이의 엄마가 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는 데에 이야기의 트릭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 서술 트릭이 아니라, 주인공 윌 헤이즈가 겪는 시대의 흐름이다. 헤이즈는 1970년대 초에 태어나 9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뛰어든 소위 엑스 세대다. 영화는 그가 그 동안 만난 세 여자들과 얽히면서 연애를 하고 깨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도 하지만 그러는 동안 그가 90년대 미국을 살아가면서 성장하고 좌절하는 과정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고, 사실 영화의 진짜 주제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로맨스보다는 미국 엑스 세대의 자기고백으로 더 잘 먹힌다.
그런데 여기서 또 재미있는 것은 그런 과정을 그리는 도구로 정치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1992년, 막 대학을 졸업한 윌이 빌 클린턴의 선거운동원으로 일하면서 시작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민주당 선거 운동이 상세히 묘사되고 정치가들의 실명과 스캔들 역시 언급된다. 조지 부시가 짧게 농담거리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건 미국에서는 이상하지 않다. <웨스트 윙>과 같은 정치물 뿐만 아니라 <보스턴 리걸>과 같은 법정물에서도 주인공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정치성향과 지지정당을 밝히고 다니니까. 하지만 우리 관객들에겐 신기하다. 우린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정당이나 정치가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밀양>의 도입부에서 송강호가 지나가는 어조로 한나라당을 언급하자 사람들이 신경질적으로 웃어대던 걸 기억하시는지? 우리에겐 그런 것들도 정말 신기하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치가나 정당이 언급되려면 그들은 일단 과거가 되고 역사가 되어야 한다(<화려한 휴가>, <스카우트>, <제5공화국>) 하지만 <나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와 같은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가 자연스럽게 정치 환경을 언급하는 걸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대머리가 싫어요!’를 외치던 <소년, 천국에 가다>와 같은 영화도 시대 배경이 1980년대다.
이번 총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이 19%에 불과했다고 한다. 슬픈 일이지만 이런 문화 환경에서 그건 당연한 일 아닌지. 말해지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는 정치 현실이 거의 완벽하게 제거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름을 바꾸거나 빼고 완곡어법을 취해야 한다. 사실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이런 것들이 문화생활의 전부인 사람들이 투표에 관심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어떻게 신경을 쓰겠는가?
듀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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