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액션 블록버스터 ‘둠스데이 : 지구 최후의 날’
솜씨 좋은 닉 마셜 감독, 흥미로운 반전 선물
인류의 멸망을 막으려고 홀로 동분서주하는 전사들의 이야기는 영화의 흔한 소재다. 여자들이 전사 역을 떠맡게 된 것도 실은 상투적인 영화적 구도를 혁신하고픈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멀리 <에이리언>의 엘렌 리플리(시거니 위버)가 그랬고,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앤절리나 졸리), <레지던트 이블>의 앨리스(밀라 요보비치)도 그랬다. 에스에프 액션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는 <둠스데이-지구 최후의 날>의 이든 싱클레어(론다 미트라) 역시 여전사 계보에 속하는 영화다. 관객의 관심은 결국, 이 비슷한 주제를 영화가 얼마나 새롭게 다루는가에 있을 것이다.
<둠스데이…>의 시작 시점은 바로 올해, 2008년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지역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생하자 영국 정부는 ‘컨테이너 박스’보다도 높고 육중한 철벽을 세워 이 지역을 완전히 고립시킨다. 철문에 접근하는 모든 생명체는 무인 기관총에 의해 가루가 된다. 전기마저 끊어버린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33년,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한다. 그런데 이번엔 런던이다. 다급해진 정부는 육군 소령 이든 싱클레어를 비롯한 최정예 요원들을 이 버려진 땅에 급파해 바이러스 치료제를 구해 오라는 ‘불가능한 임무’를 내준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바이러스는 새롭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싱클레어가 치료제를 구하기까지 거쳐야 할 난관들이다. 싱클레어가 싸워야 하는 상대는 좀비가 아니다. 북쪽의 버려진 땅에서 30년 가까이 증오를 키워온 생존자들이다. 생존자들은 두 부류로 갈라져 있다. 치료제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학박사 케인(맬컴 맥다월)의 지도 아래 외딴 성에서 밀폐된 해방구를 지키고 있는 무리와, 폐허가 된 도시에 살며 언젠가 다시 철벽을 넘을 꿈을 꾸고 있는 솔(크레이그 콘웨이)을 따르는 무리다. 영화의 볼거리는 이 두 세력과의 싸움에 집중돼 있다. ‘외눈박이’ 싱클레어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여전사보다도 강인하고 위력적이다.
근미래 묵시록의 외양을 띤 이 영화는 곳곳에 다른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품고 있다. 케인 박사와의 싸움은 <글래디에이터> 같은 중세적 분위기를, 솔과의 대결은 <매드 맥스> 같은 현대적 액션을 선사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자동차 추격신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처럼 호쾌하다. 마지막엔 흥미로운 반전이 기다린다. 이 모든 걸 하나로 버무린 솜씨가 무릎을 치게 한다. 독립영화 <디센트>(2005년)로 재능을 인정받은 영국의 젊은 감독 닐 마셜(38)의 블록버스터 데뷔작이다. 살인과 폭력의 묘사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감독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흥행을 할 수 있을지, 또 하나의 컬트영화로 남을지 자못 궁금하다. 18살 관람가. 19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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