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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봉준호 감독, ‘설국열차’ 프랑스 원작자 만나

등록 2008-05-24 16:02수정 2008-05-25 0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작…봉 감독이 영화제작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의 원작자 장 마르크 로셰트(52ㆍ그림), 뱅자맹 르그랑(58ㆍ시나리오)과 봉준호(39) 감독이 24일 오후 2시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 국제회의장에서 만났다.

'설국열차 만화, 한국에서 영화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들의 특별 대담은 25일까지 열리는 제12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이 마련한 행사중 하나였다.

3부작으로 구성된 SF만화 '설국열차'는 1986년 앙굴렘 국제만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봉준호 감독이 '괴물' 이후 차기작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국내에 더 잘 알려지게 됐다.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와 '올드보이'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이 제작자로 나선다.

'설국열차'는 영하 85도의 기온으로 지구가 얼어붙은 후 생존자들을 싣고 끊임없이 달리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1천1량의 기차 안은 기존 세상과 똑같이 칸마다 계급이 구별된다. 정치인, 종교 지도자, 군인 등 선택된 자들은 모든 게 갖춰진 그들만의 열차 칸에서 그 전과 똑같이 호의호식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탄 꼬리 칸에서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일어난다. 이런 모습을 통해 계급, 빈부의 차, 종교, 음모, 사랑 등이 벌어지는 현대세계를 비판한다.

200여 명의 만화팬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의 진행으로 마련된 대담에서 봉 감독은 "'설국열차'가 '마더' 이후 차차기작(2011년 개봉 예정)이지만 만화를 접하고 준비한 적은 꽤 오래됐다. 프랑스에서 원작자를 몇 차례 만나기도 했는데 이곳에서 만나니 더욱 뜻깊다. 앞으로 영화가 완성되기 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원작자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르그랑 씨는 "한국에 오게 돼서 반갑고 여러분 만나게 돼 기쁘다"고, 로셰트 씨는 "저 역시 영광이며 초대해줘 감사하다. 우리 작품을 이렇게 먼 나라에서 만나게 된 게 대단히 놀랍다"고 인사했다.


처음 이 만화가 봉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소감에 대해 르그랑 씨는 "너무 놀랐고, 즐겁고 기뻤다. 봉 감독의 작품을 이미 보고 알고 있었기에 더욱 기뻤다"고 말했다.

봉 감독이 만든 '살인의 추억' '괴물' 등에 대해 로셰트 씨는 "각색 제안을 받고 영화를 봤다. 영화가 너무 만족스러워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줄 지 기대가 됐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이 끝난 뒤인 2004년 한 달에 한두 번씩 들르는 홍익대 앞 만화 가게에서 만화 '설국열차'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가게에 서서 그 자리에서 읽었다. 기차에 대한 로망이 누구나 있는데 생존자가 기차 안에 타고 있다는 설정이 너무 매혹적이었고, 칸마다 나누어진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못 사는 사람들, 앞으로 갈수록 점점 더 부르주아가 타고있는 상황이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있다 일등석을 봤을 때 울컥하는 아주 단순한 정서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온 지구가 얼어붙었고 하나의 기차 안에 생존자들이 모여있는데 그들이 생존을 위해 협력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또 싸우고 있다는 게 무시무시하고 강렬한 인상을 줬습니다. 박찬욱 감독에게 보여줬더니 너무 좋아해서 판권을 구입하게 됐죠. 르그랑 선생은 2006년 칸에 초청돼 프랑스 갔을 때 처음 만났습니다."

르그랑 씨는 '많지 않은 부피에 수 많은 모티브들이 담겨 있는데 놀랍다'는 이 씨의 말에 "'설국열차' 1권은 타계한 자크 로브 작가의 작품이다. 당시 로셰트 씨는 어린 작가였고 내게 1권 이후 작품을 제안해왔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미래를 이야기할 때 현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크 로브가 마련해놓은 1권의 토대 위에서 출발했다. 1권이 1980년대의 관심사가 들어있다면 2, 3권은 가상현실이나 사이비 종교 집단 등 현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시차가 10여 년이 있지만 1권과 2, 3권의 그림체가 확연히 다르다는 지적에 로셰트 씨는 "첫 번째 작품을 작업할 때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로브 작가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릴 작가를 찾았는데 출판사가 날 선택했다. 아마 캐릭터의 얼굴 표정이 가장 중요했던 만큼 그 기준에서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는 너무 어려서 모든 것을 배우면서 그려야 했습니다. 정말 의욕만 넘치던 시기였죠. 20년이 지나 두 번째 권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여러 가지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런 스타일이 생기게 됐습니다. 아마 나이와 경험이 가져다 준 변화고, 2권과 3권에서는 붓을 사용해 그려 부드러운 터치가 작품 속에 녹아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봉 감독은 "라셰트 씨의 화실을 방문했을 때 중국, 또는 아시아 지역의 화집이 굉장히 많았다. 나도 한국화 화집을 선물한 적이 있다. 그의 작품은 서양적인 수채화, 동양적인 수묵화가 절묘하게 혼합돼 있으며 동양화의 그림체가 굉장히 살아있다"고 곁들였다.

원작에서 강렬한 느낌을 받는 것과 실제 영화를 만드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원작에서 가장 차용하고 싶은 이미지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에 봉 감독은 "폐쇄 공간의 느낌에 많은 감독들이 매혹되는데 영하 80도의 상황에서 폐쇄 공간인 기차가 움직인다는 게 굉장히 독특한 설정"이라며 "당장 영화에 쓰고 싶은 디테일이 많다. 기차 내에서 육류를 재생산하는 것, 야채를 키우는 것 등이 그렇다. 어쩌면 기차 전체가 감옥인데 그 안에 또 범법자를 잡아넣는 감독이 있다는 설정도 섬뜩하면서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이나 미술감독, 프로덕션 디자이너들을 흥분시키는 작품이며 워낙 훌륭한 비주얼이 있어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하느냐라는 아주 행복한 고민을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르그랑 씨는 순서대로 계급화된 기차 칸에 대해 "그 아이디어는 로브 씨의 것이다. 기차의 동력은 엔진인데 이게 바로 권력이라고 생각했고, 엔진이 가까운 곳에 권력자를 배치했다. 앞으로 갈수록 신분이 상승하는 구조"라고 언급했다.

개략적인 영화 준비 작업에 대해 봉 감독은 "한국의 한 젊은 SF 작가가 각색 중이며, 기본 콘셉트는 다국적 성격이 뒤섞인 영화가 될 것이다. 한국, 영어권, 프랑스어권, 아시아 쪽 배우 등이 뒤섞일 것 같다"고 소개한 뒤 "합작을 위한 합작 영화는 매우 싫어하지만 작품 자체가 이런 구조를 갖고 있어 그런 시스템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배우들도 많이 뒤섞일 것이라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작비가 큰 영화를 싫어하는데 '괴물' 때도 괴물을 만드느라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에도 세트 등으로 인해 그렇게 될 것 같네요. 하지만 제가 기본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은 '정서'와 '무드', 인간들의 처절한 모습 등입니다. 이런 걸 보여주려다 보니 역설적으로 특수효과와 스펙터클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결국은 다 해야 하네요.(웃음)"

라셰트 씨는 "1권에서는 젊었을 때라 이야기의 무게에 많이 짓눌렸던 것 같다. 2, 3권에서는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것처럼 빠른 이야기 전개에 집중했다. 영화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처럼 조각으로 캐릭터 얼굴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원작과 얼마나 다를 지에 대해 봉 감독은 "큰 방향은 있지만 두 가지로 구별돼 있다. 두 개가 내 머릿속에 충돌하고 있는 중이다. 내년에 내가 직접 펜을 들어 각색했을 때 어떻게 변할 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특유의 유머 감각이 들어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 편의 영화에서 유머를 의식하고 만들었던 적은 없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머가 나온 것이라 이번 영화에서 어느 정도 유머가 들어가야 하는지 의식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나오게 될 것이다. 아마 나는 공포영화를 찍어도 유머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처음 연재됐던 잡지가 흑백이었던 까닭에 1권은 흑백으로 그릴 수 밖에 없었다"는 로셰트 씨는 "아마 흑백이어서 더 많은 감정이 생겼을 것이며 지금 그린다 해도 그 선택을 했을 것"이라 답했다.

한국영화를 본 느낌에 대해 르그랑 씨는 "한국영화를 좋아하고 특히 봉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며 "한국영화와 프랑스 영화는 현실의 문제를 슬픈 톤이 아닌 유머러스한 톤으로 이야기한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해 대항하고자 프랑스 영화나 한국영화가 똑같이 노력하고 있는 점도 공통점이 아닐까. 한국과 프랑스가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봉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많이 그렸다. 만화가라고 할 수는 없으나 초등학교 시절 그렸던 만화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나 자신이 만화가라고 착각할 때가 살짝 있으며 영화감독이 된 후에도 대부분의 스토리보드를 직접 그리고 있다"고 소개하며 "좋지 않은 솜씨지만 여전히 만화와 함께 살고 있어 만화가라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http://blog.yonhapnews.co.kr/kunnom/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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